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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두 개인 마을회관 여행, 각자 이불 들고 참가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하게 되는 생각이다.

많은 여행기에서 똑같이 말하는 것은 낯선 풍경과 처음 보는 사람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나 실수, 장엄한 자연 앞에서 압도되던 기억이나 이색적인 문화체험, 때로는 함께 간 일행들과의 소소한 불화 때문에 겪은 마음고생까지 즐거운 추억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 하룻밤 이틀을 함께 했던 스물두 명의 사람들이 크게 만족했던 이번 여행은 좀 달랐던 편이다.

원래 여행이 끝나면 폐쇄하기로 했던 단체 카톡방은 열기가 더 높아져서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고 자신의 집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며 서로를 초대하고 있다.

숲 밭, 자연재배, 사람과 농작물. 생명. 이런 것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우리 일행 22명 외에 최성현선생 옆으로 와서 사는 청년들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
▲ 자연 속에서 숲 밭, 자연재배, 사람과 농작물. 생명. 이런 것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우리 일행 22명 외에 최성현선생 옆으로 와서 사는 청년들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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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한 분이 그려 올린 수묵화
▲ 수묵화 회원 한 분이 그려 올린 수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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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여행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꼬리를 잇는 중인데 어떤 분은 여행지에서 봤던 늙은 소나무를 수묵화로 그려 올렸다. 그 분이 수묵화의 상당한 경지에 이른 분임을 화들짝 놀라며 알게 된다.

지난 주말은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폭염이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아 무척 더웠는데 우리는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잤다. 방이 두 개 있는 마을회관이었는데 방은 두 개지만 여자들이 자려 했던 방이 너무 작아서 일부는 큰 방에서 남자들과 같이 자야 했고 샤워도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외식하지 않기, 페트병 생수 쓰지 않기, 개인 접시 챙겨가기

밥은 음식점에서 사 먹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직접 했고 국도 끓이고 반찬도 조리했다. 주방은 당연히 날씨보다 더 더웠다. 전문 숙소가 아니라서 숙박에 따른 아무런 편의용품도 없었다. 청소는 당연히 우리 몫이었다.

밥을 안 사 먹는 것은 물론 페트병 생수를 단 한 병도 사지 않았으며 물 컵과 물병, 수저, 개인용 접시까지 다 각자 챙겨 가기로 했던 것은 우리가 조금만 사려 깊게 주위를 살펴보면 주변 천지가 일회용품들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손만 뻗치면 유기화학 화합물이요, 수입 농산물이요, 유전자조작(지엠오 GMO) 가공식품이요, 생활 화학재들이어서다. 폭염과 옥시 사태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생수 페트병은 여행 갈 때는 물론 토론회 등의 행사에 별 생각 없이 개인별로 나눠 주는 게 관행이 되어 있는데 반쯤 먹다 남은 비싼 생수가 빈병과 함께 한순간에 다 쓰레기로 둔갑하는 현실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종이컵과 함께 나눠주는 생수 페트병은 무조건 1인당 1개씩이 기본이다 보니 한 모금 마시고는 종이컵과 함께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페트병 오염은 대륙을 뒤덮고 해양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환경단체나 시민단체의 행사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잠깐의 편리를 위해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하는데 이미 몸에 배어 습관이 되어 있다.

마을회관에 이불이 없으니 각자 이불을 하나씩 가져오라는 알림을 듣고 겉으로 드러낸 사람은 없었지만 불평이 나올 만도 했다. 더운 여름에 반찬도 하나씩 가져 오라니 차라리 회비를 더 걷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무도 공개적으로 불평하거나 그런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설마 주최측에서 술을 준비 안할 줄이야... 차 마시며 보낸 하룻밤

어떤 이는 숙박 여행을 가서 술 한 방울 못 먹는 경우는 60평생 처음이라며 미리 주최 측에서 술을 안 준다고 했으면 사 왔을 것이라고 불만 섞인 농담을 했다. 분명히 자기가 먹고 마실 것을 가져오라 공지했지만, 여행을 주관하는 단체에서 설마 술을 준비하지 않기야 하겠느냐는 상식적인 믿음이 깨졌던 것이다.

