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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국민일보> 1면.  죽음을 앞둔 국내 첫 트랜스젠더 김유복씨의 삶이 곧 성소수자 전체의 삶인 것처럼 묘사했다.
 지난 10일 <국민일보> 1면. 죽음을 앞둔 국내 첫 트랜스젠더 김유복씨의 삶이 곧 성소수자 전체의 삶인 것처럼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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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국민일보>가 성소수자 혐오성 기사를 게재했다. 이번에는 다른 곳도 아니고 1면이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이걸 하루 전에 SNS로 공개했다. <국민일보>의 1면에는 "동성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집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이 큼지막하게 제목으로 걸렸다.

인터뷰 내용을 배치했다곤 하지만, 사실상 이건 <국민일보>가 성소수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너희들이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너희들은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질 것이라고. 이 정도면 그냥 저주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한 성소수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국민일보> 이야기를 꺼내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괜찮냐는 나의 질문에, 이제는 이것보다 더 한 것도 너무 많이 봐서 담담할 지경이라고 답했다.

사실 우리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혐오를 겪은 탓에 상처에 취약해진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면 어떨까 두려웠다. 또 이제 막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한 사람들, 가령 아직 혐오에 맞설 자원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이 사태를 보면 어쩌나 염려가 되었다. 이것은 그저 기우가 아니다. 친구는 작년에 한 성소수자 지인을 잃었다. '자살'이라고는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다른 사회에서 살았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우리는 성소수자의 삶이 <국민일보>가 말하는 것 같지 않음을, 그 말은 틀렸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어쩌면 <국민일보>가 말한 것과 다른 성소수자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도 결코 혼자가 되지 않고, 비참하지 않은 삶. 나는 친구에게 그의 삶을 글로 옮겨도 좋겠냐고 질문했고, 그는 흔쾌히 내 요청에 응했다.

고립된 성소수자의 고된 삶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갑작스레 깨닫게 된 상황,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은폐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 그리고 비밀스런 짝사랑의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내해야 했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갑작스레 깨닫게 된 상황,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은폐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 그리고 비밀스런 짝사랑의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내해야 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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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동성애자, 나와 동년배인 그는 지방의 도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인터넷 문화가 막 형성되던 때이고 성소수자의 존재가 지금보다 더 비가시화된 시기, 그는 스스로 성소수자임에도 그 정체성이 매우 낯설었다고 한다. 그는 14살 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참으로 뜬금없었다고 한다. 같은 동아리의 한 친구가 자신에게 갑작스레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는 그때,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정말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단짝이었던 남자아이에게 느꼈던 묘한 감정, TV에서 잘생긴 남자 연예인을 보았을 때 느껴지던 두근거림. 이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를 찾자 그는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사실 나도야'라고.

정말 예상치 못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고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는 내내, 그가 알고 지낸 성소수자라고는 그 친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에겐 이제 막 깨달은 자신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했지만,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학교 운동장 구석에 그 친구와 앉아 남자들 이야기를 할 때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부정'의 방식으로 처음 경험했다. 그에게도 낯선 자신의 정체성은 당연히 공동체에도 낯선 것이었다. 낯선 것은 이질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곧 손쉽게 폭력과 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을 의미했다. 게다가 친구들은 어디서 알았는지, 그에게 '너 계집애처럼 구는 거 보니 더러운 호모가 아니냐'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아팠고, 그다음에는 두려웠고, 그다음에는 안도했다고 한다. '아니냐'고 묻는 걸 보면, 어쨌든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확실했으니까.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갑작스레 깨닫게 된 상황,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은폐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 그리고 비밀스러운 짝사랑의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내해야 했다. 그 시절, 그는 자신의 팔에 스스로 상처를 냈다고 한다. 왜 그랬냐는 나의 질문에,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덜 아팠다고 답했다. 책 <트라우마>에서 주디스 허먼은 이야기한다.

"자해는 마음이 진정되고 안도감이 느껴질 때까지 계속된다. 신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을 대치한다. 때로는 그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만나고 일어난 변화

유년시절 친구에게 성소수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은 살던 곳을 떠나고,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 운동 동아리에 가입했다.

처음 동아리방을 갔을 때, 무지개 깃발과 성소수자 권리를 외치는 팸플렛이 벽에 붙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선배에게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선배는 다른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받아온 것이라고 답했다. 비슷한 지역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성소수자들이, 그것도 모임까지 만들고 있었다니 그는 굉장히 놀라고 기뻤다고 했다. 그 날 친구는 두근거리는 가슴에 한잠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아직 동성애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성소수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을 뒤지며 그 동아리들이 하는 일들을 살펴보았고, 그러다 성소수자를 위한 단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차마 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성소수자들을 위한 축제도 1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마주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 살고, 그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고 했다. 단체의 사무실이 있는 지하철을 지나칠 때면, 괜스레 안도감과 친밀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용기가 되었을까. 군대를 가기 전 그는 중대한 선택을 한다. 우선 친구는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거의 사색이 되어 횡설수설을 하는 그에게 친구는 웃으며 '그래, 남자 친구는 언제 소개해줄 거니'라고 답했다고 한다(물론 그 당시 친구에게 애인은 없었기 때문에, 감동의 순간은 매우 싸해졌다고 했다).

학교 성소수자 모임에도 가입했다. 그 무리에서 자신의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고 했다. '뭐야 너도?'라고 말하며 친구는 뭉클함을 느꼈다고 했다.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항상 함께 있었다.

우리는 당신이 비참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인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성소수자들의 문화행사인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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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친구는 공동체의 품 안으로 들어섰다. 전역 이후 친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관련된 단체에도 가입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그런데도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는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같은 믿음을 공유한 사람들을 만났다. 고민을 나누고 연대하고 서로를 보살폈다.

물론 상황이 항상 좋게만 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는 퀴어문화축제에서 혐오세력을 직접 마주하기도 했고, 지인을 잃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올란도 총격 사건이 터졌을 때,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게 피폐해졌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그래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어떤 의미에서 성소수자는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질 수도 있다. 이는 정확히 이런 말을 내뱉는 <국민일보>와 같은 곳이 만들어 내는 결과다. 혐오는 사람을 위축시키고, 그 사람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발생시킨다.

이런 말들이 돌아다니는 사회에서 누구도 성소수자로서 일상을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지나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돋듯, 이러한 혐오를 넘어서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아니 그런 사람은 이미 많다. 내 친구가 그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이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일보>의 보도는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미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은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성소수자 행사의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고, 이제 사람들은 성소수자와 이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굳이 단체를 경유하지 않고서도, 성소수자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에게도 낯선 사람들, 혐오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 스스로 상처를 내며 그 고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국민일보>의 기사를 보고 또 다시 상처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결코 혼자 늙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절대 비참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태그:#성소수자, #혐오,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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