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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구. 사막화가 진행되는 후스타이 국립공원 주변에서는 사막지형을 볼 수 있다. ⓒ 노시경
후스타이 국립공원 입구. 자연 그대로 야생동물들이 보호되고 있는 귀중한 국립공원이다. ⓒ 노시경
몽골 후스타이 국립공원(Hustai National Park)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의 차는 울란바토르를 다시 향하는 길에 후스타이 국립공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운전을 맡고 있는 몽골 친구가 피곤해 보였지만 그를 설득해서 후스타이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우리를 태운 차는 포장도로를 달리다가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13km 더 들어갔다. 가는 길 내내 내 마음 같은 푸른 하늘이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후스타이 공원 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일순간 나무가 없는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공원의 서북쪽 지역은 사막화가 확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초원 안에 완전히 다른 풍경의 사막화가 서서히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척박한 사막의 모래둔덕 속 이곳 저곳에 강인한 풀들은 굳건히 자라고 있지만 사막이 번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사막화 지형 바로 옆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는 후스타이 국립공원이 있으니 국립공원 존재 자체가 참으로 소중해 보인다.

후스타이 국립공원 지도와 여러 동물들이 잔뜩 그려진 표지판을 지나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국립공원 입구에는 후스타이 리조트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여행자들의 숙박시설로 사용되는 시설 좋은 게르 캠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은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은 유럽 여행자들의 필수코스여서 더운 여름철에도 캠프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미니버스들이 도열해 있다.
후스타이 국립공원.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연구소와 함께 게르 숙박시설들이 있다. ⓒ 노시경
국립공원 인포메이션 센터 국립공원에서 보호 중인 타키를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설명해주고 있다. ⓒ 노시경
우리는 본격적으로 국립공원을 탐방하기 전에 게르 모양의 국립공원 박물관에서 안내원으로부터 이곳의 동식물들에 대한 설명을 듣기로 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라는 안내원은 아주 앳되어 보였다. 몽골은 우리와 학제가 달라 우리나라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에 대학교를 입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어린 대학생은 방학기간 중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준비된 영어원고를 읽듯이 설명하는 모습이 아주 착해 보인다.

"후스타이 국립공원은 1993년에 지정되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후스타이 국립공원 안에는 몽골리안 가젤(Mongolian gazelle), 카스피안 붉은 사슴(Caspian Red Deer), 늑대, 여우, 스라소니, 타르박 등 40여 종의 포유류와 220여 종의 조류, 500여 가지가 넘는 식물들과 야생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나는 이 후스타이 국립공원 박물관에 전시된 동물의 박제 중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생긴 한 동물에 시선이 멈췄다. 말보다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은 귀엽게 생긴 야생마 타키(Takhi, Tахь)가 그곳에 있었다. '타키'는 몽골어로 '야생마'를 뜻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승마용 말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2009년에 실시된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 의하면 타키는 16만 년 전에 가축 말과 분화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타키는 6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어서 64개의 염색체를 가지는 가축 말과 다르죠.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에 사육하는 말과의 교배도 불가능합니다."

"말의 조상들이 남긴 화석을 보면 타키는 선사시대에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고루 퍼져있었고 주로 몽골과 북중국의 초원지대에 흔하게 살고 있었지요. 화석이 발견된 것을 보면 만주와 한반도에도 살고 있었지요. 하지만 서식지 파괴로 야생 상태에서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습니다. 타키가 19세기말에 유럽에 알려진 직후 타키 1900여 마리가 포획되어 유럽의 여러 동물원에서 사육되었지요. 그런데 근친교배와 부실한 관리로 인해서 1950년대말에는 총 12마리만 남을 정도로 멸절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국립공원에 타키가 살아남아있나요?"

"몽골에서 번식하던 야생상태의 타키도 1969년 겨울철 고비사막에서 한 마리가 조난당해 죽은 이후 완전히 멸절되었었지요. 1960년대에 타키는 자연상태에서는 멸종되었습니다. 이후 멸종위기의 타키를 살리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이 진행되었고 원거리 교배와 체계적인 번식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는 약 1500마리로 개체수가 늘어났습니다."

