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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한인들의 초청으로 13일 간의 유럽 순회에 나선 세월호 유족들. 사진은 유럽 방문 4~5일 차 베를린에서의 모습.
 유럽 한인들의 초청으로 13일 간의 유럽 순회에 나선 세월호 유족들. 사진은 유럽 방문 4~5일 차 베를린에서의 모습.
ⓒ 유경근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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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유로스타를 타고 세월호 유족 두 분과 416연대의 두 분이 영국 런던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는 세월호 유족 유럽 순회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첫 방문지인 독일에서 "당신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것을 알리려고 하는가?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던 독일인의 솔직한 질문에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단지 더 널리 참사를 알리고, 교민들과 현지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 그 이상의 이유, 목표가 그들에게 필요했다. 그것은 물론 국제 연대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연대를 어떻게 구축한단 말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유족 대표단의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다. 마지막 방문지인 파리에서 찾아야 했다. 고뇌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들이 가는 모든 길에 답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세월호 유족 마음 이해... 재난 피해 단체와 만남

서울에서 세계참사피해자국제회의 개최가 합의되고 난 후 모두가 함께 박수치는 장면
 서울에서 세계참사피해자국제회의 개최가 합의되고 난 후 모두가 함께 박수치는 장면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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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10시, 세월호 유족들은 11월 파리 테러의 피해가족들로 구성된 '11.13 박애와 진실', '프랑스 테러참사피해단체연합'(FENVAC, 펜박), 그리고 'SOS Catastrophes:재난긴급구조'를 만났다. 펜박의 사무실에서였다.

펜박은 프랑스 전역에 있는 재난이나 테러피해자단체의 연합으로 70개의 피해자 단체가 결합해 있다. SOS 긴급구조는 펜박에서 지난 2013년 발족시킨 유럽 조직으로 유럽 내에서 발생한 재난과 테러의 국적을 불문한 모든 피해자와 유럽 이외 지역에서 발생한 참사의 유럽인 피해자를 돌보고 진실을 규명하는 역할을 한다.

'박애와 진실'은 펜박의 70개 회원 단체 중 하나다. 엄밀히 보면 3개 단체이지만, 그들은 긴밀하게 서로 얽혀있는 연대와 소통의 유기체다. 특히 펜박과 SOS는 같은 사람(스테판 직껠)이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세월호 유족들은 세월호 침몰 사건을 설명할 필요도, 여기에 온 이유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보도된 대형 해상 참사 세월호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당연히 유족들이 유럽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더 넓은 연대. 오직 그것만이 피해 당사자들이 그들에게 닥쳐온 재난의 쓰나미를 극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필요했다.

그날은 마침 지난 11월 13일 테러가 발발한 지 6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느라 조금 늦은 '박애와 진실'의 오헬리아 질베르씨는 협회가 그동안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들은 올 1월에 협회를 결성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생존자와 부상자, 희생자 가족들이 함께 모인 단체다.

파리시가 협회 사무실과 운영 경비를 제공했다. 단체 결정 이후 매달 법무부, 보건사회부, 그리고 참사피해자지원부 관계자를 만나 회의하며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오직 피해자와 그 가족만 알 수 있는 테러 참사의 진실이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수사와 재판과정에 참여할 권리(partie civile)'를 요구했다.

3월에 대통령을 만났고, 대통령은 관계 비서관에게 그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그들은 자신들이 요구했던 그 권리를 얻었다. 이미 20년 전에 거둔 법적인 승리에 근거 한 일이다.

참사 피해자를 위한 인권 선언은 10월 서울에서

5월 13일, 소르본 대학 강연장 모습
 5월 13일, 소르본 대학 강연장 모습
ⓒ 진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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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들이 그토록 줄기차게 요구하던 조사권과 기소권은 피해자 단체가 직접 수사와 재판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1995년부터 실현되고 있다.

