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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법환포구 제스토리 까페 내부
 제주 법환포구 제스토리 까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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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제주 올레길, 혼자 왔으면 큰일날 뻔했네]

요즘 어디서나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하지만 제주를 걷다 보면 스토리텔링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평범한 길모퉁이에, 벤치 옆에, 카페에 심지어 판매하는 음료 이름 하나까지 이야기를 입혀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 걸 자주 발견하게 된다.

올레길에 세워져 있는 돌비석
 올레길에 세워져 있는 돌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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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에 세워진 돌비석
 올레길에 세워진 돌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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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환포구 해녀마당
 법환포구 해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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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둘째 날 묵은 법환포구에서 만난 카페 한 곳은 특히 인상깊었다. 포구 바로 앞에 서 있는 이층 건물, '구경하는 손님들도 환영합니다'라는 안내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카페 안의 멋스런 구조부터 곳곳에 전시돼 있는 작고 예쁜 소품들도 시선을 끌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카페 곳곳에 세워진 나무팻말들이다.

법환포구 제스토리 내부
 법환포구 제스토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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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내부 나무팻말
 까페 내부 나무팻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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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내부 나무 팻말
 까페 내부 나무 팻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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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내부
 까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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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말에 써진 구절들이 가슴에 와 닿아 여행의, 인생의 작은 위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는 휴대폰 안의 추억을 꺼내준다고 하는데 휴대폰 안의 사진을 나무액자에 프린트를 해 준단다. 우리도 그동안 휴대폰 안에 잠들어있던 몇 장의 사진을 꺼내 액자를 만들어왔다.  

서귀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포구 중 하나인 법환 포구는 포구 전체가 화가가 잘 그린 그림처럼 균형을 갖추고 있어 아름답다. 오늘 걸어야 할 올레 7코스의 3분의 1지점에 있는 포구인데 아마 출발지인 외돌개부터 시작해서 걷다가 이런 예쁜 포구를 만났으면 더 반가웠을 것 같다.

법환포구
 법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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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어제 숙소가 여기이다보니 오늘 걷기 작전을 어떻게 짜야할지 고민이다.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장은 굳이 출발지인 외돌개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끝으로 걸어간 뒤 힘이 남으면 버스를 타고 외돌개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 더위에 목숨 걸고 걸어도 상 주는 사람도 없으니 적당히 걸으라는 거다. 아들과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다 주인장의 충고를 받아들여 3분의 1지점인 법환포구부터 걷기로 했다.

여전히 폭염은 '호환마마'만큼 두려우니 아침 7시에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토스트를 먹고 길을 나섰다. 법환포구 입구에 서니 우리를 안내할 올레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화살표가 없으면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다. 화살표를 찾아 헤매다가 눈에 띄는 독특한 시설이 있어 다가가 보았다.

법환마을 용천수 목욕탕
 법환마을 용천수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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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널찍한 사각형의 시설은 보기에는 목욕탕처럼 보이는데 사방이 훤히 틔어 있다. 옷을 입은 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수영장겸 목욕탕 겸 빨래터로 마을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침이라 그렇지 좀 있으면 사람들로 붐비는데,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단다. 발을 담궈보니 제주 용천수 특유의 맑고 차가움이 몸 전체로 전해온다. 자연이 만든 수영장인 셈이다.

화살표를 찾아 7코스 종점인 월평포구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역시 '햇볕은 쨍쨍, 폭염은 계속'이다. 걸기 시작한 지 10여 분 만에 온몸이 땀에 젖었다. 올레 7코스는 시작지점인 외돌개부터 법환까지는 산책길처럼 평이한 길이 이어지는데, 이 곳 법환부터는 길이 쉽지는 않다.

'일강정 바당올레'라고 불리는 이 길은 범섬이 있는 바다를 따라 이어져 풍경은 아름답지만 현무암 돌멩이들이 즐비한 자길길을 걸어가야 한다. 일일이 돌멩이를 다듬어 만든 길이라고 하는데 중간에는 염소가 다니던 길을 삽과 곡갱이로 개척한 코스도 있어서 뾰족한 바위 사이를 넘나들어야 할 때도 있다.

7코스 걷고 있는 아들
 7코스 걷고 있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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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사흘째가 된 나는 걷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 걷기가 훨씬 수월한데 아들이 돌길을 걷는 게 너무 힘들다고 앞서가는 나를 계속 불러 세운다. 그러고보니 오랫동안 잊고 살았지만 대학 다닐 때 지리산에 반해 2박 3일동안 지리산 전체를 걷는 지리산종주를 3번이나 했었다. 지리산뿐만 아니라 오대산이며 여러 산들을 꽤 다니기도 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이들면서 이제는 걸을 수 없으려니 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그게 아니다. 몸이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내 별명이 지리산 산신령이었는데... 죽지 않았네, 지리산 산신령 !'   

바당올레를 벗어나자 길은 다시 언덕으로 이어진다. 높은 언덕으로 올라오자 멀리 인자하게 누운 한라산이 다시 시야에 들어온다. 계속 걷는 우리를 보고 기특하다는 듯 반갑게 손짓이라고 하는 듯하다. 언덕 옆 콩밭에서 노래가사처럼 콩밭메던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또 '이 더위에 뭔 짓이냐'고 걱정을 한다.

'뭐, 이 더위에 아주머니께서는 콩밭도 메시는데요, 뭘.'

언덕을 벗어나자 길은 대로로 이어진다. 그래도 3분의 1지점에서 시작한 덕분인지 오늘은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제일 걷기 힘든 길이 아스팔트를 따라 이어지는 길인데, 표지판은 아스팔트로 이어져 있다.

그렇게 걷다보니 갑자기 매우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로 곳곳에 세워진 천막과 현수막들, 각종 구호들이 적힌 입간판들이다.

