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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는 대학 가서 해"

내가 고등학생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당시 나는 흔히 '대외활동'이라고 부르는 걸 이것저것 하곤 했다. 그 활동이라 하면, 인터넷 카페 운영진을 하거나, 청소년 모임을 기획하거나, 교내외 대회를 준비하는 것들이었다. 공부를 놓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것과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학원수업과 숙제할 시간 외에는 따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때로는 늦은 새벽까지 관련 일을 할 때도 있었다.

내가 그런 곳에서 어떤 성취를 얻었던 간에 그런 내게 돌아오는 말은 "그런 거는 대학 가서..."뿐이었다. "그런 거 할 시간에 공부를 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내 시각이 얼마나 넓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거나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회는 내가 더 인간이 돼 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시도를 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말보다 '배척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올 봄에는 세계 최고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꺾은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가 화제였다. 여름에는 구글 내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나이앤틱의 포켓몬고(Pocketmon GO)가 화제다. 포켓몬고는 과거 세계를 휩쓸었던 포켓몬 콘텐츠에 증강현실 기술을 입힌 모바일 게임이다.

이미 출시된 미국에서 포켓몬고는 며칠 만에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했고, 애플 앱스토어에서만 하루 1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닌텐도의 주가는 하루 상승률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속초 등지에 사람이 몰려 버스 좌석이 매진되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형 포켓몬고 만들어야"... 대체 무슨 소리냐

포켓몬고
 포켓몬고
ⓒ 나이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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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뉴스에서 "우리나라도 증강현실 기술은 이미 있어서 그런 게임을 만들 수 있다"라거나 "한국형 포켓몬고를 만들어야" 등과 같은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알파고 열풍 이후 나온 '한국형 알파고' 이야기와 비슷하다. 몇 년 더 돌아가면, "우리나라에는 왜 닌텐도 같은 걸 못 만드나"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도 있었다. 그 외에도 성공한 새로운 시도를 두고 '한국형 OOO'이라는 말은 늘 있어왔다. 한국도 그러한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지였다.

난 그러한 이야기들이 다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한국이 먼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일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형 OOO"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거나 원조만큼 혁신적일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든 이후 한국의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혁신'이라는 이미지는 애플이 가지고 있다. 몇 기업은 따라잡지 못해 힘을 잃거나, 적자를 반복하기도 했다.

단순히 기술력이나 투자로 한국형 000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순히 기술력이나 투자로 한국형 000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 연합뉴스 기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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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들은 간단하다. "그런 건 대학가서 해"라거나 "그럴 시간에 공부를 해"라는 말이 횡행한 나라에서 혁신적인 것이 나올 수는 없다. 나오더라도 만든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혁신적인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활동 중 '스토리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를 휩쓴 '토크 콘서트' 포맷이다. 다른 게 있다면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었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우리 모임이 여러 문제로 흐지부지된 이후 토크 콘서트가 흥하는 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성공시킬 수 있는 것도 힘과 자본이 있어야 한다"라고.

결국 두 가지 문제다. 첫째는 12년의 초·중·고에 달하는 교육기간 동안 학생들은 '다른 생각 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다른 생각이 아니라 애초에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12년 간 배우는 건 '잘 외우는 법'이다. 애초에 모든 답은 정해져 있고, 다른 답을 내놓는 학생은 이상한 취급을 당한다. 남들과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하는 학생은 돌연변이 쯤으로 취급이 된다. "공부나 해"라고 다들 머리를 쥐어박는다. 실제로 그 학생이 얼마나 대단한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새로운 것'에 가혹한 사회

비단 이것은 대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비단 이것은 대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는 일이다.
ⓒ ebs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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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이 사회는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이다. 대입과 취업, 결혼과 내 집 마련이라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 과제 속에서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인생 과제는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살기 위한' 발버둥이다.

현재 한국에서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 수 없고, 모두가 노예일지라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기나긴 경쟁 레이스를 달려야 한다. 그 레이스에서 낙오된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낙인과 '무능력자' 낙인 속에 살아야 한다. 단 한 번의 딴짓으로 인생이 망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그저 마음 한 켠에 숨길 뿐이다.

회사 내에서도 새로운 걸 시도하기는 어렵다. 권위주의적 계급 체계 속에서 젊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회사는 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수익성 검증을 요구하고 효율을 요구한다. 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 최소한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안전한 길이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아무도 그런 곳에 투자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회사와 관료는 위험하고 혁신적인 것이 아니라 늘 해왔던 변변찮은 것을 유지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바쁘다.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새로운 시도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켓몬 세계를 만든 타지리 사토시는 공부가 아니라 곤충채집과 게임에 열을 올렸던 학생이었다. 나중에는 프리랜서 기자를 하며 2년 간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포켓몬스터'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곤충채집과 게임에 열을 올리는 학생을 상상할 수는 있다. 다만 그런 학생들은 결국 흔히 말하는 '지잡대'에 가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해도 낮은 임금과 과노동 속에서 살아남기에도 버겁다. 마음 속에 품은 것이 있더라도 주변의 만류와 윽박지름, 무시 속에서 '쓸데 없는 것'으로 치부됐을 것이다. 모두들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거 할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하고 지적했을 테니 말이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시험 '바칼로레아'는 암기가 아니라 철학적 질문에 대한 논술답변 형태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시험 '바칼로레아'는 암기가 아니라 철학적 질문에 대한 논술답변 형태다
ⓒ ebs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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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 체계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적합한 형태로 보인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 시스템은 아니다. 선진국들이 구술시험과 논술시험을 하고 정해진 답을 지워내고 있는 지금, 여전히 암기만을 강요하고 한 가지 생각만 강요한다. 동시에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과거 우리나라보다 더한 암기식 교육으로 무섭게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길러내는 사람이 중국과 인도가 길러내는 사람보다 경쟁력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렵다. 모두 같은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하는 학생에게 억지로 교과서를 쥐어주는 교육, 다른 생각을 하는 청년에게 억지로 토익책을 쥐어주는 사회, 다른 생각을 하는 직장인에게 시키는 거라고 하라고 윽박지르는 기업을 바꾸지 않으면 알파고도, 포켓몬고도, 수많은 혁신도 불가능하다.

혁신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선불교와 마약에 빠져 생산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런 그가 먹고 살 수 있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 그런 그를 강제로 바꾸려들지 않는 사회가 있었기에 애플이 있었다.

지시대로 하길 원하는 사회에서 혁신이라고?

하나의 답을 강요하는 교육제도에서 다른 생각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답을 강요하는 교육제도에서 다른 생각은 불가능하다
ⓒ 최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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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는 말 중에 '또라이'라는 게 있다. 우리는 통념과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라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혁신은 '또라이'가 이뤄낸다. '또라이'를 배척하는 사회에서는 그 어떤 혁신도 없다.

아, 그리고 "대학가면 해라"라는 말들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대학와서는 "네가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라거나 "취업 준비 해야지"라는 말로 바뀌어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우리도 닌텐도 같은 걸 만들" 생각도, 제대로된 "한국형 OOO"를 만들 생각도 없다. 시키면 듣고 그대로 하는 기계를 원할 뿐이다. 근데 어쩌나. 그건 한국사람보다는 인공지능이 더 잘하고, 개도국 사람이 더 경쟁력이 있는데.


태그:#포켓몬고, #한국형, #혁신, #나이앤틱, #최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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