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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방에서 진행했던 봉사활동 (사진 속 장소는 아님)
▲ 놀이방 풍경 놀이방에서 진행했던 봉사활동 (사진 속 장소는 아님)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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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빠는 회사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참가했단다. 여자 아이들만 모아놓은 OO마을이란 아동보호시설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없거나, 경제적인 여건, 가정 학대 등으로 아이들을 시설에서 키우는 곳이었어(통상 고아원이라고 표현하지만, 다녀오고 나니 그 말을 쓰고 싶지 않아지더라).

함께 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나누어 하루 동안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빠가 담당하게 된 일은 아직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실내 놀이터 데리고 가서 놀아주는 일이었어. 일하시는 선생님에게 유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해서 교육을 받고, 그 날 하루 동안 함께 할 아이를 만나게 되었단다.

아빠는 아직 유모차에 앉아 있는 2살쯤 된 어린 '연'이라는 아이를 만났어(아이의 이름은 가명을 쓰는 것으로 할게). 쌍둥이 유모차에 두 명의 아이가 앉아 있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아이와 함께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왠지 낯설지 않았다랄까?

아이를 앉고 놀이방으로 갔지. 신나게 아이와 함께 놀았어. 딱 네가 그만한 때가 생각이 나서, 그 때를 생각하면서 놀아주었지.

처음에는 낯설어 하고, 집을 떠날 때는 펑펑 울던 아이가 조금씩 익숙해졌는지, 아빠에게 다가와서 안기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손을 잡아 끌곤 하더구나. 아주 예쁘고, 영리한 아이였어. 함께 밥도 먹고, 즐겁게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단다.

살포시 안아서 아이의 방에 이불을 깔고, 내려 놓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어 물끄러미 아빠를 쳐다 보는 눈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발걸음이 무거워졌단다. 몇 가지 장면이 마음에 걸렸어.

첫째는 아이의 기저귀야. 이미 두 번은 싼 것 같아서 선생님에게 말해서 갈아 주었는데, 놀이방에서 놀다 보니 다시 축축해진 것이 느껴졌어. 아이들은 많고, 돌봐주는 선생님은 적으니, 제 때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 어려웠던 거야. 슬픈 건 기저귀를 갈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무거워진 기저귀를 차고 익숙하게 잘 노는 연이의 얼굴이었어.

둘째는 점심 때였는데, 아빠와 함께 놀이방에서 파는 볶음밥을 함께 시켜서 나누어 먹었지. 한 입, 한 입 잘 먹는 연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어. 하지만, 이유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을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수시로 기저귀를 확인하고, 언제나 곁에서 어린 네가 먹을 음식을 가지고 다니던 엄마가 너를 키우던 날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단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봐줄 엄마가 없다는 현실이 아이의 천진한 눈과는 대비되어 믿겨지지 않았지.

선생님들은 사명감이 있어서 열심히 아이를 돌보고 있었지만, 모든 이에게 신이 함께 할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는 그 말처럼, 한 사람을 완전히 사랑해줄 엄마라는 존재가 없는 아이를 생각하니 슬퍼졌어. 매월 얼마씩 기부를 해왔지만, 막상 그 아이들을 만나고 나니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 구김살,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지만....

부모와 아이들이 놀러 나오는 계절의 공원.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소망하며
▲ 봄의 공원 부모와 아이들이 놀러 나오는 계절의 공원.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소망하며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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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아빠는 한 선배를 만나서 술을 한 잔 하게 되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배 회사의 한 후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 들어온 지 3년쯤 되는 사원이 있는데, 얼굴도 예쁘고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온 재원이라고 해.

그런데, 생각보다 일을 못해서 좀 놀랐다고 하더구나. 심각한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하나의 일을 믿고 맡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좀 혼을 내려고 하면 너무 해맑아서 혼내기가 쉽지 않더라고 하더라.

비슷한 사람 생각이 났어. 왜 그런지 좀 이해할 것 같기도 해. 아빠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어서 공감이 되기도 했지. 완벽해 보이던 그 친구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나름대로 함께 이야기해 보았단다.

이런 친구들의 성장배경을 보면 공통으로 나타나는 점이 있었어.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 눈치가 없고, 학습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과외 같은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커서,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약하다는 사실이야.

회사라는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것이니, 상대방의 의도를 잘 살피는 것, 소위 눈치를 잘 보고 움직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단다. 그게 고객이든, 거래처든, 아니면 상사나 동료이든 말이야.

그런데, 살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일이 적은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대인관계의 비중이 높은 사회 생활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상황이 되는 게 아닐까 싶었어(물론, 이건 아빠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이지, 사회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 아이를 보면서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는 생각이 좀 복잡해지더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마음에 주름이 접히지. 그런 일이 반복되면 주름이 더 많이 접히고, 그러다 보면 접힌 마음이 굳어져 마음에 구김살이 만들어지게 되겠지.

모든 부모는 아이를 구김살 없이 키우고 싶어할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성장하면서, 아빠의 경제적인 역량에 따라(물론, 성격이나 감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경제쪽으로 이야기 해보자) 구김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단다.

예를 들어, 네가 친구가 쓰는 예쁘고, 성능 좋은 노트북을 보고 가지고 싶어졌다고 가정해볼게. 아빠에게 사달라고 말했는데, 너무 비싸서 어렵다고 거절 당한다면 어떨까? 아마 마음에 구김은 한 번 생기겠지.

이런 경험을 몇 번 더하고 나면, 비슷한 경우가 왔을 때, 말해봐야 우리 집 사정을 감안해봤을 때, 말하나 마나 일 거라고 네가 스스로 생각해서 아빠에게 말도 꺼내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그 때는 이미 네 마음에 구김살이 생긴 걸 거야.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맞는 수많은 상황을 맞이 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 상황과 이를 대하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구김살의 수와 깊이는 달라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빠로서 너무나 두렵구나. 너에게 최대한 적은 구김살을 만들어 주어야 할 텐데 말이야.

연이는 아빠에게 작은 초콜릿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사달라는 표정으로 놓지 않았어.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선물했지. 하지만, 그 아이는 이런 간헐적인 보살핌이 아니라, 늘 그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엄마 아빠가 없는 만큼, 구김살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올 것이 눈에 그려져서 마음이 안 좋았어.

더 걱정되는 건, 가정이라는 울타리보다 더 큰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마주치게 될 상황들에 대해서야. 네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혼자 박차고 나가는 순간, 뒤에서 바라보고 마음 졸이며 지켜봐 줄 사람이 있어. 행여 네가 넘어진다면, 네가 완전히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얼른 달려가서 널 살피려고 하겠지.

하지만, 동일한 상황이 연이에게 벌어진다면, 누가 연이를 지켜봐주고, 일으켜줄까? 도대체 연이는 얼마나 많은 상황을 혼자 힘으로 견디며 성장해야 할까? 작은 인연이지만, 사람과의 일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아빠는 그 아이를 위해서 지정 기부를 할 생각이야.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한 아이가 혼자 설 수 있게 열심히 응원해보려고 해. 너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는 만큼, 사회에 있는 또 다른 아이에게도 좋은 아저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수록, 어디선가 자라게 될 연이 같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구김살이 덜 생기게 되고, 너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면, 작은 노력에 비해서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오늘은 아빠와 함께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보자.

덧붙이는 글 | http://electricjin.blog.me/
개인블로그에는 함께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봉사활동, #아이, #구김살, #복지, #함께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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