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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진행된 1차 "흙수저 수다방"
 6월 9일 진행된 1차 "흙수저 수다방"
ⓒ 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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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학교지? 너 이제 죽었어."
"어미애비가 그렇게 가르쳤냐?"


체불된 한 시간 치 임금 5580원을 요구한 만17세 청소년이 들은 말이다. 이 청소년은 친구와 함께 동네 헬스장에서 전단지 알바를 했다. 3시간을 열심히 일했지만 전단지를 전부 붙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2시간 치 임금밖에 받지 못했다. 이들은 다음날 못 받은 한 시간 치 임금을 요구했다.

일을 시킨 헬스장 트레이너는 나머지 한 시간 치 임금을 달라고 하는 청소년들에게 "너네 학교 안 다니지?" "공부 못하지?"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리고는 5580원을 이들에게 집어던졌다. 동전이 바닥을 굴러가는데, 자존심이 상해 주울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청소년은 도움을 구하러 부모님께 전화했다가 더 심한 폭언을 듣기도 했다.

"너 왜 이렇게 싸가지 없냐?"

트레이너는 급기야 이들의 멱살을 잡고 헬스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10대 여학생들은 건장한 남성 트레이너 앞에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명을 언급하며 "옷 갈아입고 올 테니 같이 경찰서 가자"는 말에 결국 두 청소년은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두 청소년의 태도와 행동은 정말 '싸가지 없는 것'이었을까? 대체 언제부터, 침해된 권리와 부당한 대우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싸가지 없는 태도가 되었을까.

인격모독에 성희롱까지... "부모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위의 경험담은 동대문구의 비영리 민간단체인 '우리동네노동권찾기(이하 '우동')'에서 주관한 청년 알바 노동자 좌담회, 이른바 '흙수저 수다방'에 참가한 한 여학생의 사연이다. 6월 9일과 21일 두 차례 진행된 '흙수저 수다방'에는 총 8명의 청년과 청소년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토로하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의 근로기준법 위반은 애교였다.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 그리고 성희롱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부터 학원 보조강사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부당한 일들이 일어났다.

카페에서 일하는 한 참가자는 주휴수당 자체를 몰랐고, 당연히 주휴수당도 받지 못했다. '흙수저 수다방'에 동석한 노무사가 주휴수당을 요구할 것을 제안했지만, 카페 매니저와 관계를 악화시키고 카페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8명의 참가자 중 최저시급을 못 받은 사례는 없었다. 대신 주휴수당을 미지급하면서 사실상 최저임금을 위반한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언론에 많이 노출된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참가한 청년 모두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주휴수당의 존재를 모르는 청년들은 절반을 넘었다.

"학원에서 일하기로 했으면 학원 일에 모든 걸 바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청년들이 겪는 또 다른 부당 대우는 근무 시간의 잦은 변경과 연장이었다. 학원에서 일하는 24살의 청년은 계속되는 학원장의 잦은 시간변경에 항의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위의 말과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구두해고였다.

일용직을 일을 자주 해본 또 다른 참가자는 강압에 가까운 연장근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5시 40~50분 사이에 와서 마무리 작업을 시킨다. 그러면 6시 넘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한번은 연장근무를 하고 초과수당으로 4만 원 받기로 했는데 2만 원만 들어왔다. 2만 원 더 달라고 전화했는데 1주일 후에 1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참가한 모든 청년은 한 목소리로 직장 내 인격모독과 비하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한 청년은 일하는 첫날부터 사장에게 반말을 들었다. 그곳에서 반말과 욕설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막내라는 이유로 반말을 듣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떠안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일까지 하느라 자신의 일을 끝내지 못했던 날, 사장은 그에게 욕설을 쏟아냈다.

"일하면서 처음으로 부모 욕을 들었다. 그 일로 회사를 그만뒀다. 나한테 욕하는 건 많이 들었다. 다른 건 다 참겠지만 부모 욕은 참을 수가 없었다."

욕설과 인격모독은 일용직 단시간 근로자에게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 특히 일용직 단시간 근로자나 중소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욕설은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어느 TV 프로그램의 세트장을 준비하면서 담당자한테 계속 쌍욕을 들었다. 너무 짜증 나서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 참고 일했다."

성희롱을 겪은 참가자도 있었다. 그는 가슴에 타투를 했는데, 어느 날 여사장이 그를 부르더니 문신을 한번 보자며, 상의를 벗어 보라고 했다. 그는 "그땐 분위기에 벗으라니까 벗긴 했는데, 이후로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수치심이 든다"고 말했다.

'알바는 부업'이라는 인식의 문제

6월 21일 진행된 2차 "흙수저수다방"
 6월 21일 진행된 2차 "흙수저수다방"
ⓒ 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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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수다방'은 '우리동네노동권찾기'에서 서울 노동권익센터의 지원을 받아, 단순한 외부 캠페인 활동에서는 듣기 힘든 청년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마련된 자리이다.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고 특히 청소년들은 '알바생'의 생생한 현실에 대해 말해주었다.

'흙수저 수다방'에 참가하며 청년·청소년 노동자들이 저임금이나 임금체불보다도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과 비하에 더욱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과 모멸감에 대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가장 참기 힘든 일이었으며 해당 사업장에서 일을 그만두게 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참가한 8명의 청년 중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응해 권리를 회복하거나 사과를 받은 적 있는 이는 체격이 건장한 남성 참가자 단 한 명 뿐이었다. 특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나 분위기를 해칠까 봐, 또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돼 피해를 입을까 봐 대응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러한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미준수와 인격모독의 행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알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다. 알바라는 말은 본래 독일 원어에서는 노동 자체에 가까운 의미이나 일본과 한국에서는 부업이나 임시직으로 통용된다. 우리 사회에서 알바는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유난히 무시당하고 낮잡아 쉽게 여겨지고 있다.

청년들의 정당한 분노(요구)가 더 이상 싸가지 없는 불평, 불만으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으로 활동한 지 두 달이 됐지만 아직 막연하기만 하다. "정의는 대등한 두 힘 사이에서 가능하다"라는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말을 떠올려볼 따름이다.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 우리동네노동권찾기
지난 5월 30일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 발대식
 지난 5월 30일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 발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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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비영리민간 단체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동대문구 비영리민간 단체 '우리동네노동권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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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는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당한 부당 노동행위와 노동인권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와 그들의 권리구제를 위한 기초적 상담을 실시한다. 지난 5월 23일 부터 동대문구에 위치한, 청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우리동네노동권찾기(이하 우동)'라는 비영리 시민단체에 배치되어 지역 청년들을 만나며 최저임금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현재 '우동'은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청년 권리지킴이와 함께 특성화고와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최저임금캠페인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은 최저임금위원회와 현황을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며 최저임금인상에 대한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태그:#흙수저수다방, #우리동네노동권찾기, #알바, #비정규직,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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