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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방앗간에는 전문작가 외에 손님들이 그려주고 간 그림들이 여러개 걸려있다. 같은 장소이건만 저마다 느낌에 따라 담아내는 분위기가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이곳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이 공간이 지속되기를 원한다는 것. / 오른쪽 일러스트 ⓒ 윤의진
 봉봉방앗간에는 전문작가 외에 손님들이 그려주고 간 그림들이 여러개 걸려있다. 같은 장소이건만 저마다 느낌에 따라 담아내는 분위기가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이곳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이 공간이 지속되기를 원한다는 것. / 오른쪽 일러스트 ⓒ 윤의진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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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빛이 바랜 벽 모퉁이를 따라 담쟁이가 기세 좋게 2층까지 오르는 중이다. 슬래브로 마감했다가 나중에 얹었을 것이 분명한 2층은 1층과 또 다르게 엉성하다. 심지어 떡하니 눈에 띄게 자리 잡은 에어컨 실외기라니.

신기한 것은 이 작고 낡은 건물 가운데를 가로질러 써넣은 '봉봉방앗간'이라는 고딕체글씨가 모든 부조화를 감싸 정겨운 느낌으로 바꿔낸다는 사실이다. 실내는 어떨까.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았는지 만질만질해진 나무 손잡이를 당기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여는 시간-아침 11시'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강원도 강릉시 명주동 주택가 골목. 주변을 둘러본다. 적당한 규모의 집들이 넓지 않은 마당을 품고 높지 않은 담장을 두르고 있다. 여느 지역 주택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두어블록을 지나 대로로 나가니 딴 세상이다. 얼른 방앗간으로 되짚어 들어온다.

이웃집의 지붕과 나무를 창으로 들여놓은 마음은 ‘세광과의 소통’ 이려니.
 이웃집의 지붕과 나무를 창으로 들여놓은 마음은 ‘세광과의 소통’ 이려니.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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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문이 열려 있다. 소문대로 이곳은 기름을 짜지도 고춧가루를 빻지도, 떡을 찌지도 않는 방앗간이다. 대신 커피와 허브티, 이런저런 음료들을 판다. 주 종목은 커피다. 원산지명으로 분류한 메뉴들이 커다란 칠판에 분필로 쓰여있다.

실내 분위기 역시 원래 있던 그대로, 크게 손대지 않은 모양새다. 얼룩진 벽, 깨지고 갈라진 타일들이 민낯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지저분'하지 않고 빈티지풍으로 꾸민 듯 자연스럽다.

"인테리어를 위해서라기보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살리고 싶어서 쓸고 닦는 수준에서 마무리한 거죠." 김남기 대표의 담백한 설명이다.

세월의 흔적은 아름답다

충분히 지저분하다고 느낄 만한 세월의 흔적들을 설정된 인테리어처럼 기막히게 살려놓은 실내모습.
 충분히 지저분하다고 느낄 만한 세월의 흔적들을 설정된 인테리어처럼 기막히게 살려놓은 실내모습.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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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방앗간이었다. 옛 강릉시청이 있던 구도심에 위치해 성업을 누렸지만, 사양길에 접어들어 문을 닫았다. 2010년, 영화 일을 하던 4명(지금은 이들 중 김남기, 류미선 부부가 운영을 맡고 있다)의 젊은이들이 10여년 동안 방치됐던 이 건물을 매입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화예술을 공유할 공간이 절실했어요. 마침 4명 모두 바리스타 자격을 갖춘 터여서 커피를 매개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죠. 그리고는 장소를 물색하다가 만난 게 지금 이 자리예요. 저희 건물 바로 옆 주택이 강릉 최초 병원이었던 건물이고, 작은공연장 '단'도 만인교회가 있던 자리죠. 명주동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 입니다."

다들 떠나 황량해진 공간을 다시 만들어가는 일은 그렇게 1, 2층 합해 131㎡(40평 남짓) 작은 건물에서 시작됐다. 건물을 매입하고 2011년 12월 문을 열 때까지 1년여 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의 마음과 재능이 모아졌다.

1층에 커피 볶는 로스팅실과 주방, 화장실을 들이고 나니 겨우 작은 탁자 2개 놓을 자리가 나왔다. 계산기를 두드렸다면 2층 전체를 카페 공간으로 꾸며야 마땅했지만, 처음 생각대로 전시와 공연, 영화상영 등을 위한 '호호(好好)갤러리'로 만들었다. 프랑스어로 '좋아좋아'라는 뜻의 봉봉(bonbon)과 같은 의미다. 그리고 이곳은 전문작가들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 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놀이터로 지금껏 활용되고 있다.

봉봉방앗간을 찾는 사람은 강릉시민들만이 아니다. 강릉시 관광안내자료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온라인을 통해 특히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할 강릉명소로 꼽힌다. 김 대표에 따르면 방문객 중 강릉시민과 관광객의 비율은 반반정도라고 한다.

