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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1일, 양평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몽양 여운형의 날'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 몽양 여운형의 날 행사 공식 포스터 오는 21일, 양평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몽양 여운형의 날'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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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부영)는 몽양 여운형 선생 탄신 130주년을 맞아, 오는 21일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위치한 경기도 양평군의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몽양 여운형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기념식과 다채로운 축하공연 준비

오전 11시부터 시작될 행사에서는, 황규식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의 사회로 선생의 탄신 기념식이 먼저 치러질 예정이다.

기념식은 20사단 군악대의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의 개회사, 여운형 선생 약력 소개, 유족인 여인영 대구중공업 회장의 인사, 생일 축하 노래와 케익 커팅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자리에는 선생의 탄신을 축하해주기 위해 김선교 양평군수,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 박유철 광복회장 등이 참석하여 축사를 할 예정이다.

1부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선생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공연이 열린다. 이지상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1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인 축하공연에서는 양평청소년예술단, 가수 이지상, 요술당나귀, 임정득 등이 출연하여 무대를 빛낼 예정이다. 공연 말미에는 20사단 군악대의 '독립군가' 연주와 참석자 전원이 함께 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제창으로 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는 '독립운동 체험마당' 열려

한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생가 앞 잔디마당에서는 '독립운동 체험마당' 코너가 운영될 예정이다. 백범김구기념관 등 독립운동 관련 20개 단체가 참여하는 체험마당에서는, 각 기념관별로 '천연 염색', '독립운동가 저금통 만들기', '여운형 휘호 부채 만들기', '한인애국단 선서식 체험' 등 행사 참석자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몽양 여운형의 날' 행사가 열리는 동안 생가 앞 잔디밭에서는 '독립운동 체험마당'이 진행된다.
▲ 독립운동 체험마당 포스터 '몽양 여운형의 날' 행사가 열리는 동안 생가 앞 잔디밭에서는 '독립운동 체험마당'이 진행된다.
ⓒ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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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참석은 별도의 사전 신청 없이 자유롭게 참석이 가능하며, 참석자 전원에게 도시락이 제공된다. 자세한 문의는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031-772-2411)으로 전화 문의하거나, 기념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몽양 여운형 선생은...

몽양 여운형 선생은 1886년 5월 25일(음력 4월 22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배재학당, 홍화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히며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이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1908년에는 기호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고, 1910년 강릉의 초당의숙에서 교육에 매진하는 등 일찌감치 민족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4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선생은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총무로 활동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 후에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의 대표 자격으로 김규식을 파견하였다. 또한 장덕수를 일본에 파견하여 2·8 독립선언을 촉발케하는 등 3·1운동 준비에도 박차를 가했다.

3·1운동 직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선생은 외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그해 11월에는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방문하여 일본 정부의 고위 인사들을 상대로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여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1929년 상하이에서 일경에 체포된 선생은, 국내로 강제송환되어 1932년 가석방 될 때까지 4년 동안 복역한다.

2014년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촬영한 선생의 사진
▲ 몽양 여운형 선생 2014년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촬영한 선생의 사진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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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 후인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였으나,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사장직에서 물러나고, 조선중앙일보도 폐간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패망을 확신한 선생은 1944년 8월,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결성하여 조국독립에 대비하였고,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부터 치안권을 이양받고,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좌우합작과 남북합작을 통한 통일운동에 매진하던 중,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의 흉탄에 맞아 향년 62세의 일기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태그:#여운형, #몽양, #독립운동,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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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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