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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하 선생 41주기 기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20대 국회에서 '장준하 선생 등 과거 독재권력하에서 의문사한 이들의 진실을 밝히는 진상규명 특별법'을 16일 발의했습니다.
1975년 8월 22일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의 장례식 모습,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장준하 선생의 막내아들 장호준
 1975년 8월 22일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의 장례식 모습,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장준하 선생의 막내아들 장호준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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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만 2년여 전인 2014년 8월 초의 일이었습니다. 이날 저는 인기 팟캐스트 '이이제이'에 출연합니다. 그리고 약 2시간에 걸쳐 장준하 선생 사인 의혹이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 차원의 재조사는 왜 필요한지 소상하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방송 녹음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습니다. '이이제이'를 진행하는 이동형 작가로부터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혹시 아직도 다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잠시 멈칫했습니다. 해야할 진짜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다음 말은 이랬습니다.

"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구요.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질 때 밝히려 합니다. 지금 밝히면 증거들이 모두 은폐되거나 폐기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향후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가 출범하면 그때 사건을 담당하는 조사관에게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협조하여 반드시 이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방송이 있고 만 2년이 지났습니다. 또 장준하 선생이 '외부 가격에 의한 타살'이라고 법의학 전문가인 서울대 의대 이정빈 박사가 공식 발표한 날로부터 어느덧 만 4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실은 이렇게 묻히고 장준하 선생 41주기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입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41주기를 맞이하는 2016년 8월 17일을 맞이하면서, 유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으로 앉아 있는 현 정국에서, 그리고 1988년 이래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고 있는데 여전히 아무런 변화없이 장준하 선생 41주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사실 사인규명 특별법 제정을 가장 크게 기대한 때는 19대 국회였습니다. 19대 후반기 국회의장이 된 정의화 의원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012년 8월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 외부 가격흔이 확인된 후 당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정의화 전 의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매우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이 신경외과 전문의인 내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타살이라고!"

이 글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정말 이 글을 새누리당 중진 국회의원이 직접 쓴 글인지 처음엔 저 역시도 선뜻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은 이런 세간의 의구심에 대해 다시한번 트위터를 통해 확실히 밝혔습니다.

"돌베개 베고 천릿길 돌아 상해 임시정부 찾았던 일본군 탈출병, 장준하 선생의 주검을 보면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한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국민 한 사람도 억울한 죽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니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재조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사실 저는 이러한 소신으로 정의화 전 의장께서 이후 정치적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특히 19대 국회 후반기 의장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지경에 가능할까" 회의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 전 의장께서는 국회의장으로 당당히 당선이 되었습니다.

