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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나들이
▲ 자전거 자전거 타고 나들이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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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폭염 때문에 하루 일과가 새로 짜였다. 일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많이 조정되었는데 밭에 나가는 시간은 대폭 줄거나 없어졌지만 낮 시간에 매일 계곡으로 피난 가는 것이 추가되었다.

그렇다. 피난이다. 더위 식히러 간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피난 가는 게 맞다. 사정없이 뜨거워지는 낮 시간대에 이곳저곳 그늘을 찾아 몸을 숨겨도 보지만 소용이 없다. 달아오른 태양 열기는 곳곳을 들쑤셔서 콧구멍을 어느 쪽으로 돌려도 숨이 턱턱 막혀 온다. 도망 갈 곳은 계곡 물 속이다. 가장 안전한 피난처다. 버티다 안 되면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도시 사는 사람들도 폭염으로 생활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사무실 주변 식당을 순회하던 월급쟁이들은 문 밖으로 나가는 게 고역이라 배달 도시락을 시켜 먹는다든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노래방이나 카페에 가서 잠깐씩 오수를 즐긴다는.

우리 집은 아직까지 기적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내 고집 하나가 있는데 냉방기와 선풍기 안 들이기다. 우리 선조들이 수 천 년을 부채 하나로 더위를 물리쳤는데 그 핏줄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나도 그렇게 버텨보는데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여름을 났다.

신체조건이나 영양조건이 조상들보다 월등하게 나은 게 분명한 내가 선조들처럼 살지 못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방 뒷문에 모기장을 치고 활짝 열어두면 마당 쪽 앞문을 향해 시원한 공기가 제법 들이친다.

남향인 마당이 열기로 가득 차 있는 반면에 뒷산을 향하고 있는 뒷문 쪽은 저온 상태라 자연스런 대류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가 이런 원리로 더운 여름을 났던 것이다. 

자동차를 없애고 자전거 탄 지 1년이 훨씬 지났고 선풍기와 냉방기도 없는데다 화식보다는 생식을 많이 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이산화탄소 발자국 경연대회라도 열린다면 입상 할 수준은 되리라 본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장계 장에 나갔는데 자전거 짐받이에는 장바구니까지 설치되어 있는 걸 보고 아는 분이 물었다. 너희 동네에는 1000원 행복택시가 운행되는데 왜 자전거 타고 다니느냐고.

1000원만 내면 면 소재지에서 12킬로가 넘는 우리 집까지 행복택시가 달려오지만 교통약자를 위한 그 제도가 도리어 과도하게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역작용이 있으면 안 된다는 내 소신은 여전하다. 그래서 돈 1000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큰 짐이 없으면 자전거를 탄다.

장수 장안산과 지지계곡 일대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선다고 하여 군민들이 바짝 긴장하고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후변화가 극심해지는 이때에 삼림을 파괴하는 풍력발전기를 막아서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저 에너지 생활을 더욱 다그쳐 가야 할 시절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난 7월 전기료가 기본요금을 살짝 넘는 4천원 남짓 되어 가정용 전기 누진제 논란이 먼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선풍기는 가을걷이 할 때 들깨나 콩을 선별 하면서 쓰던 게 있었지만 작년에 고장이 난 뒤로 새로 사지 않았다. 내게는 부채 몇 개가 폭염에 맞서는 유일한 도구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무지막지한 무더위의 습격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계곡 피난이 시작 된 것이다.

계곡
▲ 계곡 계곡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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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하나와 신문, 그리고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한 권 들고 일어서면 그게 내 피난보따리가 된다. 이때부터 두 세 시간의 도망자 신세가 되는데 도망자는 원래 뒤를 쫓는 맹수 같은 추적자가 있어야 제 맛이지만 감히 계곡 물 곁으로는 더위가 얼씬거리지 못한다. 완벽한 해방구다.

1500미터 남덕유산이 만들어 놓은 천연 계곡의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을 뿐더러 굽이굽이 바위 뒤를 돌아 나무 그늘을 타고 내려오는지라 제법 싸늘해서 10여분을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물속을 들락날락 하는데 두어 시간 그러다 보면 입술이 파래지면서 몸에 소름이 살짝 돋는다.

하늘을 가리는 양안의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드는데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순결한 청정수가 내 몸둥아리 섭씨 36.5도를 물의 온도로 끌어내리는 데는 촌음이면 된다.

유원지로 개발이 되지 않은 덕에 출향민들이 여름휴가를 맞아 고향에 왔다가 들르는 정도지만 내가 이용하는 계곡 길은 워낙 험지라 그마저도 오는 이가 없다. 그러니 가리고 걸치고 할 게 없다. 거창에 사는 고향 친구가 왔다가 내 전용 풀장을 만끽하고는 '알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갔다. '알몸 탕'의 준말인 듯하다.

그렇다고 이곳이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물고기들이다. 큰 놈이 손가락만 하고 작은 놈은 엄지발톱만 한 이 녀석들은 도무지 겁이 없다. 마구 달려들어 물어뜯다시피 한다. 이들에게 뜯기면 따끔따끔 하다.

이빨이 없으니까 주둥이로 빨아대는 것인데 그 흡착력이 상당한 편이다. 뭐 볼 게 있다고 이놈들이 내 예민한 그곳(?)에 덤벼들면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는 때도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화형을 당하거나 가족의 생이별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덮어놓고 나를 반긴다. 상처 입은 적이 없는 자의 순진무구함을 내가 어찌 배신할 수 있겠는가. 손으로 노를 젓듯이 물을 휘저으며 물고기들을 쫓으면 이들은 되레 내 손톱 밑 때라도 한 점 빼 먹으려고 달려드는 식이다.

사시사철 동족만 보고 살던 물고기들이 수륙양용 준 양서류인 인간 동물을 만나니 겁보다는 반가움이 앞서는 게 이해는 된다. 그들에게 내가 보시 할 것이라고는 몸에 있는 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 여기고 내 피난지 배고픈 원주민에게 오늘도 담담히 온 몸을 내맡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수 문인회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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