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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 도시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종종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그렇다. 오늘(5월 30일) 아침 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새벽이라 해야 할까. 우리 마을 이장님의 마을 방송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오전 5시. 키히야! 이장님 방송이 모닝콜이 될 줄이야.

오늘의 목적지 옹도등대에서 마을 아버지와 형님과 함께 내가 폼을 잡았다. 이날 나들이에서 당연히 내가 막내였다.
▲ 옹도 등대에서 오늘의 목적지 옹도등대에서 마을 아버지와 형님과 함께 내가 폼을 잡았다. 이날 나들이에서 당연히 내가 막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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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 방송이 모닝콜?

"주민 여러분! 오늘 마을 나들이 가는 거 아시쥬. 시간 되면 마을 큰 길로 나와유!"

그랬다. 오늘은 마을나들이 가는 날이다. 내가 이 마을에 이사온 지 4년 째. 해마다 함께한 나들이다. 그런 걸 보면 내가 이사 오기 전에도 해마다 그랬을 듯하다.

오전 7시 50분. 큰 길로 나가니 마을 어르신들은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어르신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1시간에 1대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릴 때도, 항상 먼저 와서 기다리신다.

"난 말이여. 국민핵교 시절에 소풍가는 기분이였어. 어젯밤 설레서 잠을 다 설쳤어, 허허허!"

이장님의 '진담 반 농담 반' 말씀에 마을주민들의 웃음폭탄이 터졌다.   

84세이신 '대장금 할머니'(요리를 잘해 내가 붙여준 별명)로부터 막내까지 모두 21명이다. 물론 그중 막내는 바로 나다. 1년에 한 번 있는 마을 나들이에 모두가 수다가 많아진다. 오늘의 목적지는 서해안 옹도다.

우리 마을 이장님 사모님의 열창이다. 이제 칠순이 다 되신 분이지만, 목소리는 정말 소녀 같으시다.
▲ 이장님 사모님 우리 마을 이장님 사모님의 열창이다. 이제 칠순이 다 되신 분이지만, 목소리는 정말 소녀 같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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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노래방 타임, MC는 나의 몫

커다란 관광버스가 출발한다. 안성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차가 들어서자마자 차 안 분위기가 바뀐다. 드디어 올 게 왔다. 이름하여 '버스 노래방' 타임. 난 이제 안다. 왜 나들이 목적지가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으로 가는 지를. 바로 이 시간을 길게 가지려는 거다.

"엄니도 한번 해보셔유." "형수님은 무슨 곡 하실규." "아부지는 작년에도 그러시더니 또 이 곡 부르시네." "형님은 노래 실력이 줄어드셨어."

이 모든 멘트의 주인공은 나다. 올해도 나는 버스노래방 MC다. 술도 기분 좋게 하고 나니 MC 멘트도 넉살 좋게 술술 나온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역시 주님(?)의 힘은 크시다. 하하하하.

해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건 어머니들이다. 왜냐하면, 1년 내내 가도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를 일이 없으신 분들이다. 아버지나 형님들이야 가끔 노래방도 가시고, 마을회관 노래방에서도 노래를 부르시지만, 어머니와 형수님들은 그러기 쉽지 않다.

"오메! 불렀다 하면 90점 아니면 100점이시네. 역시 우리 마을 물이 좋은 가벼. 가수들만 사시네. 하하하하!"

안성에 살다보면 일년 내내 가도 회를 먹어보기가 쉽지 않다. 이날 어르신들은 회와 매운탕으로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 점심 안성에 살다보면 일년 내내 가도 회를 먹어보기가 쉽지 않다. 이날 어르신들은 회와 매운탕으로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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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너스레 멘트에 버스 좌중들은 순간 웃음바다가 된다. 그런데 집에 와선 알아차린 사실 하나가 있다. 그 버스 노래방에선 점수가 90점 밑으로는 한 번도 나오질 않았다. 어르신들 기분 좋으라고 버스 노래방 기계의 점수는 '칭찬모드'로 상향 조작돼 있었던 게다. 이런 걸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라 하겠지. 하하하하.

기막힌 회맛에 우리는 모두 바다가 된다

신나게 흔들고 놀다보니 벌써 목적지 근처 횟집이다. 안성에선 1년 가도 회를 먹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회 먹을 생각에 '싱글벙글'이시다. 젊은 나도 마찬가지다.

"와! 월요일인데, 횟집은 초만원이네. 이 식당은 대한민국 돈 다 끌어모으는 가벼."

그랬다. 식당 안이 꽉 찼다. 우리 마을 분들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몇 팀이나 왔다. 공통점은 모두 연세들이 있다는 것. 그랬구나. 주말은 젊은이들 나들이 타임이고, 월요일은 노인들 나들이 타임이었구나.