열차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자크 브레송, Jacques Bresson)가 각 참사 피해자 단체들이 고통 속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며 전체 피해자 단체를 한데 엮는 '프랑스테러재난피해전국연합'을 결성한 지 1년 뒤의 일이다. 당시 8개 단체가 모였고, 그들은 곧바로 피해자와 그 가족의 권리 찾기를 위한 법제화 작업에 착수했다.

모든 참사의 피해자는 사건의 진실을 원한다. 그것이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와 그 가족이 고통에 살지 않도록 즉각적인 치유와 보상을 도와야 한다. 사고는 불시에 닥치고, 대부분 피해자 가족들은 움츠러든다. 갑자기 닥친 상실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조차 버겁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펜박은 가장 먼저 그들 옆에서 피해자 단체를 결성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밟아야 할 절차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70개의 피해자 단체가 현재 펜박의 소속 단체이며 펜박은 법무부의 공식 파트너로서 예산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다. 펜박은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상시 존재하는 피해 단체 연합이다.

11월 파리테러 희생자 유족들이 단체를 결성할 때도, 조사와 재판에 참여할 권리를 얻게 될 때도 펜박의 지원이 있었다. 펜박은 유럽 전체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가면서, 다른 나라에는 펜박과 같은 단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펜박이 얻은 참사 피해자의 법적인 권리 또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고에는 국경이 없었고, 피해자들에게는 국적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11월 파리 테러에서도 모두 19개의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은 유럽을 넘어선 더 넓은 국제연대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유럽을 순회 중인 세월호 유족들은 이를 함께 실현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파트너인 것이다.   

펜박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 항공분야에서 항공기 운영과 안전과 사고대책 등에 대한 국제규범을 명시하는 유엔산하의 국제기구 ICAO(국제민간항공기구)가 있듯이 선박 분야에서도 같은 수준의 국제기구, 국제적 규범이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하자 ▲ 전 세계의 테러나, 참사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법적인 권리를 갖도록 하는 만국 공통의 참사피해자 인권선언을 채택하여 각국에 이 기준을 법제화하자 ▲ 전 세계 주요 대형참사 피해자 단체가 한데 모이는 국제회의를 연내에 개최하자.

세월호 유족이 원하던 최상의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진 셈이었다. 그들은 지체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을. 11월 테러 1주년이 되면 박애와 진실이 바쁠 테니, 그 전에. 그리하여 10월이 낙점되었다. 프랑스 측은 세계인권선언이 프랑스에서 발표되었으니, 참사피해자들을 위한 인권선언도 프랑스에서 하면 어떨까 하는 뜻을 비쳤다. 하지만 416연대에서 이것을 '10월에 서울에서 하면 어떻겠는가' 제안하자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찬성했다.

세월호 유족 측은 이번 유럽 순회에서 만나 연대의 단단한 고리를 만든 에스토니아호 참사 피해단체와 영국 힐스버러 참사 피해단체들, 그리고 자주 접촉해온 일본의 지진피해 단체들이 협력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양측은 각자 10월 국제회의 개최를 위하여 10~15개국 정도의 세계 대형참사 피해자들이 모여 함께 전체 참사피해자들의 권리를 도모할 수 있는 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우리가 옳은 길 가고 있다" 느꼈다는 예은 아빠

5월 13일, 소르본 대학 강연장 모습
 5월 13일, 소르본 대학 강연장 모습
ⓒ 진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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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2년 동안, 유족들은 지금까지 모든 참사 피해자 가족이 했던 대로 보상금 받고 사건을 덮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고, 범국민적인 운동이 되도록 이끌어갔다. 사건의 진상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밝혀내야 멀쩡한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수장되는 비극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고, 피해 가족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연합 4.16연대가 만들어지고, 유럽을 순회하는 이 모든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참사 유가족들이 벌이는 최초의 일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의 두려움과 떨림이 언제나 동반했다.