유지비결은 '본분'과 '사람'

봉봉방앗간에서는 커피뽑는 기계가 없다. 모든 커피는 반드시 핸드드립으로 내린다. 더디지만, 커피의 진한 향과 깊은 맛을 살리기 위해서란다.
 봉봉방앗간에서는 커피뽑는 기계가 없다. 모든 커피는 반드시 핸드드립으로 내린다. 더디지만, 커피의 진한 향과 깊은 맛을 살리기 위해서란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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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공간은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안착의 비결을 묻자 김 대표는 "안착은 아니고, 아직 안착하는 중"이라며 "건물이 주는 매력이 전부라면 사진찍고 가면 그뿐이겠죠. 봉봉방앗간의 수익은 커피에서 나오는 것이니 만큼,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다.

공간의 유지를 위해서는 자립적 수익구조를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로스팅을 직접하고, 핸드드립만을 고집하고, 개업한 지 5년이 됐지만, 지금도 커피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란다. 공간의 특이성 때문에 찾았던 사람들이 커피맛 때문에 다시 오고, 커피원두 주문도 많다는 것을 보면 커피의 고장 강릉에서도 밀리지 않는 실력이 분명하다. 또 하나, '사람'이다.

"언제나, 무슨 일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제가 했던 영화일도, 이곳 봉봉도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이죠. 장소성을 갖기 위해서는 예술과 문화가 필요하지만, 그 또한 문화예술인들만의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전 방앗간 시절처럼 동네 분들이 오가다 들르시는 게 참 좋습니다."

기능은 달라졌지만 옛 모습을 유지하고, 방앗간이라는 이름까지 그대로 살린 마음이 어르신들에게 추억을 되살려줬다면, 청년들에게는 창업을 꿈꾸는 곳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오래된 곳들을 유심히 보고, 여기 모여 '우리도 이렇게 해보자'라면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면 참 대견하고 기쁘죠."

글쎄,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들이 늘어간다는 게 정말 반갑기만 한 일일까?

"오래된 건물이 오래도록 사람과 숨 쉬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더 많은 곳들이 활용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또 제가 소상공인으로 살아보니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대로 하면서 서로 도와 함께 살아남아야죠. 다만 한가지, '까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깨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문화놀이터카페 봉봉방앗간의 이전 이름이 '문화방앗간'이다. 공간은 시간을 품고 그렇게 이어지는 중이다.

도화지에 옮긴 '정이 가는 건물들'


기자가 찾아간 7월 26일, 마침 2층 호호갤러리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윤의진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볼수록 정이 가는 건물들!'이라는 주제 아래 펼쳐진 강릉 원도심의 건물들이 따스한 봄날의 느낌으로 말을 걸어왔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그림 속 건물들을 만나기 위해 한여름 뙤약볕 아래 강릉의 원도심을 헤맸다. 찾고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강릉엔 낡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습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커다란 보호수처럼 부드러운 시간의 힘을 담은 건물들이 좋아서 그리게 됐습니다. 그곳의 모습이 바람과 시간의 결을 고요히 담았으면 좋겠다 싶었고, 낡은 집을 보수하고 관리하던 사람의 손때가 이 곳 저 곳에 묻어 아기자기한 흔적이 남은 공간들이 좋아서 그런 건물을 그릴 땐 더 즐거웠습니다. 오래된 골목 사이에 긴 시간 지켜온 세월의 흔적들과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옛날 집의 유니크한 형태들이 저를 자극했고 손이 아픈지도 모르고 무작정 그려온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 시리즈는 현재진행형으로,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blog.naver.com/baug0694)

"직접 발품을 팔아 사진도 찍고 자료를 모으면서 오래된 건물들의 촉감이나 냄새 같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강릉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습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같은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 떠난 누군가를 대신해 공간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지역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을 담아 그려내는 윤 작가 같은 사람들이 있어 강릉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

임당동성당 인근에 있는 다듬공방 건물. 덧댄 재료들에 의지해 긴시간 풍파를 견뎌낸 모습이 대견하다. 큰길가 큰 플라타나스 나무를 떡하니 앞에 두고 이토록 위풍당당할 수 있다니.  / 일러스트 ⓒ 윤의진
 임당동성당 인근에 있는 다듬공방 건물. 덧댄 재료들에 의지해 긴시간 풍파를 견뎌낸 모습이 대견하다. 큰길가 큰 플라타나스 나무를 떡하니 앞에 두고 이토록 위풍당당할 수 있다니. / 일러스트 ⓒ 윤의진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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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자꾸보면 정이 가는 동부철거. / 일러스트 ⓒ 윤의진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자꾸보면 정이 가는 동부철거. / 일러스트 ⓒ 윤의진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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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옥을 식당으로 쓰는 벌집칼국수.  / 일러스트 ⓒ 윤의진
 옛 한옥을 식당으로 쓰는 벌집칼국수. / 일러스트 ⓒ 윤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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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모양이 재미있는 빙그레김밥.  / 일러스트 ⓒ 윤의진
 건물의 모양이 재미있는 빙그레김밥. / 일러스트 ⓒ 윤의진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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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성당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임당동성당(등록문화재 제457호).  / 일러스트 ⓒ 윤의진
 1950년대 성당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임당동성당(등록문화재 제457호). / 일러스트 ⓒ 윤의진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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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봉봉방앗간, #강릉여행, #도시재생,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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