방금 잡은 싱싱한 회를 초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입에서 바다가 살아 움직인다. 향긋한 멍게를 한 입 베어 물면서 우리는 바다가 된다. 거기다가 이슬처럼 임하시는 주님(?)을 한잔 입에 걸쳐주면 '바닷물과 육지물의 오묘한 만남'이 이뤄진다. 싱싱한 회에 이어 그 '회 나머지'로 만든 매운탕은 국물부터 죽인다. 그 생선을 입에 넣으면,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배 갑판 위가 아닌 밑창으로 모인 이유는 단 한가지. 배타고 가는 내내 댄스타임을 가지시려 한 거다. 나도 이 분들과 흔들랴 촬영하랴 바빴다.
▲ 배 댄스타임 배 갑판 위가 아닌 밑창으로 모인 이유는 단 한가지. 배타고 가는 내내 댄스타임을 가지시려 한 거다. 나도 이 분들과 흔들랴 촬영하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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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런치타임은 우리들의 큰 행복이었다. 북적대는 횟집을 뒤로한 채 우리는 목적지를 향했다. 드디어 배 입구다. 가는 섬(옹도)에서 북한이 보인다는 안내원의 말이 떨어지자 우리 마을 '기차화통'(목소리가 커서 내가 붙여준 별명) 형님이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럼. 오늘 우리 북한 가보는 겨. 김정은이 함 만나고 오는 겨. 하하하."

배에 오르니 밑창행, 알고보니 댄스 타임

배에 오른다. 우리 일행 말고도 사람이 많다. 작지 않은 배가 만원이다. 어떤 이들에겐 '마의 월요일'이라고 여겨지지만, 어떤 이들에겐 놀기 좋은 '해피 월요일'인 듯하다.

그런데, 헉!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배 갑판이 아닌 배 밑창으로 향하신다. 왜? 바로 댄스타임을 가지시려고 말이다. 배 밑창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클럽이 준비돼 있다. 배 선장쯤 되는 양반이 신나는 뽕짝메들리로 흥을 돋우니 우리 마을 분들은 이미 무아지경에 오른다.

다른 마을 분들까지 합세한다.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마치 오래 만나 춤 연습한 사람들처럼 호흡을 맞춰가며 주거니 받거니 하신다. 심지어 우리 마을 아버지는 다른 마을 어머니랑, 우리 마을 어머니는 다른 마을 아버지랑 '커플 브루스'까지 추시니, 무도회장이 따로 없다.

앞에 있는 내외분이 이장님 내외분, 뒹; 있는 내외분이 위원장님 내외분이다. 두 내외분이 브루스를 추고 난리시다.
▲ 내외분 앞에 있는 내외분이 이장님 내외분, 뒹; 있는 내외분이 위원장님 내외분이다. 두 내외분이 브루스를 추고 난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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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떠나고 바깥에는 기상천외한 절경들이 펼쳐져도, 그 춤판은 막지 못했다. 나도 1시간 이상을 같이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흔들면서도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절경을 커닝하듯 조금씩 보았다. 그러다 음악이 꺼지니까, 바로 민원이 들어간다.

"뭐여. 음악 틀어유."   

평소 조용하신 우리 마을 엄니 한분이시다. 선장님이 놀라서 그 기계를 조작해 광란의 음악을 털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배에서 한판 야무지게 놀았다. 그런데, '엄니 아부지'들에게 언제 저런 힘들이 있었나. 그저 놀랍다.

어르신들 모두 수다스러운 소년 소녀가 되다

배에서 내려서 꼭대기로 갈 시간이다. 섬 꼭대기에 등대가 있다. 팔순 어머니인 '대장금 할머니'도 나서시니, 안 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상에 오르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 수다들. 이미 그분들은 소년 소녀가 돼 있었다. 정상 가까이서 단체사진도 찍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 종이사진으로 찾아준다는 걸 아는 분들이기에 아주 예쁘게 하고 사진에 찍힌다.

정상을 보고 내려와서 배에 탄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배 밑창행이다. 말할 것도 없이 댄스타임. 가는 내내 나와 어르신들은 또 춤으로 하나가 된다. 그렇게 내려서 버스로 돌아올 때는 또 노래방 타임. 내가 아무리 봐도 울 마을 엄니 아버지들은 슈퍼맨·원더우먼인 듯하다. 젊은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무도 그런 표시를 내지 않으시다니. 모두들 노는 데는 귀재이신 듯하다.

옹도 등대에서 모두 폼을 잡으셨다. 얼굴에 행복을 머금은 채로.
▲ 옹도 등대 옹도 등대에서 모두 폼을 잡으셨다. 얼굴에 행복을 머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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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그 분들의 표정을 봤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소 농사지으며 어떻게 고생하며 사시는 걸 옆에서 지켜본 나이기에, 그 말을 듣는 나도 정말 행복했다.

"아! 오늘 행복혀!"


태그:#흰돌리마을, #더아모의집, #공동체, #마을,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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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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