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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산비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청정 바다로 소문 난 전라남도 완도에 있는 백두목장 풍경이다.
 해변의 산비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청정 바다로 소문 난 전라남도 완도에 있는 백두목장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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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들은 어딨어요?
"길 따라서 산으로 쭈욱~ 올라가 보십시오. 거기에 있을 겁니다."

산자락에서 노닐며 풀을 뜯고 있을 소들을 만나러 간다. 목장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다. 내가 올라가는 이 길을 따라 소들이 줄지어 풀을 뜯으러 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장관일 듯하다.

산모퉁이를 몇 번 휘어 돌아 중턱에 닿았다. 산등성이에 풀밭이 넓다. 소들이 노닐며 풀을 뜯었을 초원이다. 하지만 소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몇 바퀴 둘러봐도 누런 소의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완도 백두목장 풍경. 소들이 풀을 뜯은 흔적만 보일 뿐, 소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완도 백두목장 풍경. 소들이 풀을 뜯은 흔적만 보일 뿐, 소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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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목장의 초원. 소들이 산비탈을 노닐며 풀을 뜯는 곳이다. 하지만 흔적만 보일 뿐, 소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백두목장의 초원. 소들이 산비탈을 노닐며 풀을 뜯는 곳이다. 하지만 흔적만 보일 뿐, 소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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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노니는 소를 찾아서 산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초원의 끄트머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소의 흔적은커녕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체 소들은 어디에 있는거야?' 혼잣말을 되뇌며 길을 걸었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불안해진다. 마음속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산자락에 숨어있던 한 무리의 소들이 화들짝 달려들 것만 같다. 숲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긴장의 끈을 더욱 부여잡게 만든다.

바스락... 산비탈에 한우 등장

소 한 마리가 산비탈에서 나뭇잎을 뜯어 먹다가,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고 있다.
 소 한 마리가 산비탈에서 나뭇잎을 뜯어 먹다가,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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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머어~"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리 나는 쪽으로 눈을 돌리니, 산비탈에서 소 한 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초리다. 조금 떨어진 데 있던 다른 소도 나뭇잎을 뜯어먹으며 힐끔 쳐다본다. 산모롱이 끝 숲 그늘에서 쉬고 있던 한 무리의 소들도 일제히 경계를 하는 눈치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갔더니, "음머어~" "음메~" 울면서 금세 산비탈로 흩어진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울음소리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갈수록, 소들은 더 멀어져갔다.

소들은 이방인을 피해 산비탈을 달려 내려간다. 산길을 뛰어다니는 소들의 모습에서 고삐 풀린 말을 연상케 했다. 소의 행동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민첩했다. 사진 촬영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 표시였다.

백두목장에서 내려다 본 풍경. 마을을 배경으로 전복 양식장이 보인다. 왼쪽 산자락에는 완도타워가 서 있다.
 백두목장에서 내려다 본 풍경. 마을을 배경으로 전복 양식장이 보인다. 왼쪽 산자락에는 완도타워가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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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 초원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소떼들. 한낮의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다가 낯선 이를 보고 경계하고 있다.
 산비탈 초원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소떼들. 한낮의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다가 낯선 이를 보고 경계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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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카메라를 접고, 숲 그늘에 앉았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멋스럽다. 망남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에는 전복 양식시설이 줄지어 떠 있다. 왼편으로 완도타워가 우뚝 서 있다. 신지도와 청산도, 대모도, 소모도 등 완도 앞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도 보인다. 맑은 날엔 제주도까지 보이겠다.

숲 그늘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전화 통화도 몇 군데 했다. 소들은 여전히 풀을 뜯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소들이 경계를 조금 푸는 것 같았다. 나의 행동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나뭇잎과 풀을 뜯었다. 카메라를 다시 꺼내 셔터를 누르는 데도 반응이 무디다. 시나브로 미끈하고 털색 좋은 소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서서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어미 소를 따라다니는 새끼 소의 모습도 예뻤다. 선진 목장의 평화로운 풍경 그대로다. 꼬리를 살짝 흔들면서 파리를 쫓는 모습도 귀여웠다.  

"소 등급은 중요치 않아요"

소들이 산비탈에서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다. 백두목장의 소들은 산비탈의 초원에서 나뭇잎과 풀을 뜯으며 노닌다.
 소들이 산비탈에서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다. 백두목장의 소들은 산비탈의 초원에서 나뭇잎과 풀을 뜯으며 노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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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목장의 초원을 누비는 소. 생김새가 다부지고 때깔도 매끈하다.
 백두목장의 초원을 누비는 소. 생김새가 다부지고 때깔도 매끈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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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 완도 백두목장에서다. 백두목장은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망남리 바닷가 산비탈에 있다. 면적이 11만 ㎡에 이른다. 큰소 90마리와 송아지 30마리 등 120마리를 방목하고 있다. 30여 년 됐다.

목장의 주인은 황정삼(74)씨다. 37년 동안 젖소와 한우를 길러온 축산인이다. 지난해 8월 해병대에서 전역한 아들 황철희(44)씨가 대를 이어 목장을 꾸리고 있다.

"건강한 소로 키우겠다는 아버지의 의지가 담겨 있는 목장입니다. 등급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암소를 운동시켜서 튼튼하게 자라게 하고, 건강한 송아지를 생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군인 특유의 말투가 몸에 밴 철희 씨의 말이다.

소들이 해변의 산비탈에서 풀을 뜯고 있다. 뒤로 보이는 바다가 망남리 앞바다이다. 완도타워와 신지도도 저만치 보인다.
 소들이 해변의 산비탈에서 풀을 뜯고 있다. 뒤로 보이는 바다가 망남리 앞바다이다. 완도타워와 신지도도 저만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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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희 씨가 풀을 뜯던 소를 부르고 있다. 황 씨는 지난해 전역을 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백두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황철희 씨가 풀을 뜯던 소를 부르고 있다. 황 씨는 지난해 전역을 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백두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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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산비탈을 뛰노는 소들은 모두 근육질의 몸매를 뽐냈다. 조금의 스트레스도 엿보이지 않았다. 행복해보이기까지 했다. 마블링(Marbling)으로 판가름하는 육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목을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에는 볏짚을 깔아줍니다. 소들의 배설물이 퇴비가 된 덕에 풀도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남아도는 우변은 인근의 마늘·배추 재배농가에서 거름으로 쓰려고 가져가기도 합니다."

철희씨의 말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목장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동생(지현·40)과 함께 망남리 앞바다에서 전복 400칸을 양식하고 있다. 앞으로 한우와 전복을 결합시켜 새로운 소득 창출도 구상하고 있다.

백두목장의 초원을 누비는 소들. 산비탈을 누비는 모습에서 광야를 달리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백두목장의 초원을 누비는 소들. 산비탈을 누비는 모습에서 광야를 달리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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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친환경축산, #한우, #방목, #백두목장, #황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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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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