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산에서 내려다 본 거대도시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거대도시 서울.
ⓒ 구창웅

관련사진보기


한빈(寒貧)한 자의 간난신고(艱難辛苦)였다고 말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 남쪽 지방에서 태어난 보잘것없는 사내가 서울에서 보낸 18년의 시간을.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세간의 풍문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산업화와 현대화의 급격한 진행 속에서 이 풍문은 무슨 '진리'처럼 작동했다.

중고교 시절을 보내며 학업 혹은, 예술적인 부문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은 앞을 다퉈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고, 이른바 '글로벌 기업'으로 불리는 회사의 본사는 90% 이상이 서울에 위치해 있으며, '입신출세'의 지름길이라 불리는 고위직 공무원 선발시험에서 합격한 이들 역시 예외 없이 서울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래서다. 서울은 좁디좁은 공간에서 밤낮없이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히는 초고밀도 인구밀집 지역이 됐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원로작가 이호철은 이미 반세기 전인 1966년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썼다.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오늘 서울은 어떠한가.

아등바등 견뎌낸 '서울 살이 18년'

1990년대 말. 기자 역시 학업을 마치고 밥벌이를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탔다. "간다 울지 마라/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라며 김지하가 시를 읊조린 절대가난의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서울 살이 18년'은 숨 가쁘고 힘들었다.

겨울이면 시시때때로 보일러 배관이 얼어붙는 옥탑방과 하루 종일 햇살 한줌 들지 않는 5~6평 반지하방을 전전했고, 종일 직장에서 시달린 몸에 소주 한잔 들어부은 날이면 서울 외곽 주거지행 택시비로 2~3만원을 써야 했다.

강남과 여의도에 들어찬 고층빌딩이 야기한 열섬현상의 여름은 팔열지옥처럼 뜨거웠고, 난방비를 아껴야 하는 겨울은 거대한 공룡조차 얼어 죽게 만든 구석기시대 빙하기처럼 추웠다.

서울은 희망을 가지고 올라온 많은 사람들을 지치고 힘겹게 한다.
 서울은 희망을 가지고 올라온 많은 사람들을 지치고 힘겹게 한다.
ⓒ 구창웅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그런 고통과 서러움은 몇몇 사람의 것만이 아니었다. '부자 아버지'와 '로또 복권 당첨의 행운'을 가지지 못한 지방 출신의 서울 거주 노동자라면 누구나 크게 다를 바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시간을 서울에서 살았다. 아니, 살았다기보다는 '견뎠다'.

서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벗어난 게 지난해 초가을이다. 지척에 푸른 동해의 파도가 출렁이는 포항으로 이주하며 삶이 쾌적해졌다. 월세는 절반으로 떨어졌음에도 생활공간은 두 배로 넓어졌고, 출근 시간은 버스로 10분이면 족했다.

서울 외곽 일산이나 분당에서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듯 1시간 혹은, 1시간 30분의 출퇴근길을 병든 닭처럼 졸며 오가는 이전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유사한 메뉴임에도 점심식사 비용이 3분의 2로 줄었고, 난마(亂麻)처럼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도 서울에선 맛볼 수 없었던 행복감을 안겨줬다.

'서울 탈출'에는 괴로움도...

물론, '서울 탈출'이 즐거움만을 준 것은 아니다. 예술적 갈증을 해소해주던 해외 유명 공연단의 발레와 오페라 관람이 힘들어졌고, 세칭 '예술영화'를 개봉하는 극장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서울에서 멀어짐으로써 한국의 중심에서도 멀어졌다'는 상실감 역시 가끔은 찾아온다.

경북 포항의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
 경북 포항의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
ⓒ 경북매일 이용선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다. 서울이 독점하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할을 각각의 지방으로 이전함으로써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이루려는 노력은 이미 몇 십년 전부터 진행 중이다. 

'차별이 사라진 서울과 지방'이란 대명제가 현실화된다면 '서울의 떠난 자의 즐거움'은 보다 커질 것이다. 기자는 그런 날을 기다린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래세대가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은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에도 조성돼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서울, #지방, #포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