"타키를 자연상태로 돌려보내기 위한 사업도 추진되어, 1992년에 타키가 처음 포획되었던 몽골에 타키를 다시 방사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폴란드에서 사육되던 같은 종 16마리를 시험적으로 후스타이 국립공원에 방사시켰고 타키는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야생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현재 후스타이 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80여 마리의 타키가 서식 중입니다. 우리 후스타이 국립공원은 야생마 타키를 성공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세계적인 국립공원입니다."
국립공원 안내원. 야생동물을 찾아내는 공원 안내원의 시력에 놀라게 된다. ⓒ 노시경
우리는 야생의 타키를 국립공원 안에서 만날 행운을 바라며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광활한 넓이의 후스타이 국립공원을 탐방하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해서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국립공원 입장료를 지불하고 우리를 국립공원에 안내할 안내인을 기다렸다. 운 좋게도 우리는 후스타이 국립공원 입장 전에 이 국립공원이 지정된 이후 20여 년 동안 공원을 이끌어온 반디 관리소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 몽골인들은 백발이 성성한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 차의 운전을 맡고 있는 몽골친구와 친해서 그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른 아침에 오지, 왜 이렇게 대낮에 왔어? 지금은 여름철 대낮이라 야생마 타키를 만나기가 어려울 거야. 날씨가 더워서 시원할 때에나 넓은 들판으로 나오거든."

"운에 맡겨야지요. 길을 지나가면서 눈에 띄는 야생동물들이나 좀 있으면 좋을 텐데요."

우리는 행운을 기원하며 하늘과 맞닿은 초원 안으로 들어섰다. 하늘은 미친 듯 아름다웠고 초원에서는 향긋한 허브 향이 코로 전해지고 있었다. 민트향 같은 상쾌한 향기가 초원에 흘러가고 있었다.
공원 탐방길. 자연 그 모습 그대로의 낮은 산과 초원을 향해 길이 열려있다. ⓒ 노시경
우리는 국립공원 내의 비포장 도로를 구불구불 달리면서 몽골의 대초원을 제대로 구경하게 되었다. 자연 그대로인 초원만 구경하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나무 없이 푸른 풀만 듬성듬성 자라는 산의 능선도 너무나 이국적이고 경이로웠다. 그리고 산 사이로 계곡 같이 이어지는 초원 안에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차 외에는 사람의 흔적도 없고 고요하기만 하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토끼만한 설치류 동물인 타르박이 눈에 많이 띈다. 타르박이 초원 이곳 저곳의 작은 굴에서 불쑥 머리를 내민다. 굴 앞에서 두발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우리를 호기심 있게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생긴 녀석이다. 우리 차가 타르박 쪽으로 이동하자 경계심이 많은 이 녀석은 위협을 느끼고 엉덩이를 보인 후 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타르박은 덩치가 워낙 커서 몽골인들이 식량으로 많이 잡아먹었으나 이제는 그 수가 급감하여 잡는 것이 불법으로 되어 있다. 이 국립공원 안에서는 타르박을 잘 보호하고 있으니 이렇게 눈에 잘 띄는 것이다.

후스타이 국립공원은 몽골 내에서는 비교적 작은 국립공원이지만 넓이가 약 5만 헥타르나 되는 넓은 공원이다. 우리는 오프로드 비포장 길을 따라 공원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우리 차는 끝없이 펼쳐진 국립공원의 초원길을 탈탈거리며 계속 내려가고 올라갔다. 우리를 태운 차는 산길을 굽이굽이 계속 돌았다. 차가 한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또 다른 산과 초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안내원이 건네준 망원경을 가지고 야생동물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있었다. 공원 안내원이 공원의 동물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 나의 몽골 친구가 한국어로 번역해서 설명해 주었다. 공원 안의 다양한 동물 중에서 우리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카스피안 붉은 사슴이었다.

갑자기 안내원이 저 멀리 산 정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곳에 야생동물이 보인다고 했다. 초원에 사는 몽골 사람들의 시력이 좋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이 안내원의 시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내 눈에는 점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 정상 능선에 카스피안 붉은 사슴이 서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상 능선에 신비롭게 서 있는 사슴과 함께 안내원의 시력에 감탄했다.
카스피안 붉은 사슴. 산정상의 능선 위에 올라선 사슴의 뿔이 신비스럽다. ⓒ 노시경
나는 안내원의 망원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참을 찾은 후에야 사슴 2마리가 정상에 아스라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상의 바위 앞에도 바위 색과 똑 같은 사슴 몇 마리가 더 있었다. 사슴들이 서 있는 능선은 파란 하늘과 접해서 선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능선들에 선 동물들의 몸체는 책상에 세워놓은 피규어처럼 신기하게 뚜렷한 윤곽으로 보였다. 현란한 사슴 뿔이 푸른 하늘 바로 밑에서 신비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지프 차는 국립공원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자라지 않아 초원지대가 연장된 것 같이 보이는 산 위에는 한가한 풀만 자라고 있었고 산 정상의 능선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때 몽골 안내원이 나지막이 우리를 불렀다.

