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당선자 시절 외교특보를 지낸 이충렬씨가 연립정부를 전제로 한 민주정부론을 제기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씨는 이 글에서 "내년에 안철수의 국민의 당과 통합이 어렵다면 연립정부를 전제로 단일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지난해 40여년 간의 한반도 정치를 당대사의 시각으로 조명한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 한반도 삼국지>(레디앙)를 펴낸 바 있다. [편집자말]
4월 말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가 실시한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노무현 39.2%, 박정희 26.9%, 김대중 15%, 박근혜 8%를 기록했다고 한다(이번 조사는 지난달 30일~1일 2일간 전국 만19세 이상 휴대전화가입자 1453명을 대상으로 컴퓨터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 임의걸기(RDD)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6%p다(응답률:7.8%).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합하면 54.2%가 된다. 민주정부를 이끈 두 전직 대통령의 호감도가 단순 과반수를 넘는다는 것은 내년 정권교체와 관련하여 매우 유의미한 참고자료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운명에서 소명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열리는 5.18민중항쟁 전야제 시민난장에서 주먹밥을 직접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문재인, 광주시민들과 함께 주먹밥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열리는 5.18민중항쟁 전야제 시민난장에서 주먹밥을 직접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만년 제1당이었던 새누리당을 122석의 제2당으로 밀어낸 이번 4.13 총선에서 더민주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을 얻어 친야 성향 무소속(이해찬, 홍의락) 당선자를 합치면 범야권이 167석으로 단순 과반수를 넘어선다.

총선 결과 야권의 대표선수로는 많은 잠재 후보가 존재하지만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연 부동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정권교체 전략은 매우 유동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은 호남과 비호남으로 극명하게 나누어진 야권 지지기반의 분열 때문이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선두다툼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세불리해진 친박이 패권을 휘두르는 사이 새누리당의 분당이나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범람하고 있다. 그렇지만 종편의 가십성 기사에 휘둘리기보다 우리는 관점과 분석의 틀에서 중심을 확고히 잡을 필요가 있다.

한국정치의 기본구도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세력과 박정희-전두환-박근혜로 이어지는 근대화세력의 대립을 기본축으로 여전히 짜여 있다. 그런 점에서 직전 대선후보이자 민주화세력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문재인의 행보는 내년 정권교체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로 말미암아 '운명'적으로 정치에 차출된 문재인은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소명'을 가진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섰다.

정계은퇴를 건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호남에서 참패한 반면에 문재인의 정치적 기반이랄 수 있는 부산-경남지역에서 8명 당선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지역주의가 깨졌다. 뿐만 아니라 더민주가 제1당이 되는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호남에서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올 연말 정도면 판명이 날 것이다. 지금부터 문재인은 '뉴 문재인'으로 다시 한번 대권 도전의 대장정에 나설 것이다. 4년 전과 달리 그의 권력 의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리더십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발전했는지 주목할 것이다.

호남과 친노의 분열을 치유할 책임자는 누구?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4일 오전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4일 오전 국민의당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상황판에 당선된 후보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필자는 문재인이 자신의 정치적 소명을 깊이 가다듬기를 권하고 싶다. 5년 단임대통령이라는 제도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심가들의 쟁투전으로 정치가 흘러가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금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반성없이 처절한 계파투쟁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 퇴임 후에도 친박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래서 유승민과 같은 배신자(?)를 무리해서 쳐내는 과정에서 폭망한 것 아닌가?

지금 범야권에서 정권교체는 지고지상의 과제로 되어있다. 맞다. 그러나 부족하다. 5년 단임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적지 않은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보수정부 10년 만에 너무 많이 허물어졌다. 이제는 내년에 내가 대통령하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목표를 세워야 할 때다. 즉 민주세력이 15년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을 확실히 변모시키겠다는 웅대한 포부 말이다.

박정희 세력은 새누리당, 관료주의, 재벌 그리고 50여 년 축적된 기득권 네트워크로 우리 사회를 내용적으로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5년단임으로 가능하겠는가?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을 겪고 우리가 얻은 교훈이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본격화된 호남과 친노의 갈등은 이번에 결국 분당으로 정리되고 말았다. 이 분열을 치유할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이 다름아닌 문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분열을 치유한다면 그는 대권에 성큼 다가설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연립정부론과 민주정부 15년 집권론

이제 더 이상 막판에 여론조사 한판으로 승자가 후보도 먹고 정권도 독식하는 투기판식 단일화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놓고 단일화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치연합을 갖추어야 한다. 그 방법이 연립정부론인 것이다. 성격이 다른 세력이 연립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DJP연합에서 보듯 장단점이 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단일화보다는 더 안정적인 정치구도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통합이 어렵다면 연립정부를 전제로 단일화해야 할 것이다. 정권교체를 절대적으로 바라는 호남의 민심이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두 번째 더 중요한 것이 당내 경쟁자를 죽여야 할 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5년 단임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경쟁자를 속박하거나 탄압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는 서로 죽고 정권마저 뺏기는 것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는 후계정권을 창출하여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다. 민주세력을 한국사회의 주류로 만들고 또 내가 다음 세력을 키워야 하는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내 경쟁자를 싹부터 잘라버려야 하는 적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당정치가 우리보다 나은 점이라면 현직 대통령이 당내 경쟁자나 차기 후계자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당장 내년의 대선후보 경쟁에서부터 제로섬의 적대관계로 보지 않고 야구처럼 타순을 정해서 차례대로 나가는 선수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의 선택 : 대권후보 혹은 킹메이커

야권의 정신적 지주는 누가 뭐래도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지금 두 세력은 분열중이다.

그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세력 즉 친노세력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친노세력이 야권의 실질적인 중심이기 때문이다. 친노가 잘하면 민주세력이 살고, 친노가 잘못하면 민주세력이 고생한다.

문재인은 행복하게도 두 가지 선택을 다 가지고 있다. 스스로 대권후보를 지향할 수도 있고 킹메이커가 될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 문재인이 내년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더민주에서 국민경선을 실시한다면 결과는 보나마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철수와의 본선이다. 이럴 때 4년 전과 달리 연립정부를 매개로 한 단일화로 가야 한다고 본다.

조금 더 유연하게 사고한다면, 만약 안철수를 압도할 수 있는 후보를 문재인의 아름다운 양보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킹메이커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1번 선수 이후에 2번 선수가 되어 3번 선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큰 기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더민주에는 좋은 후보감이 넘쳐난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대구에서 당선된 김부겸, 부산에서 당선된 김영춘,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대표에 이르기까지 기라성 같은 지도자들이 즐비하다.

문재인과 친노가 킹메이커가 되어 어느 지도자를 밀어주는냐에 따라 다양한 선거구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 정치사에 드물었던 이변, 즉 다수 세력이 그것도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는 후보가 양보하고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면 단번에 야권으로의 정권교체 태풍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지도자의 골육상쟁을 지켜본 사람들이, 3당합당하고 DJP연합할 거면 처음부터 둘이 손잡고 차례대로 정권을 잡았으면 오죽 좋았겠냐고 탄식하곤 했다.

문재인 앞에는 정말로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있다. 애초에 아무런 정치적 야심이나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던 만큼 역사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 바란다. 이렇게 선택의 행복을 가진 정치인은 이제까지 없었다.


태그:#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더불어민주당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