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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옛 대공분실 부지에 새롭게 만들어질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조감도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옛 대공분실 부지에 새롭게 만들어질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조감도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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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지역가치를 보존한다는 이유로 한옥에 면해있는 건물은 2층으로 짓는 것도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정작 지역에 이바지해야 할 공공건축물은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경복궁 서쪽 지역 일대인 서울 서촌 옥인동에 보안수사대 통합청사를 신축하려는 서울경찰청의 계획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앞서 지난 5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는 경복궁 서측 옥인동 45-21번지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별관 부지를 도시계획시설 공공청사로 지정하는 안건이 통과됐으며, 이달 중 종로구청의 건축허가만을 남겨 두고 있다. 건축계획안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보안수사대 통합청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등 7개 주민단체는 경복궁 서측 주민단체 연합(아래 주민단체연합)을 결성하고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신설반대 운동에 돌입했다.

과거 폭압정치 대명사 대공분실

보안경찰의 역사는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 치안국 사찰과에서 시작됐다. 이후 사찰과는 1950년 정보수사과로, 1953년 특수정보과로 확대 운용된다. 1960년 4.19 혁명 후 특수정보과의 임무는 대공 분야 등으로 다소 축소되고, 명칭도 정보과로 바뀐다.

5.16 쿠데타 이후부터 유신 때까지 정보과라는 명칭은 유지되지만, 1963년 '기타 반국가적 범죄의 수사 및 지도에 대한 사항'이 임무로 부여됐다.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5공화국은 보안 경찰의 부서와 임무를 대폭 확대했다.

군사정권 당시 대공분실로 불리던 보안경찰은 고 박종철씨 고문 치사 사건, 고 김근태  통합민주당 의원 고문 사건 등 불법 체포와 감금, 고문 등 반인권적인 수사를 자행해 폭압정치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난 2012년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전국 25곳에 보안분실을 따로 두고 있다. 서울 시내에는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홍제동 보안분실을, 서울경찰청 산하 4개 보안수사대가 옥인동, 장안동, 신정동, 대신동에 각각 보안분실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옥인동 45-21번지에 4개 보안수사대가 모두 입주할 수 있는 통합청사 신축을 추진 중이다. 당초 서울경찰청은 보안수사대 통합청사를 지상 5층으로 계획했지만, 다섯 차례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거치면서 높이가 4층으로 낮아졌고 4층 연면적도 좁아지는 등 계획이 축소됐다.


보안수사대 청사 신축, 서촌 지역가치 보존 목표 훼손 지적

이들 주민단체들은 보안수사대 청사 신설계획이 역사문화공간을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경복궁서측(서촌)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이 지향하고자 하는 정책목표와 크게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시는 서촌의 옛 정취와 분위기를 살리고 지역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서촌 지구단위계획안을 수정·가결한 바 있다. 급속한 상업화가 진행되어 주민들의 정주환경 저해, 주요 경관자원 훼손,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 등으로 인한 원주민 이탈) 등 여러 부작용을 앓고 있는 북촌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됐다.

서촌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에 따르면 한옥보전구역 중 한옥은 1~2층까지 지을 수 있다. 한옥이 아닌 경우 한옥과 접하면 2층 이하, 한옥과 접하지 않으면 3~4층까지 건축이 가능하다.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 통합청사가 들어설 예정인 옥인동 45-21 번지. 테니스장 뒤편 흰색 건물이 현재 옥인동 보안수사대.
▲ 옥인동 보안수사대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 통합청사가 들어설 예정인 옥인동 45-21 번지. 테니스장 뒤편 흰색 건물이 현재 옥인동 보안수사대.
ⓒ 서촌 주민단체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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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주민단체연합 회원들이 종로구 옥인동 보안수사대 앞에서 통합청사 신축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신축반대 서촌 주민단체연합 회원들이 종로구 옥인동 보안수사대 앞에서 통합청사 신축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서촌 주민단체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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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단체연합은 보안수사대 통합청사가 들어설 옥인동 45-21번지는 한옥보존구역에 접해 있어, 민간의 경우는 2층 이하로만 신축하도록 엄격하게 규제받고 있지만, 공공건축물은 이런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공공건축물이라고 해도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4층 규모의 보안수사대 청사가 들어선다면 서촌 지역가치 보존이라는 서울시의 정책목표는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민단체연합에서 활동하는 장민수씨는 "지역 안에 공존하고 있는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맞춰서 공공의 목적을 달성해야하는데, 이런 부분은 도외시하고 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짓고 싶은 대로 지어놓고 딱 문을 걸어 잠그고는, '이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주민들은 알 것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주민 의사 수렴 과정도 졸속적... 주민설명회 계획도 없어"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신축 결정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6월 30일 종로구 건축과 관계자와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단 한 차례의 주민간담회를 열었지만, 다분히 요식행위였다는 것이 주민단체연합의 주장이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주민단체연합 강인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관계자도 이 시설이 혐오시설이 아니라면서 주민들에게 이 부분을 충분히 설득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주민설명회 계획은 없다고 했다. 신축 건물은 보안 때문에 나무를 높게 심어 외부 시선으로부터 차폐하고 이격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설명하더라. 경찰 처지에서는 보안이 중요하니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물이라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일정 부분은 공원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앞뒤 맞지 않는 이 얘기를 주민 처지에서는 과연 어느 정도나 신뢰하고 찬성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주민단체연합은 지역과 괴리된 보안수사대 청사 대신 서촌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초적 기반시설이 마련되길 희망하고 있다.

"서촌 마을공동체 미래와 관련된 공간이 되어야"

2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어린이 놀이터가 단 한 곳 밖에 없고, 주민 커뮤니티 시설이나 휴식 공간 등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보안시설이 들어서는 데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측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에 의해 재산권 행사마저 제한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규제를 감내하고 있는 주민들의 처지를 감안한다면, 서촌에 들어설 공공건물도 주민들의 생활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의견이다.

비단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신축 문제뿐만 최근 서촌 지역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필운대로 지하주차장 건설, 체부동 성결교회 매입, 백운동천 복원계획 등 최근 서울시와 종로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서측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이 추구하려는 정책 목표와 얼마나 부합되는지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민단체연합 장민수씨는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주차난을 해결한다고 (사직공원 인근에서 청운·효자동 자치센터 인근까지 이어지는) 필운대로 지하를 파고 대형지하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역사문화공간을 보존한다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겠다는 거다. 하지만 당장 이곳에 주차장이 부족하다고 큰 일이 나지 않는다. 서촌 주민들은 불편해도 이곳 나름대로의 룰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딱지도 끊고, 먼 곳에 차를 세우기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을 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된 공간을 더 심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단체연합은 옥인동 보안수사대 통합청사 신축반대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웃에는 사람이 살아야 합니다", "아이가 살고 있어요, 양보해 주세요"를 구호로 내걸었다.


태그:#서촌, #보안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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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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