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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어떻게 지냈어요?"
"말도 마세요. 더워 때문에 잠 한 숨도 못 잤어요."

요즘 출근하면 제일 먼저 나누는 인사말이다. 연일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로 전국이 찜통더위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간 전기요금이 걱정돼 몇 년간 단 한 번도 켜지 않은 에어컨을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켰다.

열대야를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찾아본 모든 방법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어떤 때는 일찍 저녁을 먹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형마트를 찾아가 폐장할 때까지 있곤 했다. 물건 하나 사지 않고 점원 눈치를 보며 윈도우 쇼핑만 하는 것도 할 짓이 못됐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물건을 굳이 살 수도 없는 일.

그나마 속 편한 방법의 하나는 돗자리 하나 챙겨 자동차로 집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바닷가 백사장은 아직 식지 않은 지열과 염분으로 몸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모기와의 사투까지. 

특히 열대야는 다음 날 직장생활까지 이어져 일의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금요일(7월 29일) 아침.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출근하는 선생님마다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수업 시작 전, 책상 위에 엎드려 잠시나마 눈을 붙이는 선생님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무더위에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교무실 문을 활짝 열며 최 선생이 먼저 출근한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최 선생의 표정이 너무 활기가 넘쳐 여타 선생님과 사뭇 달라 보였다. 순간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최 선생,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잠을 잘 잤거든요."
"이 열대야에 잠을…?"
"네. 열대야를 극복하는 저만의 비결(祕訣)이 있거든요."

비결(祕訣)이라는 말에 옆에 있던 동료 교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최 선생의 자리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비결이 무엇인지 다그치듯 물었다. 갑작스러운 동료 교사들의 반응에 최 선생은 약간 당혹스러워했다.

최 선생이 말하는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장소'였다. 최 선생은 퇴근하자마자 저녁을 먹고난 뒤, 가족들과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대관령(용평)으로 간다고 했다. 대관령은 해발 700m에 있어 밤엔 춥기까지 하다며 반드시 긴 옷을 챙겨갈 것을 주문했다.

저녁 6시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 저녁 6시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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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지역에 오래 살았지만, 여름에 무더위를 피하고자 그곳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나로서는 최 선생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최 선생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콘서트가 열려 무더위를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면서 적극 추천했다. 무엇보다 최 선생은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끼리 못 나눈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많이 나눴다면서 좋아했다.

출발할 때 강릉의 온도가 33.3도 였는데 용평의 온도는 26도를 가리키고 있다.
▲ 6시 30분 용평의 온도는 26도 출발할 때 강릉의 온도가 33.3도 였는데 용평의 온도는 26도를 가리키고 있다.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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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저녁, 연일 되는 무더위(33.3℃)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난 뒤, 가족들과 함께 여름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약 25분 걸려 그곳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사람이 피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 온도계는... 26℃(오후 6시 기준)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 8시에 콘서트가 예정돼 있어서 일까? 오후 6시가 지나자,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듯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많던 빈 의자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공연장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채워졌다.
▲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공연장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채워졌다.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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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공연장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채워졌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곳 날씨는 그다지 덥지 않았다. 잠깐의 리허설이 끝난 뒤, 마침내 주최 측이 초대한 가수(거미)가 무대 위에 오르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공연 내내 자리도 뜨지 않고 귀에 익은 가수의 노래를 연신 따라 부르며 리듬에 맞춰 춤추는 관람객들
▲ 초대가수와 하나되어 공연 내내 자리도 뜨지 않고 귀에 익은 가수의 노래를 연신 따라 부르며 리듬에 맞춰 춤추는 관람객들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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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내내 사람들은 자리도 뜨지 않고 귀에 익은 가수의 노래를 연신 따라 부르며 리듬에 맞춰 춤추기도 했다.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열기였다. 사람들은 마치 이 열대야를 즐기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가자, 사람들은 초대 가수의 앵콜송을 열창하면서 못내 아쉬워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일부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사람의 표정이 너무 밝아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 이 좋은 곳을 지척에 두고도 단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공연이 시작된 오후 8시 용평 온도는 섭씨 22도를 가리키고 있다.
▲ 오후 8시 용평 온도 공연이 시작된 오후 8시 용평 온도는 섭씨 22도를 가리키고 있다.
ⓒ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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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흰색의 설원으로 덮인 용평의 겨울 모습만 내 머릿속에 있었는데, 오늘 하얀 속살을 드러낸 여름의 용평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푸름과 낭만을 머금고 있었다. 이제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이곳을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했는지를 새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겨울에만 찾곤 했던 이곳 용평이 여름철 무더위와 열대야를 피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라는 사실을 지금에야 알게 되어 기쁘기만 했다.


태그:#열대야, #콘서트, #대관령(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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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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