더 다행인 점은 정 전 의장께서 국회의장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그 분 소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 40주기 추모제가 있었던 2015년 8월 17일,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당시 국회의장 신분으로 참석한 정의화 의장의 연설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내가 의장으로 있는 동안 장준하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딱 부러지는 연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의화 전 의장님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은 끝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9대 국회 임기를 끝나면서 법안 역시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것이 장준하 선생 추모 41주기를 맞이하는 지금까지도 국가 차원의 재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장준하 타살 의혹 외면 말아야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 경기도 포천 이동면의 운악산 약사봉 전경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 경기도 포천 이동면의 운악산 약사봉 전경
ⓒ 장준하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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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연재하면서 여러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장준하 선생을 가해한 기관을 중정으로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보안사일 가능성에 대해 여러 근거를 제기하자 일어난 반응입니다. 어떤 분은 "정말이냐"며 되묻기도 하고, "이런데 왜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냐"며 분개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반면 "이러한 의혹 공개로 증거자료를 폐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이런 사실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조사관으로서 새로운 확신을 갖고도 지난 4년간 침묵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저 빠른 시간내에 새로운 특별법이 제정되어 이 중대한 의혹에 대해 국가 차원의 재조사가 이뤄지기를 누구보다 학수고대 했습니다. 그리하여 타살 정황이 분명해진 이 사건의 전모가 조속히 규명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만의 기대였고 희망이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41주기 기일을 맞이하는 오늘까지도 국가 차원의 재조사는 난망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년 후인 2018년이 1918년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님의 탄생 100년을 맞이하는 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2년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한 해 앞선 내년 2017년은 또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0년째 됩니다. 그는 바로 '쿠데타 유신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1917년생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준하 선생님이 앞뒤로 탄생 100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년을 맞아 탄신제를 한다며 엄청난 국가 세금을 배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도 속상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광복군으로, 그리고 일생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 장준하 선생은 그 사인조차 밝혀지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데, 반면 민족을 배신하고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가 세금으로 탄신을 기념한다고 난리법석을 떨려 하는 이 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장준하 선생님이 태어난 지 100년을 맞이하기 전에 이것 하나는 종지부를 찍어야 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바로 그 오래된 논란, 사인 규명에 대한 종지부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국민에게 직접 장준하 선생의 사인 규명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더 조사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지적하여 호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이 조사에 필요한 특별법 제정을 국민의 뜻으로 20대 국회가 처리할 수 있도록 한목소리로 외쳐 달라며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사건의 새로운 가설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밝힌 이유입니다. 여전히 남은 이 사건의 의혹,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지 않을까요?

부모 잃은 아픔 박근혜, 장준하 선생 유족에 비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사드 배치 문제로 국민의 비판이 높아지자 뜬금없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게 부모를 잃었다"며 국민에게 감정적인 호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 역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가슴 아팠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가 안쓰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유족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를 떠나 보낸 때는 만 27세였습니다. 하지만 장준하 선생의 막내 아들 장호준 목사가 아버지를 잃은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만 16세 때의 일입니다. 그 어린 고등학생이었던 장호준은 내내 박정희로부터 고통받았던 아버지가 낯선 땅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그 험한 길을 찾아가며 내내 울부짖습니다. 

당시 이러한 장호준 목사와 함께 있었던 이동파출소 이수기 순경은 그 모습을 저에게 전하며 눈물 흘렸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고등학생이 독재자 박정희를 원망하며 절규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제 앞에서 술회했습니다. '가슴 시리도록 아프게 아버지를 잃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통이 이 날 장준하 선생의 막내 아들 장호준 목사만 했을까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장례 후 쫓겨나듯 청와대를 나왔다고 회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비참하게 쫓겨난듯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를 나오는 그날 만 27세의 박근혜 당시 '영애'는 빈손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청와대 집무실 금고에 넣고 쓰다 남겼다는 6억 원이 넘는 정치 자금을 비롯하여 육영재단, 영남대학교, 정수 장학회, 그리고 이후 전두환이 임기중 챙겨 줬다는 성북동 한옥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산과 권력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장준하 선생의 유족은 달랐습니다.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다음날, 시신이 면목동 전셋집으로 옮겨진 후 마련된 빈소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문객에게 접대할 음식조차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이 남긴 재산은 7명의 가족이 사는 비좁은 전셋집 한 칸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문 온 이들은 자기 돈으로 술과 음식을 사와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당장 장준하 선생을 모실 묘 자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런데 다행히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고마운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님이었습니다. 장례 기간 내내 유족을 감시하던 중정이 남긴 '중요상황 보고'에 의하면 김수환 추기경이 부인 김희숙 여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은 장지 결정을 하지 못하여 고민하던 부인 김희숙 여사에게 "파주에 있는 천주교 공원 묘지에 장 선생을 안장하세요. 그 비용은 제가 책임질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비명에 간 그때, 이제 남은 자녀와 함께 지독한 유신 독재 한가운데에 내던져진 그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가는 길에 장례비용조차 걱정해야 했던 장준하 선생은, 그러나 그의 사후 41주기를 맞이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 정의 수준이니 말을 해 무엇 하겠습니까.