"왼쪽 산 능선에 바위들이 몰려있는 곳이 보이죠? 그 바위들 사이에 움직이는 동물이 보이나요?"

"점이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한데. 이 친구 시력 대단하네. 또 저게 보인다고? 망원경 줘 봐."
산정상의 타키. 높은 곳에 선 타키가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 노시경
망원경으로 보니 한여름 낮 시간에는 행운의 신이 점지해 주어야만 보인다는 타키 2마리가 그곳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타히'로도 불리는 타키는 지구상에 살았던 순수 야생마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있는 종이다. 역사상 인간이 길들이는 데 실패한 진짜 야생마인 것이다.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몽골인들도 다루는 데 실패한 야생마라!

저 멀리 산 정상에만 타키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더욱 신비하게 보인다. 사람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아주 도도하고 늠름해 보이는 야생마들이다. 이 타키 2마리는 무리 중에서도 종마로서 산의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무리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작은 개울가를 지나가다가 타키 3마리를 다시 만났다. 다른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보면 동물은 보지 못하고 국립공원의 산과 들만 보고 온 사람들도 많던데 우리에게는 행운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보니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보았던 타키보다 다리가 길고 통통해 보였다. 야생 생활을 하기 때문에 몸 전체가 근육질로 보이고 목과 다리도 굵다. 목과 엉덩이 부분은 진한 갈색이고 배 부분은 은회색을 띄고 있어서 색도 깔끔하다.
개울가의 타키. 타키 2마리가 개울가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 노시경
감각이 매우 발달해 있는 타키는 경계심도 많아 50m 이내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타키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참 떨어진 곳에서 타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타키들은 무더운 여름 햇살에 지쳐 작은 개울 물에 몸을 담그고 냉수욕을 하고 있었다. 갈색으로 밝게 빛나던 타키들의 몸통이 물에 젖으며 검게 반짝이고 있었다. 멸종 위기의 야생마라는 사실을 알면서 바라보니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타키의 몸통이 더욱 귀해 보였다.

국립공원 안내원이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분들,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죠? 어떤 분들이에요? 여름 한낮에 타키를 2번이나 만나다니요!"

우리는 타키를 운 좋게 만났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후스타이 캠프가 있는 국립공원 입구로 돌아왔다. 우리는 국립공원 숙박시설 옆의 휴게소에서 음료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후스타이 국립공원에는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국립공원 휴게소도 온통 외국인들 차지이고 몽골사람들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훨씬 많았다. 이곳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야생마 타키를 자연상태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여행자들. 후스타이를 찾은 여대생들이 몽골의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여행의 한가함을 즐겼다. 더위를 씻어주는 맥주의 시원함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바로 옆 좌석에는 미국에서 온 여대생 3명이 몽골의 이 자연 속에 들어와서 느낀 감상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건실한 여대생들의 젊음이 부럽게 느껴졌다. 나는 곧 대학생이 될 나의 딸도 저 미국의 여대생들처럼 자연스럽게 외국여행을 다니며 광활한 자연을 직접 접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아내와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몽골의 바람을 맞으며 국립공원 안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다시 돌아보았다. 전혀 꾸밈이 없는 땅, 후스타이 국립공원의 길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억센 잡초만 자라는 초원지대와 벌거벗은 산 안에는 귀한 야생동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후스타이의 특별함은 다른 국립공원과는 차별되는 자연 그대로의 장엄한 자연이다.

우리가 여행한 날은 하늘이 시리도록 청명했다. 구름은 푸른 하늘 안에서 끊임없이 변하며 쉼 없이 흐르고 햇살은 맑은 공기 속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여인네의 부드러운 굴곡을 닮은 듯 편안한 산과 초원.

잠시 후 뜨거운 태양 아래 불던 바람도 멈추고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한 적막감과 나른함이 이어졌다. 상상력을 넘겨버린 꿈 같은 풍경이 맥주 잔 뒤로 펼쳐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후스타이, #국립공원, #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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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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