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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부터 총 열하루 동안 유로 2016에 대한 첫 번째 모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축구의 본토인 유럽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해보고 싶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기대해주세요! - 기자말

리옹 구시가지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떠나려는데, 마침 근처의 도시에서 경기가 있는 포르투칼 응원단을 만났습니다.
▲ 피구를 입고 나온 날 포르투칼 응원단을 만났습니다. 리옹 구시가지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떠나려는데, 마침 근처의 도시에서 경기가 있는 포르투칼 응원단을 만났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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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잤다. 어제는 리옹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차로 두 시간 반쯤 걸리는 도시인 마르세유로 이동한 후 곧바로 잠들었는데, 그동안의 피곤이 쌓인 모양이다. 전일의 폭우는 없었던 일이라는 듯, 아침 리옹의 하늘이 개이는가 싶더니 다시 쌀쌀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리옹 구시가로 식사를 하러 가는 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계단 끝에서 한무리의 포르투갈 응원단을 만난다.

'이런! 나 오늘 피구(포르투갈 대표팀 공격수)의 레알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나왔는데!'

부랴부랴 달려나가 응원단 앞에 섰더니, 몇몇이 알아보고는 환한 미소를 던진다. 포르투갈의 경기가 어디인가 찾아보니, 오후 9시에 리옹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생테티엔에서 경기가 있다. 왠지, 오늘은 (피구 유니폼때문인지) 포르투갈을 응원하고 싶네. 힘내, 포르투갈! (Forca, Portugal!)

유난히 파란 하늘과 헐리우드 사인을 닮은 '마르세유'가 나타납니다. 이제 도착했어요!
▲ 멀리로 마르세유 도착입니다. 유난히 파란 하늘과 헐리우드 사인을 닮은 '마르세유'가 나타납니다. 이제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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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도심 곳곳에 각종 디자인의 그래피티가 가득합니다. 어지럽긴 한데, 잘 어울려요. 어딘가, 브라질 히우의 느낌도 나구요.
▲ 마르세유는 바다와 그래피티의 도시! 오래된 도심 곳곳에 각종 디자인의 그래피티가 가득합니다. 어지럽긴 한데, 잘 어울려요. 어딘가, 브라질 히우의 느낌도 나구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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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렌트카를 몰아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인 마르세유로 향한다. 마르세유는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5대 0으로 패했던 곳인데, 다시 찾는다고하니 주변의 축구인들에게서 '한국축구 흑역사의 성지'라며 한탄이 가득하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내려오는 길, 하늘이 열리며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반가운 인사를 던진다. 프랑스에 들어온 이후, 계속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이제 드디어 화창한 햇살이 가득한 '지중해'로 향한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설레인다. 일행들과 함께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마르세유 외곽의 아파트인데, 젊은 부부의 감각에 놀라며 편하게 묵었다. 나는 부부의 어린 딸의 방에서 신세를 졌는데, 고마워요~ INES! ^^

광장에 설치된 관람차를 탔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르세유 항구의 모습이 아름답네요.
▲ 관람차에서 내려다본 오래된 항구의 모습 광장에 설치된 관람차를 탔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르세유 항구의 모습이 아름답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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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챙겨먹고 마르세유의 구도심으로 산책을 나선다. 마르세유는 지중해에 인접한 항구도시인데, 도시에 들어서면서부터 강한 햇살과 도시 곳곳을 장식한 현란한 그래피티가 여행객을 반긴다. 아침의 산책을 통해 찾은 구도심. 빽빽하게 서 있는 오래된 건물들을 통과하니 '오래된 항구 (Le Vieux Port)'가 등장했다. 보트가 열을 맞춰 서 있는 좁은 직사각형의 만은 그 앞의 건물들을 경계로 둥근 광장을 만들어 냈다. 전세계에서 요트가 가장 많은 도시라더니 하얀 요트와 푸른 바다가 반짝이는 풍경이 화려하다.

오래된 항구에는 이미 도착한 알바니아 응원단으로 가득했고, 그들이 곳곳에서 벌이는 응원전은 오늘의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오늘의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거리의 상인이 판매하고 있는 매치데이 스카프를 샀다. (매치데이 스카프는 반쪽을 나눠서 오늘 경기를 하는 양쪽 국가를 반반씩 그려넣은 것인데, 경기장의 상점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상인 청년이 십 유로를 부르길래, '진짜니? 깎아줘!' 하면서 미소를 한껏 날렸지만 '실패'! 친구는 다른 경기에서 5유로에 2개를 샀다던데, 그 매력을 어떻게든 배워야겠다. 아자!