"오늘 펜박을 만나고 나니, 이제 비로소 우리가 가려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니었음을, 너무나 훌륭하게 가야 할 길을 먼저 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 예은이 곁으로 편한 마음으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예은 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이 대목에서 모든 사람이 숙연하게 눈물을 흘렸다. 스테판 직껠 사무총장은 "50년 전에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이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사와 테러 현장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를 위한 인권 선언이 채택되는 것, 그들이 어디에 있건, 어떤 피부색을 가졌건,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대우를 받는 것은 역사적 순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헬리아 질베르 박애와 진실 상임위원은 "당신의 아이들이 부모를 매우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펜박의 모든 상임위원은 100% 참사의 생존자 혹은 피해자 가족이다. 이들 사이엔 피해 당사자들만 공유하는 절대적인 공감대가 두껍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대화는 그 어떤 걸림돌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La vérité ne sera pas noyée

5월 13일 소르본대학 바슐라르 강당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유족 강연
 5월 13일 소르본대학 바슐라르 강당에서 진행 중인 세월호 유족 강연
ⓒ 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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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5시, 소르본느대학의 바슐라르 강당에 마련된 영화 <나쁜 나라> 상영과 세월호 유족 강연에는 4시부터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의 첫날. 짧은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우려했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많은 사람이 결국 들어오지 못하고 강의실 밖에서 기다렸고,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일부 사람들이 자리를 뜨자 비로소 2부 강연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영화 <나쁜 나라>가 상영되는 동안, 곳곳에서 한국인, 프랑스인 할 것 없이 훌쩍이는 소리와 분노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2부 강연회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은 미리 나눠준 가사를 보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La vérité ne sera pas noyée)를 힘 있게 합창하였다. 유족 대표단은 "5개국에 걸친 유럽 방문을 하면서 가장 이루고 싶었던 성과를 비로소 파리에서 이룰 수 있었다"며, 오전에 합의한 10월 한국에서 세계참사피해자단체 국제회의 소식을 알렸다.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2년간 지는 싸움만 해오던 이 엄마와 아빠들이 이제 이기는 싸움을 시작했음을, 이제 함께 진실이 바로 서는 역사를 만들겠다는 박수와 노래가 바슐라르 강당에 울려 퍼졌다.

14일 오전에는 파리 천주교회에서 파리 교민들과 유족들을 위한 간담회 자리가 있었다. 천주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유족들을 지지하는 많은 파리교민들, 그리고 멀리 제네바와 낭트에서 기차를 타고 온 교민과 학생까지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 자리에는 파리한인회장과 임원들도 참석했다. 세월호 사건이 가진 힘과 세월호 유족이 한국 사회에서 일깨운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보편적인 것이었는지를 입증하는 자리였다.

박승렬 416연대 상임위원은 "한국에서 시간이 갈수록 더 뜨겁게 세월호 유족들의 싸움을 응원한다, 함께 진상을 규명해 진리가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뜨거워진다"고 전했다. 유경근 위원장은 "단지 책임자를 벌주고자 하는 원한에서 빚어진 싸움이 아니라, 모든 진실이 밝혀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어 "이 싸움을 통해서도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기회는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화답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말해주는 소책자를 불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유학생, "프랑스 416연대 지부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교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유가족에게 가장 도움되는지"를 묻는 사제 등. 프랑스 한인들은 더 단단하고, 더 넓게 연대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공식일정은 에펠탑에서의 캠페인이었다.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 선 세월호 유족은 쏟아지는 시민들의 질문과 열정적인 관심에 화들짝 놀랐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유족의 싸움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지지를 표했다. 사람들은 계속 노란 현수막 주위로 모여들었다.

유럽 한인들의 초청으로 13일간의 유럽순회에 나선 세월호 유족들. 이들은 진실이 승리하는 세상을 향한 연대의 메시지와 지지를 얻었다.


태그:#세월호 유가족, #파리, #테러 피해자 만남, #프랑스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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