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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주까지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정의당의 전신인 진보정의당의 시작을 같이 하며 정의당에 애정을 쏟았습니다. 몇 년간 정의당을 경험하며 내부자로서 느꼈던 정의당의 문제점을 되짚어보며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 기자 말

정의당은 20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유일한 진보정당이다. 정의당은 지역구 2석, 전국구 4석으로 총 6석을 획득하며 19대 총선 때보다 1석을 더 획득했다. 예상보다 비례대표 당선자가 적게 나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전국구 의석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의당은 민주노동당 때부터 이어져온 원내 진보전당의 맥을 잇는 정당이다. 반복되는 통합과 분열로 예전만큼의 기세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지금까지 숱한 고비를 버티며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제법 고정적인 지지율도 나오고 있고 인지도도 있는 정의당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심을 표하고 있다. 정의당이 더 이상 성장 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요즘이다. 정의당에 '진짜 위기'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모호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당

정의당은 진보정당이지만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이지만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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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내세운다. 정의당은 원내 나머지 정당과는 달리 이념을 강조하는 진보정당이다. 반대로 진보정당들 사이에서는 정의당은 이념이 부족한 정당으로 취급받는다.

그러한 이중적인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정의당이 '대중성'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총선 전후로 당원이 2배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의당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유진의 정체카페' 등을 듣고 정치에 관심이 많아진 '소프트'한 사람들이 당원으로 많이 입당하며 진성당원제를 훌륭하게 만들어갔지만 정의당의 정체성에 대한 꼬리표는 항상 따라다녔다. 덩치는 커졌지만 근육은 붙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항상 있었다.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민주노동당은 당시 당 구호처럼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2004년에 국회에 첫발을 들어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없애기' 같은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과 다르게 민주노동당은 이념 중심적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반면에 정의당은 특별하게 기억되는 캠페인이나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6월 최장집 교수는 '정의당 의원단 워크숍'에서 정의당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업으로 ▲정의당은 누구를 대표하나(사회적 기반은 무엇인가) ▲정의당의 이념은 무엇인가 ▲조직으로서의 당이 가져야 할 내용에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최장집 교수는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과 비교해 새누리당에게 반대하는 모습 말고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으로서는 매우 치욕적인 평가였다. 현재 정의당이 메이저도 아니고 마이너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를 확실히 보여준 쓴소리였다. 정의당이 앞으로 당면한 과제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차세대 리더십 부재

정의당 하면 떠오르는 현역 정치인은 심상정, 노회찬 정도이다. 심상정, 노회찬은 국민속에서도 인정받는 정치인들이지만 정의당 입장에서는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작년 당 대표 선거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도 어차피 심상정 아니면 노회찬이 당 대표로 당선되기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 이후 반복되는 분열과 통합을 거치면서 당의 스타는 나오지 않았다. 당의 내홍을 처리하고 계속되는 선거에만 집착하니 차세대 리더가 나올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 대표 후보 조성주는 젊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남다른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청년유니온 소속 당시 활약상을 강조하며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다는 신선함이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과적으로 17.1%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기세가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이다. 조성주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경선에 나오며 국회진출을 노렸지만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당원 투표 결과 2214표를 받으며 비례 6번이 됐고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

한때 정의당 후보들은 선거에서 정당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심상정과 노회찬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의 구별점을 모르고 당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심상정, 노회찬 있는 정당입니다"와 같은 말로 홍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이 커지기 위해서는 세대교체와 신인들의 등장이 필수다. 정의당이 몇 년째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이유는 더 이상 보여줄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로 어떻게든 몇 명을 국회에 진출시켜도 스타성을 갖춘 국회의원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도부에는 청년부대표가 있지만 큰 활약을 못 보여주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 대표정치인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삼성'과 대적했던 심상정과 TV토론회를 통해 이름을 알린 노회찬처럼 당내 정치인들은 각자의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노회찬, 심상정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더 이상의 대표정치인을 키우지 못한다면 정의당은 성장하지 못한다.

위기관리능력 제로

근래 정의당은 창당 이후 최고의 관심을 받았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쓴 한 장의 논평이 정의당을 다 뒤집었다. 문예위는 넥슨이 한 성우의 녹음물을 쓰지 않음을 비판하며 성우에 대한 노동권의 침해권이라는 논평을 냈다. 논평에서는 그 성우가 메갈리아 티셔츠를 본인 SNS에 인증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우 녹음물이 교체 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논평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휩쓸었다. 메갈리아를 옹호하냐는 비판으로 당은 곤욕에 빠졌다. 이 사태로 밝혀진 인원만 600명 가까운 인원들이 탈당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적절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논평이 화제에 오른 주에 심상정 대표는 본인의 팬클럽 창당 등의 행사에 집중해 비판을 받았고, 당 상무위원회는 논평을 철회한 뒤에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문제는 정의당 안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일부 당원들은 스스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입장이 다른 당원들은 서로에게 날 선 말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당원은 심상정 대표의 탄핵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당 안팎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의당은 군소정당이다. 규모가 작다보니 본인들의 능력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환경적 요소가 정의당에게 어려움을 가져다 줬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정의당은 주어진 상황에서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지금까지 버텼다는 의미도 된다.

문제는 지금처럼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거슬러 올라가 민주노동당 때 '일심회 사건', 통합진보당 때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건' 그리고 정의당 '문예위 논평 사건'처럼 내부의 큰 일이 한번 벌어지면 당은 무너져버렸다. 지금까지 위기관리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의당은 지난 진보정당들처럼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존폐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정의당이 원했던 3당의 위치는 창당한 지 1년도 안 된 국민의당이 갖고 갔다. 심상정과 노회찬은 늙어가고 있고 정의당은 내부문제를 수습할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정의당이 여러모로 위기에 빠졌다.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을 만들겠다는 꿈도 아득해 보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 국민들에게 7.23%의 지지를 받았다. 득표수로 치면 171만9891표를 획득했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국민들의 200만 가까운 표는 정의당이 대한민국에 진정한 진보정당을 만들어 보라는 뜻이다. 위기는 기회다. 앞으로 정의당이 당면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냐에 따라 정의당의 입지는 바뀔 것이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의당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태그:#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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