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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의 바닷길'이 열리는 통영 소매물도 열목개에서.
 '모세의 바닷길'이 열리는 통영 소매물도 열목개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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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바닷길을 볼 수 있는 섬, 소매물도. 썰물 때가 되면 바다가 갈라지면서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신비스러운 길이 열리는 그 섬에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다.

지난달 25일 나는 거제 저구항 매물도여객선터미널서 오전 11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소매물도(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로 향했다. 배로 떠나는 여행길은 바람 부는 대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나부껴서 즐겁고, 뱃길 따라 펼쳐지는 바다 풍경으로 꿈꾸는 듯한 낭만에 젖을 수 있어 행복하다.

배가 지나온 흔적을 하얀 포말로 드러내는 바다 위로 괭이갈매기가 하나둘 나타났다. 몇몇 사람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멋지게 받아먹는 괭이갈매기 모습에 갑자기 내가 신이 났다. 어느새 점점 더 많은 괭이갈매기들이 날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춤추듯 비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괭이갈매기들이 춤추듯 비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괭이갈매기들이 춤추듯 비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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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새 가마우지가 목격된다는 가익도(사진 오른쪽)가 아스라이 보인다.
 바닷새 가마우지가 목격된다는 가익도(사진 오른쪽)가 아스라이 보인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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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물도 당금마을과 대항마을을 거쳐 소매물도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께. 해삼, 멍게 등 아주머니들이 팔고 있는 싱싱한 해산물에 자꾸 눈길이 갔지만, 나는 남매바위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바다를 품은 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600m 정도 걸어갔을까, 남매바위 숫바위가 나왔다. 이 바위는 어릴 적에 헤어져 오누이 사이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진 쌍둥이 남매의 애잔한 사연이 전해지고 있는데, 30m 아래 떨어진 해안가에 암바위가 있다 한다.

햇빛을 한 움큼 쏟아 내다가도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길을 한참 걷다 보니 가익도 전망대에 이르렀다. 가익도는 소매물도 앞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5개 또는 6개로 보여 오륙도라 부르기도 한다.

바닷속으로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바닷새 가마우지 떼가 옹기종기 이곳에 모여 앉아 햇볕에 젖은 깃털을 말리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한다는데 이날은 해무가 끼어 바위섬마저 선명하지 않았다.

   애잔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소매물도 남매바위.
 애잔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소매물도 남매바위.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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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물도관세역사관.
 매물도관세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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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봉(152m) 정상에는 매물도관세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1978년에 해상밀수 단속과 관세국경 수호를 목적으로 레이더 감시서를 설치하였다가 한동안 폐쇄된 곳으로 역사적 현장을 복원하여 그 뜻을 되새기게 하고자 2011년에 관세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신비스럽게 갈라진 바다를 걸어서 낭만적인 등대섬으로

   등대섬에서 내려다본 열목개.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 일컫는 신비로운 길로 너비가 80여m 정도 된다.
 등대섬에서 내려다본 열목개.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 일컫는 신비로운 길로 너비가 80여m 정도 된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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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봉전망대에서부터는 내 머릿속은 오로지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 열리는 바닷길 생각뿐이었다.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 일컫는 신비로운 체험에 대한 기대감, 설렘 등으로 마음이 몹시 들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내려갈수록 점점 더 크게 보이는 등대섬의 전경이 내 마음을 자꾸 흔들어 대어 눈부신 햇빛이 내리붓는 뜨거운 길도 싫지가 않았다.

하지만 바다가 갈라지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데다 마침 배도 출출해서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했다. 매물도라는 이름은 이 섬으로 들어와 살았던 옛사람들이 메밀을 많이 심어서 붙여진 것으로 메밀을 경상도 사투리로 매물이라 불렀다. 배도 부르고 해서 모세의 바닷길이 열리는 열목개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소매물도 열목개로 가는 길에.
 소매물도 열목개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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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등대가 낭만적인 등대섬.
 하얀 등대가 낭만적인 등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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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물 때가 되면 바다가 갈라지면서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열목개를 걸어갈 수 있다.
 썰물 때가 되면 바다가 갈라지면서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열목개를 걸어갈 수 있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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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한번 보고 싶었던 열목개에 드디어 이르렀다. 크고 작은 몽돌들이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너비가 80여m 정도 되는 길이다. 아직 바닷물이 빠지지 않은 데에는 신발을 벗어 들고 건너기도 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지는 축복의 시간이다. 더욱이 사람의 힘으로 만든 다리가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등대섬은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이쁜 섬이었다. 하얀 등대가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바닷길이 열린 열목개를 걸으면서 바라다보는 경치가 참 이쁘다. 소매물도 등대는 1917년 무인 등대로 세워졌는데 1940년에 유인 등대로 전환되었다. 흰색의 원형 등탑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신중현의 '미인' 가사처럼 열목개를 걷는 사람들이 신이 난 모습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내려다보고 싶었다. 

   등대섬에서 바라본 공룡바위.
 등대섬에서 바라본 공룡바위.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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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탑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했다. 소매물도를 마주하니 거대한 공룡 한 마리가 바다로 들어가는 형세를 닮은 멋들어진 공룡바위도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으니 정말이지, 하루라도 여기 이 섬에 머물고 싶었다.

오후 4시 15분에 나가는 마지막 배를 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서둘렀다. 그새 열목개에는 바닷물이 많이 빠져 등대섬으로 갈 때보다 걷기가 훨씬 편안했다. 가익도전망대에서 남매바위 쪽으로 가지 않고 바로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니 1.1km 거리나 단축되었다.

선착장에는 신선한 해산물을 시켜 먹으면서 출항할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나 그때는 아름다운 이 섬에서 친구들과 느긋하게 해산물도 맛보고, 물때 맞춰 한가한 걸음으로 열목개를 오가고, 하얀 등대 아래서 잠깐 졸기도 하면서 게으른 여행을 하고 싶다.


태그:#모세의바닷길, #등대섬, #소매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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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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