강정마을 입간판
 강정마을 입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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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현수막
 강정마을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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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뉴스에서 보던 강정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뉴스에 나올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지다가 또 잊고 살았는데, 막상 걷다가 천막과 마주치니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 감동이 솟아오른다.

'아, 여전히 , 아직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줄지어선 천막 한 곳으로 다가갔더니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이 송곳과 조각칼을 든 채 고개를 숙이고 나무판에 뭔가를 새기고 있다. 자세히 보니 예수님이다.

"왜 예수님을 새기고 계세요? "
"시간 보낼려고, 여기서 시간 보낼려니 할 게 없어서 시간 보낼려고... "

천막성당에서 조각을 하고 있는 문정현신부
 천막성당에서 조각을 하고 있는 문정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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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는 얼굴을 보니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다. 평생을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이 투쟁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함께했던 문정현 신부, 제주 강정마을 투쟁에는 몇 년전 주민등록상 주소까지 옮기고 합류를 해 천막성당을 열었다. 제주 해군기지 투쟁과정에서 수염이 한줌 뽑혀 나가기도 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신부님은 매일 11시, 이 천막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한다고 한다. 지금 시간이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기다렸다 미사에 함께 참여를 할지, 가야할 길을 계속 갈지 고민을 해 본다.

계속 가야 7코스 종점까지 걷고 다시 버스를 타고 외돌개로 이동을 해서 걸을 수 있을 듯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고하시라는 말만 남기고 아들과 함께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으면서도 마음은 계속 천막성당으로 향한다. 뭔가 마음이라도 보태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아들에게 말했더니 다시 가서 같이 미사를 드리잔다. 그래서 걷던 길을 다시 돌아와 11시 미사를 함께 드렸다.

천막성당에서 미사집전중인 문정현신부
 천막성당에서 미사집전중인 문정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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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성당 11시 미사모습
 천막성당 11시 미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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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노신부가 뙤악볕으로 달구어진 천막성당에서 집전하는 미사, 노신부의 낮고 울림있는 힘찬 목소리에 왠지 눈물이 차오른다. 1시간이나 계속된 미사를 마치고 적은 금액이지만 헌금을 하고 천막성당을 나왔다. 몇 년째 길 위에서 부당한 권력과 투쟁에 앞장서고 계신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이 참 인상 깊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 평화를 전하십시오."

미사를 드리고 나와 다시 화살표를 찾아 걷기 시작했더니 화살표는 포구를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 포구는 없다. 강정포구 쪽의 공사가 거의 진행돼 포구가 아니라 거대한 콘크리트 공사판이다. 게다가 12시가 넘은 시각에 뙤약볕은 갈수록 강해지고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아들과 내가 손을 내밀어 몇 번이나 히이하이킹을 했지만 차들은 쌩쌩 달려갈 뿐 서지 않았다.

더워 죽을 지경인데, 차 한 대가 앞에 선다. 탔더니 우리 아들보다는 좀 커 보이는 아들, 딸을 태운 아빠가 차를 세운 것이다. 이 곳 공사책임자이신데 몇 년째 다녀봤지만 여기서 히치하이킹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이 더위에 무슨 고생이시냐고 호탕하게 웃으신다. 그리고는 우리를 월평 포구 앞까지 데려다주고 가신다. 무엇보다 차에서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한숨 돌렸다.

월평포구에서 화살표는 다시 언덕을 향한다. 길은 언덕 위 먼지나는 풀밭사이로 이어진다. 이제 진짜 더워 쓰러질 지경이다. 분명히 월평포구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종점은 왜 이렇게 나오지 않는 거야? 투덜대며 걷기를 1시간여, 길은 다시 아스팔트 길과 만나는데, 거기 건물들 사이에서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불쑥 반가운 간판이 눈에 띈다. '송이슈퍼' , 7코스 종점 도장이 있는 곳이다.

7코스 종점 송이슈퍼
 7코스 종점 송이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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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도장찍는 곳은 관광지의 시작코스에 예쁘게 있는 경우가 많은데, 버스 정류소앞 슈퍼에 도장찍는 곳이 있다니, 나름대로 깜짝재미가 있다. 7코스 종점 도장을 찍은 것이 2시, 다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외돌개로 돌아와 7코스 시작지점 도장을 찍었다.

7코스 외돌개는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지로 지정된 곳으로 용암으로 생겨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답게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이곳에서 야심차게 다시 걷기를 시작해 법환포구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외돌개의 선녀탕이 발목을 잡았다. 물개인 아들이 선녀탕에 들어가 1시간여 신나게 물놀이를 하며 놀다가 다리에 작은 상처를 입어 더 이상 걷기가 힘들었다. 결국, 7코스 3분의 1은 다음을 기약하며 미완으로 남기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중 2아들과 함께 한 3박 4일의 짧았던 폭염속 올레길 여행, 숙소에 돌아와 사진들을 보니 사진 속 모습들은 그저 멋진 풍경에 즐겁기만한 모습들이다.

'사진은 우리의 땀을 기억하지 않는구만.' 

올레길을 걸어가는 아들
 올레길을 걸어가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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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어서 힘들었지만, 폭염이어서 이야깃거리는 더 많았고, 기억할 만한 추억도 더 많이 남았다. 새삼 법환포구 카페의 글귀가 이번 여행에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좋았던 추억과 나빴던 경험 모두 덕분에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아들과 나는 언젠가 틈을 내 '올레 패스포트'를 챙겨들고 또 배낭을 쌀 것이다. 다음 올레 걷기는 첫 여행의 경험들 덕분에 아마 훨씬 쉽지 않을까?

※ 셋째날의 깨달음 :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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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작가 협회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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