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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경축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건국 68주년'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또 다시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광복절 경축사를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15일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경축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건국 68주년'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또 다시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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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진앙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강한 여진으로 이어지며 사회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5일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를 '건국 68주년'이라고 표현하면서부터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라면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셈이다. 그러나 국민과 야당은 박 대통령의 이런 표현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1948년을 건국년으로 삼게 되면, 1919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27년 역사는 모조리 부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한 발 더 나아가 1948년 8월 15일을 아예 '건국절'로 법제화하자며 주장하고 있어 논란은 당분간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제헌헌법에서도 '임시정부' 기원 명시하고 있어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와의 오찬' 당시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인 김영관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국절' 관련하여 직언을 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김영관 옹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와의 오찬' 당시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인 김영관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국절' 관련하여 직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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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 측이 주장하는 '1948년 건국설'의 근거는 국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의 실재 여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망명 정부인 임시정부는 위의 요소들을 갖추지 못했기에 건국의 기원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 국가의 세 요소를 갖추고 1948년 출범한 정부야말로 건국의 시발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야권의 반박도 만만찮다. 국가의 구성요소만으로 건국의 기원을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 역시 국가 구성 요소를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이미 한반도 북부에서는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북한은 독자적인 군대와 헌법을 마련해놓고 그들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남몰래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출범 초부터 한반도 북부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국가의 구성 요소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국가는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여당 측 주장대로라면 한반도 북부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역시 위헌이 된다. 이를 들어 야권은 '국가의 구성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얼토당토 않다'고 반박한다.

이외에도 초대 대통령이자 제헌국회 의장이었던 이승만 역시 대한민국의 기원을 임시정부가 수립된 때로부터 비롯됨을 천명한 바 있고, 그러한 입장은 제헌헌법 전문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하고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못 박은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된 '건국절' 논란

2008년 정부 수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주년'이라는 표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이 로고는 당시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기념 로고이다.
▲ 건국 60주년 기념로고 2008년 정부 수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주년'이라는 표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이 로고는 당시 정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기념 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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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건국절 논란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첫 해이기도 했던 2008년은 정부 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정부는 '건국 60주년'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대대적인 홍보와 자축성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국무총리 산하에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란 조직까지 만들더니, 종내에는 광복절이라는 용어를 건국절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각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여론의 뭇매로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박근혜 정권 들어 그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으니, 이 해묵은 논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논란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2008년 당시처럼 흐지부지 끝난다고 한숨 돌릴 일은 아니다. 또다시 불거진 건국절 논란을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는다면, 언제 어느 때고 다시 이 논쟁을 반복해야할지도 모른다.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논쟁은 많은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안길 것이고, 건국절 논란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지경에까지 이를 우려가 있다. 어쩌면 건국절 추진 세력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개헌으로 논란을 매듭짓자

1920년 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이다.
▲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1920년 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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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건국절 논란이 한창인 지금, 아예 이 문제를 매듭짓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바로 개헌을 통해 헌법 전문(前文)을 뜯어고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번 논란 역시 결국은 말장난이나 다름 없다. 야당 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헌법 전문의 구절을 들어 여권의 무리한 건국절 추진을 비판하지만, 여당 역시 헌법 전문의 같은 구절을 들어 야당의 주장을 반박한다. '법통이란 그저 정통성이라는 명분에 지나지 않을 뿐, 실질적인 건국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단어가 문제라면 차라리 그 단어를 빼버리고 대한민국의 기원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전문을 새로 짓는 것이 어떨까.

때마침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개헌 논의'는 헌법 전문 개정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개헌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낡은 정치체제로는 더 이상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국회의원들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10명 중 8명이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개헌 논의와 더불어 헌법 전문에 대한 개정 논의도 함께 하자. 새로운 정치체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헌법의 근간이 되고 핵심이 담겨있는 전문에 대한 개정 논의부터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 아닐까.

읽기 어려운 헌법 전문... 개정 필요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사실 현행 헌법 전문은 온통 비문(非文) 투성이다. 끊어짐 없이 한 문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가독성이 매우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 투성이다. 더구나 마지막으로 헌법을 개정한 1987년으로부터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면 세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이다.

헌법은 그 국가의 역사와 함께 미래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변화한 시대상에 발맞추어 헌법 전문을 개정하자. 민족과 동포애만을 강조하는 구시대적 가치에서 벗어나, 지구촌 시대 '국민국가'에 걸맞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아내면 좋겠다. 다문화, 성평등, 경제민주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전문 개정 작업에는 국어학자와 역사학자가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어법에 맞지 않는 비문들을 교정하고, 한자어 대신 아름다운 순우리말로 문장을 꾸며보자. 건국절 논란이 다시는 숨을 쉴 수 없도록 대한민국의 기원을 분명히 하는 구절도 들어가야 한다. 이 부분은 굳이 새로 창작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제헌헌법의 구절을 그대로 끌어다 쓰기만 해도 충분하다. 법통이라는 해석하기도 어려운 단어를 빼버리고 아예 3·1혁명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음을 짧고 분명하게 표현하자.

그리하여 개정될 헌법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온전히 담겨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태그:#건국절, #대한민국, #광복절, #박근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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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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