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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이웃 나라들의 역사왜곡을 지탄하곤 한다. 일본이나 중국이 역사교과서를 발행할 때마다 근거를 들어 비판하곤 한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 왜곡을 하지 않을까? 우리의 역사 교과서는 얼마나 사실적이며 객관적일까?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왜곡>(반디 펴냄)은 2014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8종의 한국사 교과서들의 역사 왜곡, 그 구체적인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줌으로써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그 폐해를 이야기한다.

책은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부터 왜곡을 짚어 나간다. 그리하여 삼국시대와 고려, 일제강점기를 거쳐 아직도 목격자가 살아있는 6·25 전쟁의 민간인 학살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우리 한국사 교과서들이 왜곡하고 있는 것들을 9장에 걸쳐 다룬다.

8종의 교과서 중 4종이 본문에서<동국통감>의 기록을 근거로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했다.(…)<동국통감>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 '이가 단군이며 나라 이름은 조선이었는데, 바로 요 임금 무진년이었다'라고 쓰여 있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중국의 전설시대 요 임금 때의 무진년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요 임금은 언제 사람인가? 현대 중국의 역사학계는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교과서가 밝히지 못하는 요 임금의 즉위 연대를 한국의 교과서가 분명히 밝힌 것이 된다.(…)중국 인민교육출판사의 교과서는 '기원전 약 2070년, 우 임금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왕조 하나라를 건립했다'고 적었다. 중국 교과서들은 황제, 요 임금, 순 임금 등을 전설의 인물로 간주하며 연대를 말하지 않는다. -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왜곡>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고 배웠다. 아니 이 책에 의하면 지금도 우리의 한국사 교과서들은 이처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고조선이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청동기문화가 기원전 2000년경부터 150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가르친(쳤)다. 그러니 생각을 조금만 돌려보면 고조선 건국연대나 청동기문화 연대 둘 중 하나는 거짓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왜 한 번도 이 둘의 연대 모순을 짚어볼 생각조차 못했을까? 이 단편적인 역사지식이라니!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책표지.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책표지.
ⓒ 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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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을 읽으며 생각이 복잡했다. 당사자인 중국의 역사학계에서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그들의 허무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우리 민족의 첫 국가 성립을 가르치는 현실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우리의 이런 현실을 아는 중국인들은 얼마나 비웃을까?란 생각 때문이다. 솔직히 지난날 이런 역사를 배운 것에 일종의 배신감도 들었다면 지나칠까?

흔히 어떤 사실을 거짓으로 말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꾸며 이야기하는 것 정도를 왜곡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책은 "목적에 따라 여러 사실 중에서 일부 사실만 골라서 말하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특정한 사실만 골라 말하면서 나머지 중요한 사실을 덮어버리는 거짓말은 알아채기가 더 어렵다. 이런 거짓말이 반복되고 덮어버린 사실을 누군가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으며 거짓말은 그럴싸한 진실로 굳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 교과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왜곡의 수단 역시 사실을 말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여러 사실 중에서 특정한 사실만 말하고, 여러 사료 중에서 특정한 사료만 소개 한다. 다른 사실은 모른 체한다. 깜박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라고.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돌아가려는 왕을 저지하던 임유무를 삼별초가 제거했다. 삼별초가 몽골에 항복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교과서들이 삼별초가 몽골과 강화를 맺은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고 서술한 것은 역사 왜곡을 넘어 역사 날조에 해당한다.'

'한국사 교과서들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학살이 있다. 하나는 무자비하고, 야만스럽고, 잔인하게 저지르는 학살로 일본이 조선인을 학살한 경우이다. 둘째는 무자비하지 않고, 야만스럽지 않고, 잔인하지 않은 학살로 한국이 한국인을 학살한 경우이다.' -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에서.


책은 일부 사실은 부풀리고, 불리한 사실은 초점을 흐리는 방법의 왜곡을, 중요한 사실을 외면한 채 필요에 따라 날조하거나, 한 단락에서조차 일본군과 왜군으로 섞어 기술하거나, 위에 인용한 것처럼 일본에 의한 인명 살상은 강도가 높은 단어인 학살로 표현하는 등의 우리 한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왜곡을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1974년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서는 단 1종의 국정교과서만을 사용했다. 국사교과서의 독점 시대가 30년 넘게 이어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1년에 6종  교과서를 거쳐 2014년부터 8종으로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씁쓸하다. 그럼에도 이처럼 역사왜곡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좀 혼란스럽기도 하다. "북한과 우리나라, 즉 한반도에서 청동기문화가 고조선 건국 그 훨씬 전에 성립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관련 유물들이 나왔다. 그러니 현재의 청동기문화 성립시기를 그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사실일까? 이 책이 설득력 있는 것은 어느 시대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는 것, 마땅한 근거들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식에도 맞지 않아 눈에 띄는 왜곡의 사례를 모은 이유는 한국사 교과서들이 국정 교과서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말한다.

어떤 입장이든 무엇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시각의, 최대한 많은 것들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 이 책이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데 좋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김병훈) | 반디출판사 | 2015-12-22 | 13,000원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김병훈 지음, 반디출판사(2015)


태그:#역사교과서 국정화, #한국사 교과서, #고조선건국, #청동기문화,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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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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