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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말했다. 세상의 아빠들은 큰 나무라고.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다. 미루나무든 느티나무든 도토리나무든 아빠 미안, 하고 고개 숙인 다음 살금살금 아빠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해와 달을 따고 구름 위의 비행기도 따서 동전만 짤랑거리는 우리 아빠 호주머니 불룩하게 넣어주고 싶다."(동시 "아빠는 읽지 마세요" 전문).

 

김륭 시인의 24편 동시와 노인경 화가의 47장 그림이 담긴 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문학동네 간)이 나왔다. 김륭 시인이 장유초등학교 3학년 8반인 엄동수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야기 동시다.

 

엄동수의 이야기 시는 재미있다. 어른이 읽으면 "그렇지, 내도 그 어렸을 때는 그랬지"라거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공부 못하고 장난끼 많은 아이 이야기에서는 "이 아이는 도대체 나중에 커서 뭐가 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이 엄동수 이야기는 어른의 시각이 아니다. 시인은 "해와 달이 번갈아 눈 동그랗게 뜨고 내려다보는 하루는 스물 네 시간. 이 가운데 엄동수는 몇 시간이나 행복할까"라는 물음부터 던진다.

 

엄마아빠 말 잘 듣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 잘 듣고, 학원 잘 다니고 하는 아이가 행복할까, 아니면 정 반대 아이가 행복할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엄동수 아빠는 사과장수이고, 엄마는 하늘나라에 사는 모양이다. 엄마가 하늘나라에서도 달에 사니까 동수는 '달에서 온 아이'다.

 

'가파른 골목 맨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동수의 집이지만 '사과 팔러 갔던 아빠가 동수보다 먼저와 불을 환하게 켜 두면 달'처럼 보인단다. 그래도 행복해 하는 아이 '엄동수 너, 달에서 왔구나'라고 한다.

 

이 아이는 '엄똥수'로 불리기도 하고, '반 꼴통'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또 '아침마다 잘난 척하는 교장 선생님 엉덩이에 방귀를 뿔처럼 달아주고 싶대'라는 아이다. 고양이 키우는 김진우라는 친구도 있다. 이런 동수인데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모양이다.

 

"엄똥수 너, 임서진 좋아하지!//3학년 8반 임서진이 나타나면/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의 띠를 두르는/엄동수 마음을 진우가/물방울처럼 꺼내 갔다//임서진이 사는 반달 아파트 꼭대기에/두근두근 엄동수 무지개가 떴다"(동시 "엄동수 무지개" 전문).

 

"갖바치 엄동수와 달팽이 왕국"이란 제목의 긴 이야기 동시도 실려 있다. 시인은 "달팽이 왕국이 있었네. 달팽이 왕국에는 단 한 사람이 살았네. 엄동수가 살았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달팽이 왕국에는 하늘나라에 간 엄동수의 엄마도 그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아빠도 모르는 갖바치 엄동수가 살았네"라 하며 동수 이야기를 해놓았다.

 

"오늘은 일요일, 물이라면 기겁을 하는 고양이처럼/씻기 싫어하는 엄동수가 아빠에게 붙잡혀/목욕탕 가는 날"(동시 "고양이 목욕탕" 일부)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친구랑 싸우기도 한다. 동수는 "(동시 "코피가 터졌다") 진우랑 싸우다가 코피가 터졌다/훌쩍훌쩍 울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선생님에게 아빠에게/들키면 혼날까봐"라며 걱정하다가도 나중에 진우가 도서관에 찾아와 "미안해" 하는 말에 마음이 조금 풀리는 아이다.

 

"독서왕 엄동수"도 재미있다. 동수가 위인전을 읽는데 졸리는 모양이다. 독후감 쓰라고 하는 '오리궁둥이 선생님'을 떠올리며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동수는 "잠도 자지 않고 칭얼대는 아기를 재우듯 위인전 속의 인물들을 먼저 자장자장 꿈나라로 보내"버린다.

 

그런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읽던 동수는 "이제 그만 주무세요"라 한다. "졸려 죽겠지만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국과 싸우고 있는/이순신 장군을 먼저 재우면 정말 큰일"이란다. 그리고 "내 잠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오리궁둥이에게 알리지 마라" 한다.

 

김륭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오늘도 제 머릿속이 궁금하고 세상이 궁금한 엄동수의 마음이 두근두근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면서 아이들한테 선물하고 싶단다.

 

"지구보다 큰 이 상자를 나쁜 꿈에 쫓겨 다니는 아이들에게 드립니다. 신발보다 발을 사고 싶은 아이들에게, 지빠귀 같은 발과 물고기 같은 발을 사서 세상 멀리까지 나가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합니다. 내일모레쯤이면 상자 속에서 머리를 쏘옥, 내밀고 '오늘은 달이 몇 개야?'라며 폴짝폴짝 개구리처럼 뛰어오를 개구쟁이들의 마법을 기다립니다."

 

동시집은 큼직한 판형에 하드커버를 입은 외형이 언뜻 그림책 같기도 하다. 노인경 화가의 풍부한 색채가 돋보인다.


경남 진주 출신인 김륭 시인은 2007년 <강원일보>(동시)와 <문화일보>(시) 신춘문예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88년 불교문학신인상과 2005년 월하지역문학상, 김달진지역문학상, 박재삼사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김 시인은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를 펴냈다.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 김륭 이야기 동시

김륭 시, 노인경 그림, 문학동네어린이(2016)


태그:#김륭 시인, #노인경 화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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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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