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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저녁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언과 관련해 강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정 의장은 20대 국회 첫 정기회 개회사에서 사드배치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하며 새누리당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샀으며 이후 여당 의원들의 의정활동 중단 선언으로 국회는 파행을 겪고 있다.
 1일 저녁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언과 관련해 강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정 의장은 20대 국회 첫 정기회 개회사에서 사드배치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하며 새누리당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샀으며 이후 여당 의원들의 의정활동 중단 선언으로 국회는 파행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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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을 지르던 의원들은 집단으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어 의장집무실로 쳐들어 간 그들은 국회의장을 사실상 '감금'했다. 일부 의원은 국회 경위의 멱살을 잡고 막말을 퍼부었다. 또 의장에게 노골적으로 의사진행권을 내놓으라고 겁박했다. 결국 정부가 목을 메고 있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는 발목이 잡혔고, 각종 청문회도 파행됐다.

놀랍게도 위 글에서 '주어'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를 문제 삼으며 2일 오후 늦게까지 의사일정을 모두 '보이콧' 했다. 정 의장은 당시 개회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버티기'와 사드 배치 관련 정부의 '불통'을 꼬집었다. 새누리당은 이를 두고 "정 의장이 국회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의장이 우병우, 사드를 언급한 이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으며 정 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으며 정 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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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문제 삼고 있는 정세균 의장의 개회사를 살펴보자. 정 의장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검찰 수사와 사드 배치 문제를 꼬집었다. 먼저 우 민정수석 문제에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며 우회적으로 우 수석의 사퇴를 촉구했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우 수석 사건을 언급하면서부터 의원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 의장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아래 공수처) 신설을 언급하면서부터 고성이 터져나왔다. 공수처는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의 편향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정의장은 "공수처 설치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해 주기 바란다"라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정 의장이 이어 사드 배치 문제를 꺼내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더 크게 반발했다. 정 의장은 "최근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 또한 깊이 고려한 것 같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 의장의 전체 발언의 맥락은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일변도의 문제를 지적하며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해 '의장 외교'에 나섰겠다는 것이었다. 사드 배치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새누리당 시선에서는 '사드 반대 의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 의장의 연설은 기술적으로 '사드 배치 반대'가 아닌 '정부의 소통 부재, 전략 부재'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지적을 새누리당이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 의장 역시 자신의 개회사에 새누리당의 반발을 예상하기도 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일 정 의장과 면담 후 "(정 의장이) 새누리당이 마땅치 않게 생각할 것을 예상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정 의장의 '작심 발언'에는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정 의장은 지난 4.13총선의 결과를 바탕으로 국회의장에 올랐다. 새누리당은 민심의 심판을 받았고 여소야대 국회가 됐을뿐 아니라 더민주에 제1야당의 자리도 내줬다. 기존 여당 출신의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으로 그 역할이 충분했겠지만,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의장은 민의를 반영해 '행정부 감시와 견제'라는 입법부 역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정 의장이 새누리당의 반발을 예견하면서도 '우병우와 사드'라는 민감한 주제를 꺼내 든 의도 역시 여기에 있다. 정 의장 측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장으로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야 한다"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법안만 처리하라는 건 국회의장을 거수기 스위치로 만들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야당보다 격렬했던 새누리당, 무엇을 두려워 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을 위해 출국하며 환송 나온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러시아 동방경제포럼(EEF), 중국 G20 정상회의,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 등에 참석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을 위해 출국하며 환송 나온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러시아 동방경제포럼(EEF), 중국 G20 정상회의,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 등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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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큰 문제는 새누리당의 염치 없는 행동이다. 시간을 몇 개월만 뒤로 돌려보자. 지난 2월 여당 출신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여야가 극한의 대립을 벌이던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정 의장은 "지금은 국민안전 비상상황"이라며 "테러방지법 제정을 미루는 동안 테러가 발생한다면 역사와 국민 앞에 더없이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당시 정부여당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읽은 것이다. 정 전 의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자신의 임기동안 "직권상정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러방지법 관련해서도 여야의 합의를 종용했지만, 계속된 정부여당의 압력에 결국 태도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국회 다수를 차지한 새누리당의 뜻대로 법안은 통과됐다.

당시 야당도 정 전 의장집무실로 항의방문을 갔다. 직권상정이 예정된 본회의에 앞서 이종걸 당시 더불어민주당와 당시 이목희 정책위의장,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였던 신경민 의원 등 4명이 정 전 의장을 찾아갔다.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민주는 어쩔 수 없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꺼내 들었다.

그때 더민주 의원들이 의장집무실로 몰려갔다면 어떤 말이 나왔을까? 직권상정은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고 의장을 사실상 감금했다면 새누리당은 뭐라 했을까? 국회 경위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벌이고, 본회의뿐 아니라 모든 의사일정을 보이콧 했다면? '안보불임정당', '국정발목잡기', '국민볼모 떼쓰기'라는 비난이 쏟아졌을 게 뻔하다.

새누리당은 지난 2008년 정세균 의장이 야당인 민주당 대표였을 때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 것을 가지고 정 의장을 공격했다. 지난 2013년 야당이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새누리당)에 대해 '사퇴촉구결의안'을 낸 것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그때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당시 두 의장은 모두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직권상정 의사를 밝히면서 야당의 반발을 자초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공수처 설치 법안을 직권상정하겠다거나, 사드 배치 관련 국회 비준동의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게 아니다. 개회사를 통해 국회의장으로서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비판하고, 여야의 논의를 '당부'한 것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논리로 각종 법안을 밀어붙였던 여당이 이제는 의장의 말 한 마디에 야당보다 더 격렬하게 행동했다. 국회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또 장외투쟁이냐"는 언론의 비난과 "반대만 하는 야당"이라는 여론, 그리고 "민생을 내팽개쳤다"는 여당의 프레임을 두려워 했던 야당보다 더 자신만만했다.

아마 새누리당이 그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현 당대표는 이날 오후 늦게 홀로 종적을 감췄다. "쉽게 물러날 것 같으면 시작도 안 했다"며 전의를 드러내던 그였다. 이 대표는 이후 성남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피켓시위까지 하겠다고 벼르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만하면 새누리당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태그:#정세균, #사드, #박근혜, #이정현,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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