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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 지금껏 가장 잘한 발걸음, 비로소 시작되는 내 인생.'

막 새내기를 벗어난 22살의 그때를 권은정(30) 대표는 또렷이 기억한다. 어둡고 후텁지근했던 남아공 케이프타운 공항, 가족과 친구를 만나 서로 반가워하던 사람들, 그 옆에서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는 사실에 홀로 감격하던 자신.

이후 그녀는 거의 매해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렇게 간 나라가 지금까지 28곳. 20대가 가기 전 그 넓은 대륙의 절반 이상을 거쳤다.

알바, 아프리카, 알바, 아프리카...

권 대표는 2012년 한국에서 필름 아프리카를 창업해 기반을 닦은 뒤 다음 해 케냐로 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권 대표는 2012년 한국에서 필름 아프리카를 창업해 기반을 닦은 뒤 다음 해 케냐로 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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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그런 환상 있지 않아요? <80일 간의 세계일주> 같은. 전 그런 책 좋아했거든요."

어렸을 적 모험소설을 탐독하고 우주 나오는 영화라면 모조리 봤다는 그녀. 미지의 곳을 동경하던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에서 한 사막 사진을 보고 반한다. 사막에 대한 열망은 곧 아프리카에 대한 열망으로 커졌다.

"8월에 수시 합격한 이후로 알바만 했어요. 아프리카 가려고요. 부모님 설득하는 데만 1년 걸렸어요. 주말마다 카페에 모시고 가서 분위기 잡으면서 얘기하고."

첫경험의 기간은 두 달이었다.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집트, 중동까지. 돌아오고 난 후엔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다시 가고 싶어서다. 이번엔 그냥 여행만 간 게 아니었다. 뭐 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져갔다.

남아프리카와 달리 여행 인프라가 전무한 서아프리카. 권 대표는 두 번째 여행에서 전혀 다른 아프리카를 경험했다. 사진은 가나의 한 시내 풍경
 남아프리카와 달리 여행 인프라가 전무한 서아프리카. 권 대표는 두 번째 여행에서 전혀 다른 아프리카를 경험했다. 사진은 가나의 한 시내 풍경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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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행은 서아프리카로 갔어요. 여긴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랑은 달라요. 사하라 사막이나 팀북투 같이 여유로운 곳도 많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도시들이 크고 복잡해요. 큰 도시는 한국이랑 비슷한데 훨씬 열악하다 보시면 돼요. 버스노선도 거의 없고, 있어도 몇 박 며칠씩 걸리고, 중간에 퍼지고. 갑자기 아프리카인의 삶을 맛본 거죠."

처음과는 전혀 다른 아프리카를 경험하면서 든 생각이 '이걸 영상으로 담아보면 어떨까'였다고. 사명감은 아니었단다. 그녀가 내민 이유는 "뭔가 재밌을 거 같아서"다.

27살 케냐에서 영상제작사 창업... "아프리카가 좋아서"

케냐에서 사업을 시작한 건 3년 뒤, 2013년이었다. 페이스북의 아프리카 친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박람회가 계기였다.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영상 박람회(Broadcast, Film & Music Africa)에서 권 대표는 부스 한 곳을 얻었다.

"제가 거의 유일한 외국인이었어요. 그간 만든 영상을 틀었더니 사람들이 몰리더라고요. 20대가 대부분이었고 다들 뭔가 같이 하고 싶어 했어요. 몇백 명이 방명록을 남겼는데 그중 몇 명과 연락이 닿아 '필름 아프리카'를 시작했어요."

필름 아프리카의 케냐 사무실
 필름 아프리카의 케냐 사무실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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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아프리카를 함께 했던 3명의 고정 멤버(오른쪽 3명)
 필름 아프리카를 함께 했던 3명의 고정 멤버(오른쪽 3명)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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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한 고정멤버가 권 대표를 포함해 4명, 정기적으로 촬영과 편집을 도와준 사람까지 합하면 총 7명이었다. 처음엔 기본교육을 하고 영상 판로를 만드는 데 힘썼다. 뉴스거리가 될 만한 영상을 현지 방송사에 팔기도 하고 현지 뮤지션의 의뢰를 받아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한국 방송사엔 필요한 자료화면을 만들어 거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가 계속 운영하긴 어려웠어요. 부패가 심해 돈 없는 사람은 사업비자나 주거비자 받기 힘들거든요. 친구와 위장 결혼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밖에 잠깐 나갔다 오는 식으로 비자 연장하며 6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그 친구들에게 맡겨놓고 갈 수밖에 없었어요."

빈곤 포르노 혹은 천혜의 자연? '진짜 아프리카'가 전하고 싶어

이후 권 대표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를 돌며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YTN의 글로벌 리포터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내 한국 관련 뉴스를 보도했고(내전에 상처받은 르완다... '희망'을 굽는 빵집), SBS와 협력해 한 달간 이집트 민주화 혁명 이후를 취재했다.

권 대표가 3년에 걸쳐 다닌 아프리카 나라 28개국 (색칠한 부분)
 권 대표가 3년에 걸쳐 다닌 아프리카 나라 28개국 (색칠한 부분)
ⓒ 김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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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다니면서 권 대표는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진짜 아프리카'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시종 나긋나긋하던 권 대표는 이 대목에서 말이 빨라졌다.

"미디어에선 아프리카를 그저 도와줘야 하는 곳으로 묘사해요. 불쌍한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하기도 하고. 근데 아프리카도 사람 사는 곳이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다들 예술과 영상을 좋아해요. 나이지리아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영화를 만들어 놀리우드라 불리고, 사람 조금만 모이면 뮤직비디오 찍으려 하고요."

그래서 권 대표가 요즘 준비하는 프로젝트도 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문화와 예술을 영상으로 다듬어 보여줄 예정이라고.

"아프리카가 지금까지 못 사는 건 자립할 시간이 없어서예요. 서양이건 동양이건 가만 내버려두질 않거든요. 도와준답시고 자원 이만큼 가져가고 자기들 체인점 넣어서 수익 빼먹고. 이들의 문화와 예술이 알려져야 원조나 외부 개입 없이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색이 너무 짙어 이질감이 크니 좀 더 대중성 있게 전하고 싶어요."

권 대표는 “동등하게 교류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시선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동등하게 교류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시선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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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아프리카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다큐멘터리 제작 원정대’ 촬영 장면
 필름 아프리카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다큐멘터리 제작 원정대’ 촬영 장면
ⓒ 권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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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티켓, 언제나 그랬듯

이를 위해 권 대표가 아프리카로 떠나는 날은 10월 초. 지금껏 그랬듯 왕복권 대신 편도 티켓을 끊는다. 언제, 어디서 돌아올지 모른다. 노마드(유목민)처럼 발길 가는 대로 유랑한다.

"이젠 출장이나 여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삶의 방식이죠. 바깥에서 1년 있다가 한국에 한두 달 머무르는 게 일상이 됐으니까요."

권 대표의 페이스북 소개글엔 '여행하는 삶'이라 쓰여 있었다. 여행할 때 맞닥뜨리는 낯선 상황에 대처하듯, 권 대표는 일단 도전하고 부딪치고 좌절하고 나아갔다. 필름 아프리카 역시 "그 과정 중에 있었던 것 중 하나일 뿐" 자신을 "대변하진 않는다"고.

새로운 도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자세한 내용은 "살짝 비밀"이라는 그녀. 몇 달 뒤 페이스북에서 '쌔끈한' 아프리카 영상을 보게 된다면 그건 권 대표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태그:#아프리카, #여행, #창업, #영상,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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