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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종종 초청해 음씩 솜씨를 자랑하는 나와 동갑내기 주인장 내외
 이웃을 종종 초청해 음씩 솜씨를 자랑하는 나와 동갑내기 주인장 내외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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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시절, 1980년도 중반에 호주로 이민을 왔다. 독재 국가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던 시절이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호주로 이민을 간다고 하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기도 했던 시절이다. 호주에 도착해 정부에서 제공하는 영어 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시험지 문제와 씨름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주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큰 굴곡 없이 호주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러나 호주 생활의 불만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없다는 것이다. 이민 왔을 당시에는 야구는 물론 축구 게임도 텔레비전에서 볼 수가 없었다. 호주 사람이 열광하는 럭비와 크리켓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축구 인구가 늘어나고 축구 중계도 하지만 아직도 럭비나 크리켓 같은 운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호주 사람이 좋아하는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야구를 좋아했기에 야구와 조금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크리켓에 흥미를 붙여 보려고 한 적이 있다. 야구 방망이와 달리 넓적한 방망이로 공을 치는 게임이다. 치기에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60도 아무 곳으로 공을 쳐도 되기에 야구보다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호주 친구는 야구와 달리 땅을 맞고 튀어 오르는 공을 쳐야 하기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항변한다. 

크리켓 경기를 보았다. 계속 보고 있자니 조금 흥미가 생기기도 한다. 던지는 사람과 치는 사람의 신경전은 야구를 볼 때처럼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 시간이 너무 길다. 보통 며칠씩 경기를 한다. 야구와 달리 특별한 작전도 없는 것 같다. 요즘은 하루에 끝내는 경기를 할 때도 있지만 나를 매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호주 텔레비전에서 많이 중계하는 럭비는 가끔 본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럭비는 많이 중계하지 않는다. 공중파에서는 주로 호주에서 만든 규칙을 가지고 진행하는 럭비를 중계한다. 호주 럭비는 두 가지가 있다. 서부에서 즐기는 럭비(AFL)와 동부에서 주로 경기하는(NRL)럭비다. 호주 서부(Western Australia)에서 원주민과 지낼 때에는 AFL만 보았다. 그러나 동부에 위치한 시드니에서는 NRL을 주로 보게 된다.

럭비는 크리켓보다 재미있다, 불만은 너무 거칠다는 것

럭비는 크리켓보다 재미있다. 절묘한 패스와 나름대로 작전도 많은 모양이다. 미련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덩치 큰 선수가 박력 있게 뛰면서도 재치 있게 수비를 따돌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게임이 너무 거칠다는 것이다. 게임을 볼 때마다 다치는 선수가 나온다. 따라서 럭비도 나에게 매력적인 운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럭비 결승전이 있는 날은 도시가 한가할 정도로 호주 사람들은 럭비에 열광한다.

호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모으는 럭비 경기는 1980년에 시작된 퀸즐랜드(QLD)와 뉴사우스 웰즈(NSW)의 대항전일 것이다. 이 경기가 열릴 때에는 우리 시골 동네도 떠들썩하다. 따라서 각자 집에서 보기 보다는 가까운 사람끼리 모여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수요일에 떠들썩한 럭비 경기가 열렸다.

우리 동네에서 요리 잘하기로 유명한 베리(Barry)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집에 우리까지 20여 명을 초대했으니 오라고 한다. 음식 한 접시 준비하고 마실 술은 가지고 오란다. 럭비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중요한 시합은 꼭 봐야 한다. 며칠 동안 화제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럭비 시합하는 날이다. 아내는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든 빈대떡을 접시에 담고 나는 와인 두 병 들고 집을 떠난다. 일찍 도착했다. 일찌감치 와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이웃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부엌에서 요리하던 주인집 내외와도 볼에 가볍게 키스하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서양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같은 동네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스스럼없이 분위기를 즐긴다
 같은 동네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스스럼없이 분위기를 즐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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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만든 음식과 술을 들고 모였다

음식과 각자 좋아하는 술을 들고 동네 사람이 모여든다. 낯선 사람도 보인다. 큰 탁자에 펼쳐진 가지고 온 음식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조금씩 주위가 시끄러워진다. 치과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독일에서 온 이웃과 인사를 나눈다. 처음 보는 이웃이라 생각하고 말을 걸었는데 뜻밖에도 예전에 파티에서 같이 춤을 추지 않았느냐며 나를 기억하는 여자와 떠들기도 한다. 사람을 가끔 혼동하기도 하고 호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다시 한 번 질책한다.    

저녁이 준비됐다는 주인장의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타이 카레를 비롯해서 적당하게 오븐에 구운 쇠고기 등 고급 식당에서 맛 볼 수 있는 음식이 즐비하다. 매운 것부터 달콤한 것까지 소스 종류도 다양하다. 주인 내외가 만든 음식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회도 있다. 초고추장과 와사비는 없지만 싱싱한 연어 회가 나름대로 만들어 뿌린 양념과 어울려 맛을 돋운다.

럭비 경기가 시작되었다. 조금은 취한 모습으로 경기에 몰두한다. 우리 편에 파울을 선언하는 심판을 비판하기도 하고 선수들의 경기에 한마디씩 거들기도 한다. 우리 동네에 살지만 퀸즐랜드 주에서 오래 살았던 이웃은 퀸즐랜드 팀의 유니폼까지 입고 상대편을 응원한다. 모두 럭비 해설가가 되어 경기에 빠져든다.

경기가 끝났다. 우리 팀이 졌다. 상대편 유니폼을 입고 열성적으로 응원하던 부부는 기분 좋은 내색을 숨기지 않는다. 대다수 사람은 아쉬워하는 모습으로 남은 음식과 술을 즐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음악을 다시 크게 틀어놓고 떠들썩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이웃사촌이라 그런지 모두가 가깝게 느껴진다. 

산다는 것이 별건가, 오늘 하루 즐겁게 지냈다.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삶을 이루어 나간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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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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