갑자기 광장으로 관광을 위한 꼬마 버스가 지나간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학생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더니, 근처에 오자 환호를 보내며 손을 흔들었더니 갑자기 프랑스 팀에 대한 응원을 연호하며 광장을 지나간다. 그들의 경쾌한 응원소리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첫 경기 이후로 수 많은 알바니아 응원단이 프랑스를 찾았나봅니다. 광장을 울리게 응원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합니다.
▲ 오래된 항구 근처의 광장에 알바니아 응원단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첫 경기 이후로 수 많은 알바니아 응원단이 프랑스를 찾았나봅니다. 광장을 울리게 응원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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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저 유로2016 디자인 상품들을 보았을때는 적응이 안 되더니, 푸른 휘장과 다양한 크기의 장식들이 눈에 확~ 띄어 좋다!
▲ 광장의 오래된 호텔건물앞에는 유로 표시들 처음에 저 유로2016 디자인 상품들을 보았을때는 적응이 안 되더니, 푸른 휘장과 다양한 크기의 장식들이 눈에 확~ 띄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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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기가 열리는 마르세유의 경기장은 98년 월드컵 때 사용했던 경기장을 보완한 '신형 벨로드롬 (La Nouveau Stade Velodrome)' 경기장이다.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아픈 기억이 가득한 곳이지만, 오늘은 프랑스 유니폼을 입고 들어왔으니 나쁜 기억들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오늘은 리옹에서처럼 킥오프에 임박하여 들어가지 않도록, 일찌감치 경기장 주변에 차를 세우고 팬존까지 팬워크(Fan Walk)를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경기장에서 팬존까지는 약 1.9키로미터 정도 해변쪽으로 걸어야 하는데, 걸어가는 동안 길에 늘어선 가로수에서 풍기는 향기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오늘은 홈팀 프랑스와 유로에 첫 출전한 동유럽의 약소국 알바니아의 일전이다. 유로 첫 출전이라는 흥분때문인지, 프랑스 전역은 자국의 경기를 찾아가는 알바니아 팬들로 가득하다. (지난번 알바니아의 첫 경기를 찾은 친구의 증언으로는 거의 자국민의 3퍼센트가 운집했다고하니, 실로 놀랍다!) 오늘 입은 프랑스 유니폼 때문인지 알바니아 응원단에겐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지나가는 프랑스 응원단과는 응원을 주고 받으며 걸을 수 있었다. (프랑스 유니폼이 파란색인 때문인지, 그들은 자국팀을 '파랑이들 Les Bleus'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힘내, 파랑이들! (Alle les Bleus!)' 

프랑스가 프랑스다운 플레이를 단 한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은 실망입니다만,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응원의 함성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을 듯 합니다.
▲ 프랑스와 알바니아의 일전! 프랑스가 프랑스다운 플레이를 단 한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은 실망입니다만,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응원의 함성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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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존에서 시간을 보낸 후, 경기장에 입장하니 8시반쯤 되었다. 6만 7천 명 정도를 수용하는 벨로드롬 경기장은 온통 프랑스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푸른 물결로 가득했다. 다만, 북쪽 스탠드를 반정도 채운 알바니아 응원단이 한 떨기 꽃처럼 붉게 피어있는 모습이 당당했다.

경기 시작 전, 프랑스의 위협적인 응원이 벨로드롬을 가득 채우는 동안, 알바니아의 응원을 보며 월드컵 원정에서의 붉은 악마가 떠올라 안쓰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의 경기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알바니아는 절대 '안타까운 원정팀'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당당했고, 지치지 않았으며, 선수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데다, 패배한 채 고개숙인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골의 수에 의한 승부는 2대 0으로 프랑스의 승리라는 일방적인 결과로 나타났으나, 88분동안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프랑스의 11명의 선수들과 관중석을 가득 채운 5만이 넘는 응원단을 조바심나게 했던 알바니아팀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축구를 오랫동안 봐 왔다고 생각하지만, 축구는 여전히 어렵다. 오늘도 경기의 득점만으로 프랑스를 '당당한' 승자로 대하는 것에는 반감부터 생긴다. 오늘 경기에서 프랑스는 성급했고 진지하지 않았으며 나태했고 승부에 대한 절실함이 부족해 보였다. 다만, 그들은 '비기는 것'을 목적으로 나온 팀 (알바니아)에 비해 '이겨야만 한다'는 바람이 조금 더 컸던 것 뿐이다.

승부의 88분 내내 그들이 보여준 것은 결코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은 아니었으나, 알바니아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허락되었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그래서, 오늘의 경기가, 자국의 6만에 가까운 관중 앞에서 보여준 홈팀 프랑스의 플레이가 너무도 아쉽다.

개최국 프랑스의 2대0 승리네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런 분위기의 경기장을 가질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 경기가 끝났습니다. 개최국 프랑스의 2대0 승리네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런 분위기의 경기장을 가질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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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이번 유로2016에서 직접 관람하기로 한 경기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월드컵과는 달리 거의 고른 기량을 보이는 유럽의 팀들이, 자국의 승리를 위해 결의를 다지며 경기에 임하는 모든 순간이 감동적이었다. 모든 경기장에는 양국의 응원을 하기 위해 유럽 각지로부터 모여든 관중들로 만원이었고, 지역의 팬존에서는 미처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응원단을 비롯하여 프랑스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자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는 것, 다른 나라의 경기라해도 좋은 경기를 위해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것, 이것이 유럽의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는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에 부러움이 잔뜩 밀려온다. 그들의 축구가, 축구 문화가 너무도 부럽다. 우리는, 우리의 축구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축구를 즐기는 팬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알고싶을 뿐이다.

내일부터는 축구를 즐기는 '여행'이 목적인만큼, 남부 프랑스의 지중해를 즐기면서 이 나라의 사람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자 한다. 내일의 목적지는 영화제의 도시 깐느이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도 기대된다. 야호!


태그:#유로2016, #마르세유, #프랑스 VS. 알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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