더민주 김해영 국회의원, 20대 국회 최초 '장준하 특별법' 발의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을 비롯한 46명의 국회의원이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규명하기 위해 '장준하 사건 등 진실규명과 정의실현을 위한 과거사 청산 특별법'을 발의했다. 김해영 의원과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 고상만 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의원은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의 원인은 많은 의문과 의혹에 쌓여 있고 장 선생님뿐만 아니라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사건이 많이 있다"며 "특별법을 제정해 진실정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 김해영, '장준하 사인규명 특별법' 발의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을 비롯한 46명의 국회의원이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규명하기 위해 '장준하 사건 등 진실규명과 정의실현을 위한 과거사 청산 특별법'을 발의했다. 김해영 의원과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 고상만 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의원은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의 원인은 많은 의문과 의혹에 쌓여 있고 장 선생님뿐만 아니라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사망, 상해, 실종 사건이 많이 있다"며 "특별법을 제정해 진실정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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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41주기 기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20대 국회에서 '장준하 선생 등 과거 독재권력하에서 의문사한 이들의 진실을 밝히는 진상규명 특별법'을 16일 발의했습니다. 이 특별법에는 대표발의해 주신 더불어민주당 부산 연제구 출신의 김해영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모두 46분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고맙고 정의로운 법안 공동 발의에 참여해 주신' 46분의 국회의원 이름을 한 분 한 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라도 이 의원님들에게 제 고마움과 존경심을 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장준하 특별법 공동발의 의원 명단]
<더불어 민주당> 김해영·이용득·기동민·이찬열·권칠승·이철희·최운열·유승희·위성곤·김현미·김병욱·이훈·유은혜·전현희·박용진·박홍근·노웅래·김태년·김경협·백혜련·윤호중·김영춘·강병원·윤후덕·강창일·김철민·황희·이춘석·신창현·임종성·강훈식·신경민·신동근·김정우·안규백 의원, <국민의당> 이동섭·채이배·이용주·유성엽 의원, <정의당> 윤소하·김종대·추혜선·심상정·이정미 의원, <무소속> 윤종오·서영교 의원 (총 46명)

이제 남은 일은 이 법의 통과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이 태어난 100년을 맞이하기 전에 사인을 명백히 밝히려면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습니다. 국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한 이유 역시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은 타살되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반박할 여지없는' 진실입니다. 박정희 권력이 만들어낸 실족 추락사는 2012년 8월 장준하 선생님이 스스로 드러낸 증거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상흔, 이보다 더 분명한 타살 증거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살한 가해자가 누구인지만 밝히면 될 일입니다. 진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 그날, 사고 현장을 무수히 오갔던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요원에 의해 작성되고 보고된, 그래서 지금도 그들의 문서고에 틀림없이 존안되어 있는 문서만 찾으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 문서를 찾으러 갑시다. '대한민국이 거꾸러져도 절대 안된다'며 끝내 문서고 개방을 거부했던 기무사가 있는 한 어렵다는 분도 있습니다. 더 이상의 자료는 없다며 끝끝내 사건 당일 밤 9시 이후 추가보고 문서를 제출하지 않는 국정원의 비협조 때문에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담합니다. 특별법만 제정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다시금 국가 차원의 조사 기구만 출범할 수 있다면 반드시 됩니다. 진실이 걸어서 나와 마침내 정의의 문을 난타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진실은 더디게 오지만 우리는 끝내 승리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41년 전 이미 그때 죽어버린 진실이 다시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을 보십시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정의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자 장준하 선생님이 걸어온 그 길처럼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뚜벅 뚜벅 그 길을 걸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합시다.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겠다며'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반독재 민주화의 길을 걸어간 장준하 선생님처럼 '우리 역시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지 않겠다고'.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 대한민국의 진짜 애국자, 장준하 선생님. 우리 역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죽음, 반드시 밝힐 것입니다. 그날까지 고이 잠드소서.


태그:#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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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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