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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여진씨의 어머니 정아무개씨가 양궁선수 기보배씨를 상대로 개식용과 관련해서 SNS에 올린 비난 글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개식용에 반대하지만, 정씨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보호 활동가로서, 저는 이번 논란이 우리 활동가들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제점이라 함은, 활동가들이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고 운동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실수를 말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런 문제점에서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번 논란을 통해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돌아보는 것이 운동의 발전을 위해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저 자신부터 반성하며, 그동안 동물보호 운동을 하면서 제가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을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 기자 말

배우 최여진씨의 어머니 정아무개씨가 양궁 국가대표인 기보배 선수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SNS에 원색적인 비난글을 올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배우 최여진씨의 어머니 정아무개씨가 양궁 국가대표인 기보배 선수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SNS에 원색적인 비난글을 올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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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 활동을 왜 하는가? 고통받는 동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동물도 '생명'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동물'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운동을 하곤 한다.

현대의 동물학대는 대부분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동물을 미워하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학대가 전체 동물학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동물학대는 '비뚤어진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산업'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 TV 방송을 통해 논란이 된 '강아지 공장'과 같은 반려동물 번식산업, 그리고 육류산업·모피산업·동물원·동물쇼 산업·동물실험산업 등이 동물학대의 온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동물학대를 줄이기 위해, 우리 활동가들은 대중에게 동물을 학대하는 산업의 실상을 알릴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그런 산업에 대한 수요를 줄여나가는 한편, 인도적인 산업을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대중을 설득하고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동물보호 운동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고, 모피와 가죽 제품을 사용하고, 동물쇼를 관람하며 즐거워했던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에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동물의 고통에 분노하고, 슬퍼하며, 때로는 인간사회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사회 심리학자이자 동물보호 활동가인 멜라니 조이 박사는 <동물을 위한 전략적 행동(Strategic Action for Animals)>이라는 책에서 이런 감정은 본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런 감정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 경우 운동에 독이 되며, 활동가들을 다른 사람에 대한 '가해자'로 변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개를 먹는 사람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행위는 상대방을 설득하기는커녕 등을 돌리게 만드는 행위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당신 스스로 그 변화가 되라"

북극곰은 북극에 사는 동물이다. 덥고 습한 한국의 여름은 북극곰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될 수 없다. 작년 여름,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가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동물원법의 통과를 요청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북극곰에게 한국의 여름은 너무 더워요!" 북극곰은 북극에 사는 동물이다. 덥고 습한 한국의 여름은 북극곰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될 수 없다. 작년 여름,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가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동물원법의 통과를 요청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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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에서 정아무개씨는 기보배 선수라는 특정 인물과 개식용 문제를 결부했다. 생각해보자.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번 논란은 대중의 관심을 개식용 산업이 야기하는 '동물학대'가 아닌 기보배 선수에 대한 '비난'에 주목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정아무개씨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특정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개식용 반대는 대중을 설득하지 못한다. 또한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운동을 퇴보시킨다. 최악의 경우, 사람들에게 개식용 반대 운동 자체에 대한 반감을 안겨줄 수 있다.

비폭력 운동을 이끌었던 마하트마 간디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당신 스스로 그 변화가 되라"고 했다. 동물에 대한 학대에 반대한다면서 특정인을 언어로 공격하는 것은 모순이다. 보신탕으로 희생되는 개들이 줄어들기를 원한다면, 개를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자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설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편 멜라니 조이 박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좌절하고, 화내고, 우울하고, 기진맥진하고, 박탈감에 빠진 모습만을 대중에게 보여준다면, 과연 누가 동물보호 운동에 동참하고 싶어 하겠냐"고.

여느 사회 변혁 운동과 마찬가지로 동물보호운동은 현세대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동물보호 활동가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동물보호 운동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후세대로 확산시키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속 가능한' 운동을 해야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우리 운동으로 견인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의식할 필요가 있다. 대중을 동물보호 운동에 동참시키려면 우리는 그들에게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동물보호 운동이 '멋진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면, 최소한 잘못된 편견은 안겨주지 말아야 한다. 욕설을 남발하는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만약 활동가들이 그런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전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인간 혐오자'라는 편견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셈이다.

이런 편견이 굳어지면, 대중은 더 이상 우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운동이든지 활동가를 가장하고 내부에 침투하여 운동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퍼뜨리는 세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말아야 한다.

개를 먹는 것이 '창피'한가?

농장동물의 복지를 요청하는 동물보호 단체의 캠페인
▲ A4 용지보다도 작은, 암탉이 '평생' 살아가는 공간 농장동물의 복지를 요청하는 동물보호 단체의 캠페인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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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먹는 행동을 가리켜 "창피하다"고, "미개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라면 당신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겠는가? 개를 먹는 우리나라를 '야만국'이라고 주장한 브리지트 바르도의 경솔한 발언은 한국 개식용 반대 운동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발언은 대중으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인 '동물학대'를 보지 못하게 했고, 개식용 논쟁은 지금까지도 문화 상대주의와 사대주의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민족감정에 불을 지른 그녀의 발언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면서 얼마나 많은 조롱과 야유를 자아내고 있는지 기억하자.

채식하는 사람 중에도 육식하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기에 반성한다. 이들의 태도 역시 채식주의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는데 한몫했을 거라고 본다. 상대방을 야만인으로 매도하는 것은 본인의 얄팍한 우월감은 충족시켜 주겠지만, 정작 우리가 설득해야 할 대중은 그런 우리에게 반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가장 큰 손해는 동물들이 보는 셈이다.

덧붙여,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남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멜라니 조이 박사에 따르면, 그 이유는 동물보호 운동이 여타 운동과는 다른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착취와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은 그러한 폭력의 희생자인 당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져 왔다.

가령, 흑인 차별 반대운동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은 흑인들이고, 페미니즘 운동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다. 희생자는 본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감정적으로 성토할 권리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대중은 별문제 없이 받아들인다.

반면, '동물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은 희생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운동이다. 동물은 '목소리 없는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동물보호운동의 주체는 동물이 아닌 인간이며,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폭력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아니다. 따라서 "개를 먹지 말자"는 활동가들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나를 먹지 말아주세요"라는 절절한 호소가 아닌 "먹지 마!"라는 훈계로 비치기 쉽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동물보호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대중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을 '적'이 아닌 운동의 '협력자'로 견인해야 한다. 본인은 개를 먹지 않지만 개식용 반대 캠페인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왜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들은 어쩌면 극단적인 개고기 반대에 질려버린 게 아닐까?

이 기사의 목적은 최여진씨의 어머니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에 대한 그분의 헌신을 생각했을 때 이번 논란은 내게도 너무나 속상한 일이며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편 이번 논란에 대한 언론 인터뷰에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변한 기보배 선수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 응답할 수 있었을까? 기보배 선수가 올림픽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조세형 시민기자는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의 활동가입니다.



태그:#개식용 논란, #동물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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