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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들이 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규탄하고 있다.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첫 정기회 개회사로 사드배치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해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며 강하게 반발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규탄하고 있다.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첫 정기회 개회사로 사드배치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해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며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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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이 정기국회 첫날부터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았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와 사드 배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요구한 것이 야당에 편중된 정치적 발언이었다는 주장이었다. (관련기사 : "우병우 논란, 민망하다" 정세균 돌직구에 새누리당 '발끈')

새누리당은 "온당한 사과와 후속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 의장이 이에 응하지 않자 새누리당은 당장 이날 오후 예정됐던 추가경정예산안 상정도 무산시켰다. 또 이날 오후 속개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도 불참했다.

새누리당은 대신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표했다. "국회를 대표해야 할 국회의장이 좌파시민단체나 할 법한 주장을 개회사에 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국회 윤리위원회에 정 의장을 제소하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국회의장을 처벌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는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정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로도 이어졌다.

정기국회가 첫날부터 파행을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7년 전인 2009년 9월 1일,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했던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날치기 주범 사퇴하라'고 항의한 뒤 김 의장의 개회사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이 때 민주당은 야당이었다. 행정부와 보조를 맞춰 국정을 끌고 가는 집권여당이 국회 의사일정을 '중단'시킨 것은 극히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이례적 행보는 20대 총선 이후 재편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에 대한 고민이 기반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야당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초반 기싸움을 크게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에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는 질문을 받고, "야당이 국회의장과 합세해서 힘자랑 하는구나! 의회권력 지배했다고 그렇게 마음대로 하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증의 대권병" 막말 이면에는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 위기의식?

20대 총선 이후 주요 국면마다 야당에게 끌려다녔다는 인식도 있다.

지난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의 '노동개혁' 홍보비 편법 집행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고, 이번 추경 심사 때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지방교육채무 상환 6000억 원이 증액됐다. 당내에서는 추경 심사 협의 과정에서 '서별관회의 청문회'와 '백남기 청문회' 개최 요구를 수용한 것도 야당의 '몽니'에 밀린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대선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정기국회"라며 "야당의 일방적 요구, 합의 파기, 약속 뒤집기가 되풀이되면 불관용의 원칙으로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이러한 방침을 입증해야 할 자리가 된 셈이다. 의사일정 보이콧을 결정하는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이 같은 당내 인식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국회 환노위와 교문위의 날치기 사건과 오늘 정세균 의장의 정치적 중립 훼손 문제는 그 궤를 같이 한다, 새누리당을 무력화하고 현 정권에 도전한다는 것"이라며 "의장이 전쟁을 선포했으니 우리 여당도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추경해야 하니', '정기국회 해야 하니' 이렇게는 안 된다"고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이정현 당대표 역시 "1년 반이나 남은 현 정부를 무력화하고 식물정부를 만드려는 그러한 계책을 가지고 서로 역할분담해서 (국회의장과 야당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정 의장의) 근본적 목적은 대선이다, 내년에 본인이 나가든 과거 소속된 정당이 집권을 하게 할, 다른 것으로는 해석 안 되는 중증의 대선병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지난 총선 때 여소야대 되면서 저 분들 머릿 속에는 이미 집권했다는 오만과 자만으로 가득차 있다"고도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야당은 국회의장과 합세해서 의회권력을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집권여당을 무시하고 야당이 국회를 지배하려는 그러한 의회 폭거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지금부터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고 국정을 다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새누리당 전원이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 가능성 없어, "집권여당 맞나" 비판 나와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대 국회 첫 정기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회사로 사드배치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을 떠나 긴급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오른쪽)가 긴급의총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대 국회 첫 정기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회사로 사드배치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을 떠나 긴급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오른쪽)가 긴급의총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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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누리당이 마땅한 투쟁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다. 당장, '여소야대' 국회인만큼 이날 마련한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도 없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국회의장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도 국회선진화법상 여당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다.

의사일정 보이콧에 대한 부담은 집권여당인 만큼 더 크다. 당장 추경이 통과되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이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다수 의견을 담은 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으로 채택했다. 이는 오는 2일 재시도 될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의 청문경과보고서 처리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여당의 '보이콧'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을 가득 안기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정 의장도 새누리당의 사과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의장실을 찾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고성 항의'에도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앞서 정 의장은 본회의 파행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오늘 개회사가) 국회의장의 목소리지 왜 야당 목소리냐"면서 "국회의장이 국민을 대신해 말씀드린 것이다, (여당 의원들도) 진의를 잘 아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야당 역시 새누리당의 보이콧 결정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집권여당이 국회의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정기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것을 처음 본다"면서 "항의할 것은 하면서 국회 일정은 일정대로 밟아나가는 책임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비판했다.

또 새누리당이 전날 열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이날 오후 속개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불참한 점을 들며 "새누리당이 정기국회를 마비시키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정 의장의 발언은 국민의 민심을 전달한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오히려 "우병우 수석을 지키는 것이 추경안 통과나 대법관 인준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이냐"라며 "합의한 추경안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그간 했던 모든 말이 거짓말 아니냐"고 꼬집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국회 본회의 파행 후 기자들과 만나, "정 의장이 어디 도망치는 분도 아니기 때문에 의사를 모아서 유감표명을 할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이 중차대한 추경을 보이콧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집권여당은 책임을 지고 국정과 국회를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자기들이 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집권여당이 퇴장하고 그 중요한, 대통령이 강조한 추경 통과를 보이콧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장의 개회사에 대해서는 "저는 정 의장을 만나서 '엑설런트(Excellent)', 최고의 개회사를 했다고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태그:#새누리당, #정세균, #정기국회 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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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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