요즘 웬만한 여행은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관하면서 공짜나 저렴한 것들이 많다. 체험행사나 연수, 탐방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여행들은 그야말로 맨 몸, 맨 입으로 가면 집에서보다 더 호화롭게 즐기고 마시고 먹는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맨 손으로 와서는 술이 없어도 불평, 모기가 한 마리 보여도 불평, 샤워실이 좁아도 불평이다. 옆방과 소음문제로 다투기도 한다.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최성현선생의 농장이다. 논 둑 버드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나락 논 옆의 버드나무는 오래 전 전통 농사의 흔한 풍경이다. 현대농법에서는 그늘이 생긴다고 질색이지만 만물만생의 생명 공간에서는 버드나무는 벼 농사의 일꾼이다.
▲ 자연재배 농장의 대화 최성현선생의 농장이다. 논 둑 버드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다. 나락 논 옆의 버드나무는 오래 전 전통 농사의 흔한 풍경이다. 현대농법에서는 그늘이 생긴다고 질색이지만 만물만생의 생명 공간에서는 버드나무는 벼 농사의 일꾼이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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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동네 길가에 흙더미가 무너져도 삽을 들고 달려들기보다 군청에 전화부터 한다. 길가에 풀이 수북해도 면사무소에 전화다. 노인일자리라도 해서 풀 좀 깎으라고. 시골뿐이랴. 도시 옆집의 장미 널쿨이 담장을 조금만 넘어와도 구청민원실에 전화한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시장이나 공공기관에 자발적으로 저당 잡히고 자신의 능력이 퇴화되는 것을 모른다. 이웃과 다투거나 타협하면서 조화의 능력을 키울 줄 모른다.

이번 여행에 참석한 사람들이 가져 온 여주 차와 사과즙, 연잎 차가 있었지만 여행지에서 술 한 잔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들 술이 없어 아쉬워했지만 그런 분들조차 술이 없어서 다음날 아침이 너무도 상쾌했다고 말했다.

다들 일찍 일어났고 '고음실 마을'의 농촌 길을 산책할 수 있었다. 술집뿐 아니라 식당이나 집에서도 늘 술은 마시니 여행지에서 만큼은 술 없이 지내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을 경험하는 것이 될 수도 잇을 것이다.

문호리 리버마켓, 필요 이상 축적 금지, 잉여는 공동체로 환원

문호리 리버마켓의 관계자 설명을 듣고 질문과 답을 주고 받는 참석자들
 문호리 리버마켓의 관계자 설명을 듣고 질문과 답을 주고 받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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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리 리버마켓의 장인. 염천 더위에도 더 손길, 저 눈길의 집중.
 문호리 리버마켓의 장인. 염천 더위에도 더 손길, 저 눈길의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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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에서 발행하는 <신인간> 대표를 만났다. 동학 시천주 사상을 토대로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놀이터를 운영 중이다.
▲ 모시는 사람들 천도교에서 발행하는 <신인간> 대표를 만났다. 동학 시천주 사상을 토대로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놀이터를 운영 중이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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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부족함과 불편함을 새로운 경지와 접촉하는 발판으로 삼았고 단지 내 맘에 안 들 뿐, 상대는 늘 최선을 다한다는 그 믿음을 유지하면서 여행을 이어갔다.

'문호리 리버마켓' 장터에서는 땡볕을 얇은 천막 하나로 가리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예정대로 긴 시간 동안 장터 운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농부들이 직접 만드는 자율적인 장터를 떠 올리며 토론했다. 설명하고 답변하는 문호리 리버마켓 관계자나 우리들 모두 땀을 뻘뻘 흘렸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큰 감동과 함께 놀라움 자체였다. 요즘 유행하는 협동조합을 훨씬 뛰어넘는 체제로 보였다. 좌계 김영래 선생이 오래전부터 연구해 온 동아시아 고대 장터인 '호혜시장과 신시'에 가까운 것이었다. 필요 이상의 축적을 금하며 잉여를 공동체로 환원하는 시장.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 사회집단과 조화를 이루는 '배달화백' 체제 말이다.

조직화의 과정, 운영방식, 지도력, 개인의 개성과 집단규범간의 조화, 고대 직접 민주주의, 권력과 권위의 형성 문제, 진입 문턱과 개방성 등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런 모범을 만들어가는 그분들에 대한 존경을 금할 수 없었다.

