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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1993년 9월 11일(날짜를 잘 기억 못하는 나에게 9.11테러가 선명하게 기억나게 해줬다)에 결혼했다. 결혼하고 보니, 아내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인생을 졸업하셨고, 나는 20대 초반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런 불균형(?)도 2005년 8월에 깨졌다. 나의 아버지도 인생을 졸업하셨다. 나와 아내에겐 이제 위로는 아무도 안 계신다. 우리 아래로만 있다.

이렇게 우리 집 거실에 나란히 양가부모님 사진이 걸리기 까지 걸린 시간은 12년이다. 이제라도 이렇게 되어 다행이다.
▲ 양가부모님 사진 이렇게 우리 집 거실에 나란히 양가부모님 사진이 걸리기 까지 걸린 시간은 12년이다. 이제라도 이렇게 되어 다행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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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편인데도, 나는 십 년 넘게 당연한 줄 알고, 해오던 짓(?)이 있었다. 내 부모 기일이 모두 8월이다. 8월이면, 어김없이 나의 형제들과 아내들과 조카들이 모여, 추도식을 지냈다. 하다못해 추석 명절과 설 명절에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냐고. 평범한 한국 정서에서 무엇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 맘이 문제였다. 뭔가 미안한 맘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누구에게? 바로 아내에게. 뭐냐고. 바로 내 부모 사진만 보고 있는 거였다.

사실 내 부모 기일을 더 잘 챙기는 건 나보다 아내다. 나는 원래부터 날짜 챙기는 데는 젬병이고, 하다못해 내 생일도 무관심한 편이다. 하지만, 아내는 새해 달력이면 꼭 모든 식구, 친척 등의 생일과 기일을 기록한다.

자연스레(?) 내 부모 기일을 챙기는 것도 아내가 담당했다. 동생들과 조카들에게도 연락하자고 챙기는 것도 아내다. 기일 당일에도 막걸리에 사과 한쪽이라도 두고 인사라도 하자는 건 아내다. 내가 개신교 목사라서 그런 것에 무딘 게 아니라, 워낙에 내가 그런 형식들을 잘 하지 않는다는 걸 아내도 잘 알기는 하지만, 매번 아내에게 고맙다.

그런데 아내 부모 기일이 언젠지도 잘 모른다(물론 나의 부모 기일도 잘 모르긴 하지만). 아내 달력에 표시된 걸 보고 안다. 이런 나지만, 해마다 내 부모 사진 앞에 서면, 항상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바로 아내의 부모님 사진이 없는 게 맘에 걸렸던 것이다.

내 어머니는 지난 1991년 8월 23일 부산 태풍 때 집이 무너져, 낮에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변변한 부모님 사진이 없었다. 고맙게도 막내 동생이 보관해왔던 부모님 사진을 확대해서 우리 집 거실에 걸어두었다.

"그래, 이제 때가 되었다."

그때란 바로 아내의 부모님 사진을 찾을 것을 말한다. 미안한 맘만 가질 게 아니라 행동할 때였다. 그래서 행동을 했다. 멀리 사는(대구, 진주 등) 아내의 형제분들과 숙모님에게 전화를 넣었다.

"형님들 어무이아부지 사진 좀 찾아보이소. 숙모님예! 우리 어무이아부지 사진 가진 거 없으신교?"

이 분들 대답이 하나같다.

"있는가 모르것네. 찾아봐야 할끼구마. 송서방! 내 찾으모 우짜믄 되노."
"아 네. 찾으시모 휴대폰으로 탁 찍어가 지한테 보내주이소마."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처가부모님 단체사진이다. 이 사진이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엇기에 오늘의 역사가 써여졌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 사진을 스캔 떠서 파일로 만든 후 두 분만 잘라내어 꾸미기를 한 후 사진이 완성되었다.
▲ 단체사진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처가부모님 단체사진이다. 이 사진이라도 이 세상에 남아 있엇기에 오늘의 역사가 써여졌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 사진을 스캔 떠서 파일로 만든 후 두 분만 잘라내어 꾸미기를 한 후 사진이 완성되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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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보내온 사진들이 모두 엉망이다. 연세들이 있어서인지,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다. 그래서 맘을 먹었다. 내가 직접 가야겠다고. 인사도 할 겸, 사진도 구할 겸, 지난 달에 대구 찍고 진주를 찍었다. 이른바 '사진 투어'를 했다. 대구 형님 집에는 제대로 된 사진이 없었다. 진주 숙모님 댁에도 없었다. 진주 형님 집에 가서야 제대로 된(?) 사진 하나를 건졌다.

'제대로 된'이란 단어에 왜 물음표가 붙었을까. 그건 두 분만이 찍은 사진은 결국 찾지 못했다. 두 분이 들어가 있는 단체사진을 구했다. 이게 이 세상에서 유일한 처가 부모님 사진이었다. 그것을 구한 나는 "심봤다"를 외치며, 우리 집 안성으로 돌아왔다.

가져온 사진을 일단 스캔을 떴다. 파일로 만들었다. 파일을 편집 작업을 해서, 그 단체사진 속에서 두 분만 잘라내어, 다른 곳으로 모셨다. 잘라낸 파일을 수차례 꾸미기 작업을 통해, 더 선명하고 밝게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한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다.

나의 사랑하는 어무이아부지 사진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내를 내 곁으로 보내준 아주 고맙고도 고마운 분들이라 우리 집 거실에 모셔 매일 보고 산다. 고맙습니다. 아무지 어무이.
▲ 어무이아부지 사진 나의 사랑하는 어무이아부지 사진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내를 내 곁으로 보내준 아주 고맙고도 고마운 분들이라 우리 집 거실에 모셔 매일 보고 산다. 고맙습니다. 아무지 어무이.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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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프린트하고 액자로 만들어 우리 집 거실에 걸었다. 이렇게 양가 부모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아내 부모님 사진을 거실에 걸던 날, 난 마치 6.25한국 전쟁 당시 서울을 수복한 느낌이었다.

이제야 십수 년의 숙원사업을 끝냈다. 사실 이제야 해낸 내가 아내에게 미안하다. 진즉에 하지 못해서 말이다. 사실 친가 부모님 사진만 있는 게 당연하듯이 있었던 내 생각이 짧았다. 이제라도 깨우치고 행동했으니 그걸로 족하다. 정말로 예쁘고,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내 곁으로 보내준 '어무이아부지'를 곁에서 늘 볼 수 있어서 고맙고 고맙다.


태그:#아내, #처가, #처가부모님, #사진,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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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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