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월 28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부족한 인력으로 돌려막는 경영은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질병으로 내몰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기획기사를 통해 고용형태와 건강영향 연구 결과를 통해, 비정규직/하청노동 등 불안정노동이 노동자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4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1) 사고와 산재 사망
(2) 정신질환과 자살
(3) 뇌심혈관질환
(4) 원인과 과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수리, 정비 노동자의 죽음에 불안정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가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구의역 9-4 승강장을 찾는 추모 행렬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15년 8월에도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가 완전히 똑같은 사고로 사망했다.

그 때와 똑같이, 사고 뒤에 언론은 '정비 노동자가 정규직이 아니어서 업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2인 1조 매뉴얼을 어기도록 근무 지시가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가 내 머리를 친다.

"만일 고인이, 둘이 하는 일을 왜 혼자에게 시키느냐고 따지고, 혼자서는 출장 안 나간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고용이 불안하니 노동자들은 안전을 요구하기 어렵다. 하청업체 노동자, 파견노동자, 1년 미만 계약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위험을 끌어안고 일한다. 노동의 불안정성이 위험을 키운 것이다.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다치는 이들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스크린도어 산재사고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스크린도어 산재사고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바꿈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그 결과를 이미 잘 알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한 것은 전체 산업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1500여 명의 업무상 사고 산재 노동자와, 사고를 당하지 않은 1500여 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전화 인터뷰한 2007년 연구가 있다. 1년 미만으로 고용계약을 맺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업무상 사고로 산재보상을 받을 위험이 2.87배 높았다. 이 수치는 나이, 노동시간, 교대근무 등 다른 위험요인의 영향을 보정하고도 남는 위험이었다. (Im et al., Am. J. Ind. Med. 55:876–83, 2012)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조선산업 노동자의 산재 사망만인율(산재보험 적용 노동자 만 명 중 산재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원청과 하청 노동자로 나누어 비교한 연구가 있다. 200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원청노동자의 사고사망 만인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망률은 그다지 낮아지지 않았다. 원청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고사망만인율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2009년에는 원청 노동자 만명당 0.82 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할 때, 하청 노동자는 2.07명이 사망했다. 사망 위험이 2.5배가 넘는 것이다. (박종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13)

2010년의 2차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원청 노동자 3천여 명과 하청 노동자 700여 명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청노동자는 원청 노동자보다 일하다 다칠 위험이 두 배 높았다. 게다가 질병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위험은 원청노동자보다 3.56배나 높았다. (Min et al. Am. J. Ind. Med. 56:1296–1306, 2013)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불안정한 고용 구조 자체가 위험을 더 키우기도 한다. 6월 1일에는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에서 노동자 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크게 다치는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사상자는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놀랄 만한 소식도 아니다. 특히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이뤄진 건설 현장에서는 화재, 폭발 등 대형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하청,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특히 건설업에서의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가 화재와 폭발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복잡한 고용 구조 속에서 제대로 된 소통이나 조율이 어렵기 때문에,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작업들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하루 단위로 고용되는 임시직 노동자들은 해당 작업장의 위험 요소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교육이나 주의가 더 필요하지만, 이들에 대한 교육은 더 무시된다. (Ji-eun Park, Myoung-hee Kim. NEW SOLUTIONS, Vol. 24(4) 483-494, 2015)

오히려 임시 노동자에게 더 위험하고, 더 강도 높은 노동이 전가된다. 하청 단계를 거칠수록, 더 낮은 비용으로 작업을 해치우려는 압력은 커지고, 결국 비용으로 귀결되는 작업장 안전수칙은 무시된다. 더 위험한 업무를 떠안은 노동자들일수록, 스스로를 보호할 정보도 없고, 함께 대항할 여력이나 조직도 없다.

<한겨레>가 지난 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남양주 사고에서도 사건 당일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화재와 폭발사고 위험이나 가스누출 유무 확인에 관한 안전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었다고 한다. 사고가 난 지하 작업장에는 환풍기나 가스경보기가 없었고, 작업 전 가스농도도 측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파편화된 노동자, 안전도 각자 알아서

19세 청년 노동자의 죽음 이후 국회의원들은 19대 국회에서 미뤄지다 통과되지 못했던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 직접 고용'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그러나 생명·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안한 고용은 위험을 짊어지게 하고, 모든 불안정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 부품 업체에서 일하던 파견노동자들이 메탄올에 중독돼, 4명이 시력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구로디지털단지 전자제품 제조 여성 노동자가 메탄올 사고 이후 카톡을 보내왔다. 여기도 핸드폰 부품 세척 작업을 하는 곳인데, 불안했나 보다.

"언니,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이 물질을 사용하는데, 냄새도 너무 심하고 다들 힘들어 해요. 어떤 물질인지 알아봐주실 수 있으세요?"

제품 생산 회사 홈페이지를 뒤져 해당 제품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찾아보니 총 8가지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었는데, 모두 작업환경측정, 특수검진대상 물질이었다. 각각의 물질 농도가 작업장 내에 어느 정도 되는지 6개월마다 검사해야 하고, 이 물질 때문에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1년마다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이 물질을 쓰는 노동자는 이 물질의 위험성과 주의 사항, 작업환경측정 및 특수검진 결과를 포함해 16시간의 특별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특히 이 중 네 시간은 물질을 사용하기 전에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전교육이나 안내는 전혀 없었다. 사업장 안에 파견 노동자, 아르바이트 노동자(하루 이틀 단위로 계약을 맺어 일하는 노동자들을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고용도 불안할뿐더러, 꾸준히 얼굴 보면서 함께 상황을 바꿔나갈 관계로 서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안전을 챙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들이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 것은 위험한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서가 아니다. 더 위험한 일을 해서만도 아니다. 불안한 고용이 위험을 짊어지게 강요한다. 결국, 불안한 고용이 사고를 낳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태그:#위험의 외주화, #구의역 스크린도어, #비정규직 산재사망
댓글1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