서로가 통해서였을까. 대담이 끝나고 나서 그쪽 분이 내게 그랬다. "지금까지 문호리 리버마켓을 찾은 개인과 단체분들이 여러 가지를 묻고 궁금해 했지만 오늘 오신 분들만큰 수준 높은 대화를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주로 하루에 얼마쯤 돈을 버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고음실 마을'의 최성현 선생 자연재배농장에서도 강의보다는 대화를 했다. 웬만한 연수나 탐방에 꼭 끼어있는 유명인의 강의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강의가 갖는 한계가 분명해서다. 전문가가 한 두 시간에 걸쳐 완벽하게 진행하는 강의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딱 그 순간 그 만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강의 대신 참석자들 모두가 나선 '10분 발표' 시간

마을회관에서 '10 분 발표'가 진행되었다. 왼쪽에는 10분간 발표하는 분들의 이름과 주제를 붙였고. 오른 쪽에는 "좋다. 여기가 참 좋다"라는 우리를 확인하는 글을 써 붙였다.
 마을회관에서 '10 분 발표'가 진행되었다. 왼쪽에는 10분간 발표하는 분들의 이름과 주제를 붙였고. 오른 쪽에는 "좋다. 여기가 참 좋다"라는 우리를 확인하는 글을 써 붙였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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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서 첫 날 밤에 강의라 할 만한 것이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그런 강의가 아니라 참석자들 여러분이(9명) 나서서 생각이나 주장보다는 '삶'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생각과 주장은 듣는 사람 각자의 몫이고 발표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러하게 살고 있는 것을 소개할 뿐이었다. 미리 신청을 받아 진행한 '10분 발표'였다. 처음에는 '10분 토크'라고 했다가 토크라는 남의 나라 말을 '발표'로 바꾸었다.

생각과 주장은 진정한 그 사람 자체일 수가 없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경우가 많다. 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 자체에 더 가깝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주장과 바람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거리는 잴 수 없을 만큼 멀고 오래 걸린다.

더구나 생각이 가슴을 거쳐 손과 발에까지 이르러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은 빼 놓고 삶을 나누었다.

'10분 발표' 시간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한 발표자가 오열했다. 자신을 혼자 힘으로는 들여다보는 깊이에 한계가 있었나 보다. 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호흡을 같이하며 그에게 마음을 모아주자 그는 멀쩡한 평소 시간에는 만날 수 없었던 또 다른 자신과 직면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울었고 우리는 웃었다. 그도 우리를 따라 웃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주먹으로 눈가를 쓱 훔치며 얘기가 엉뚱한데로 간다고 자책을 하면서도 마무리를 잘 했다.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가서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주입되는 감동보다 깊은 속마음에서 솟아나는 공명은 감염력이 높다. 발표자 뿐 아니라 청취자도 한 마음이 되었다.

5~6일에 수십만 원씩 내고 가는 이런저런 명상프로그램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 난 것이다. 자연환경과 인문사회 환경을 찾아가는 여행이 전부인 줄 알던 사람들이 내면으로의 자기 탐사 여행을 한 셈이다.

여행은 '습관화된 나'를 벗어나 새로움을 찾는 것이라 한다면 새로움은 외부 환경과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리라. 전라북도 장수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농민 생활인문학-닦음과 행함'에서 한 여행이었다.

회원들이 가져온 것들
▲ 가져 온 반찬들
고추자반, 마늘 쫑 장아찌, 콩잎 장아찌, 쌈장, 가지, 적 양파, 콩나물, 북어 채, 멸치, 감자, 깻잎, 풋고추, 마늘, 현미 쌀, 율무, 흑미, 마늘 짱아찌, 15년 된 된장, 고로쇠 고추장, 천연 양념, 쑥개떡, 김치, 뻔데기

▲ 가져 온 과일들
참외, 포도, 사과, 토마토, 방울토마토, 곶감, 과자, 찰 꽈배기

▲ 각종 차
연잎 차, 여주 차, 사과 즙, 아메리카노 커피, 담근 술

▲ 재능기부
기획, 차량 사회, 요리, 설거지, 청소, 10분 발표, 토론 사회, 시낭송, 요가명상, 대금 연주, 농 짙은 유머, 노래, 판소리, 진한 눈물의 자기 고백, 따뜻한 포옹, 재롱, 사진촬영, 넉넉한 미소

▲ 이불을 더 가져 온 사람도 있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경향신문 제 칼럼 난은 지면 한계도 사진을 올릴 수 없어서 여기에 보강해서 올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농민생활인문학, #문호리 리버마켓, #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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