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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하기 전 농부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 샨티학교 모내기하는 모습 모내기를 하기 전 농부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 김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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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산과 하늘이 전부인 산골. 대부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샨티학교 아이들이 맨발로 서 있다.

"모내기 처음 해보는 친구 있어요?"

농부님이 물으신다. 올해 들어온 신입생들을 제외하곤 "아니요. 작년에 해봤어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매년 샨티학교는 농약을 쓰지 않고 우렁이로 농사를 짓는 희양산공동체 마을 모내기를 돕는다. 이앙기가 닿지 않는 산골에 있는 논에 손으로 모를 심는다. 농부님들이 직접 하실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벼농사를 체험하도록 일부러 남겨놓은 논. 우렁이 마음 같은 농부님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바지를 걷어 올리고 논으로 들어간다. 처음 모를 심어보는 친구가 내 옆에서 조잘거린다.

"와~ 진짜 신기해요. 어릴 때는 벼나무가 있는 줄 알았어요."
"어제까지 벼나무가 있는 줄 안 거 아니야?"
"어, 들켰다. 비밀이에요. 근데 왠지 찝찝해서 논에 들어가기 싫어요."

물컹물컹한 논에 발을 폭 담근다.

"건우야. 이 벌레 뭔지 알아?"

논에 빨갛고 실처럼 생긴 벌레가 가득하다.

"이건 깔따구라고 해요."

조류학자가 꿈인 건우는 곤충 선생이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에게 쓴 롤링페이퍼에 '선생님을 보면 무슨 새가 생각나요'라고 적었다. 저마다 다르게 적힌 새 이름을 검색해보는 기쁨을 준 아이다.

나에겐 '댕기물떼새'같다고 했다. 컴퓨터로 찾아보고 얼마나 흐뭇했던지. 그 후로 건우를 보면 댕기물떼새가 생각난다. "건우는 좋겠다. 여자 친구한테 무슨 새 닮았다고 하면 좋아하지?"라고 물으면 그 특유의 점잖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한다.

논둑에 선 농부님이 못줄을 옮길 때마다 징을 치신다.

"자, 한 발짝 물러서세요. 고개 들어 하늘도 보고요."

허리를 펴고, 다시 굽혀 모를 심는 과정의 연속.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에 지쳐갈 때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참 시간이 되었다. 마을에서 준비해준 새참을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을 보니' 논에 물드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돌이 많은 논에 들어간 아이들이 까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쫑알거리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몸이 고되면 말이 없어지는 법이다. 말이 없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고독을 즐기게 놔두었다. 늘 질문이 많은 나도 침묵을 지켜야 할 때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모내기를 마친 아이들이 봉암사계곡에 뛰어들었다. 서로의 몸을 들어서 신나게 빠뜨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십대들 곁에 있으니 젊어지기도 하지만, 어떨 땐 공감할 수 없는 옛 노래를 부르는 가수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친구가 되고픈 마음 곁에 늘 뭔가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샨티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명나라 사상가인 이탁오 선생의 글을 자주 떠올렸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친구 같은 스승일까. 스승 같은 친구일까.

몸으로 기억될 '모내기'를 글로 기록해보자

글쓰기 수업시간 칠판에 '모내기'를 적었다. 지루한 일상에서 두레박처럼 올려낸 글도 아름답지만, 낯선 경험 특히 첫 경험을 글로 남겨놓자고 말했다. 글을 적으면서 자신의 감정이 구체화되는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모내기한 날, 모든 게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나의 착각임을 알았다. 힙합을 좋아해서 직접 노래를 만들기도 하는 태현이의 글이다.    

발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화난 듯하고
나는 화가 난 진흙과
진흙에 사는 동물들을 보고 있다.
내 발처럼 잘 보이진 않지만
더위를 먹은 사람들처럼
화가 난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징그럽다고 경악하는 와중에도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밟아 죽이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나도 내가 왜 이런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올해 신입생으로 들어온 묘정이의 글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내기를 해본 기분이 어땠을까.

너무 힘든 모내기
저 흙탕물 찝찝하고 더럽고 기분 나쁜 곳
허리를 숙일 때마다 보이는 벌레들
모종을 뜯을 때마다 아픈 내 손가락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들
발을 디딜 때마다 아프게 하는 돌들
모든 게 싫고 귀찮은 내 기분

다 끝나 언덕에서 본 초록머리들
다 풀리게 하는 구나.
기분 나쁜 곳이 뿌듯해지고
벌레들이 신기해지며
내 손가락이 자랑스럽고
햇빛들마저 아름다워 보인다.
너무 힘든 모내기
다 끝나고 나서야 모내기를 알았구나.

모내기를 마치고 산중턱에서 본'초록머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묘정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샨티학교에 온 친구이다. 시선이 고운 사진을 찍는 묘정이를 보면 '글이 곧 자신'인 것처럼, '사진이 곧 자신이다'는 생각이 든다.

온몸으로 직접 느껴본 것만큼 소중한 경험이 또 있을까. 몸의 기억. 몸으로 익힌 것들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장구 앞에 앉더라도 몸의 기억으로 장단을 치듯, 몸으로 기억될 모내기. 살아가면서 아주 가끔은 떠오르겠지. 몸의 기억을 글로 기록하는 일,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오늘도 한 편의 글을 남긴다.


태그:#샨티학교, #글쓰기, #모내기, #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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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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