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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프로레슬링 선수 겸 격투기 해설자 김남훈.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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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고,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대중 강연을 하기도 한다. 링 위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이크웍'이라고 해서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거나 관중들을 자극해 야유를 일부러 유도하기도 한다. 난 악역 레슬러니까.

그래서 목이 쉴 때가 많고, 건조할 때면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을 때도 많았다.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는 내게 물을 자주 마시고 집 안이 건조해지지 않게 하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평택 본가에 갔을 때 구석에서 방치돼 있던 가습기를 구로동 내 아파트로 가져왔고 그때부터 열심히 사용했다.

'솨~' 소리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써서 괜찮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솨~' 소리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써서 괜찮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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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는 물을 담아두는 수조 탱크가 있고 여기서 소량의 물이 주기적으로 진동자 쪽으로 흘러내려오면 기화시켜서 부로 뿜어내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다. 자주 청소하면 별문제는 없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럴 틈이 없었고 조금만 방심하면 얼룩덜룩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 여간 마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TV 정보성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습기 살균제를 알게 됐다. 인근 마트에서 구입해 정말 열심히 사용했다. 가습기를 분해하다시피 펼쳐 놓고 수돗물과 헌 칫솔로 싹싹 닦은 다음 '옥시싹싹'을 묻혀서 한 번 더 닦았다. 원래 물탱크에 넣는 것이지만 살균효과가 있다고 하니까 아예 일부러 청소할 때 사용한 것이다. 물론 원래 사용법대로도 사용했다. 잠결에 눈을 떠 머리맡에 놓여진 가습기에서 '쏴~'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살균제를 썼기 때문에 몸에 더 좋겠지'라면서 약간 우쭐해진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옥시싹싹과 가슴 통증... 그리고 대학 강연과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4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들의 처벌을 촉구하며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상품의 불매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4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들의 처벌을 촉구하며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상품의 불매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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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부터였다. 가습기 덕분인지 목이 쉬거나 통증이 발생하는 빈도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기침이 한 번 나오면 끊이지 않았고 가슴 쪽엔 아주 기분 나쁜 뻐근함이 느껴졌다. 동네 병원을 비롯해 혹시 심장 문제인가 싶어 대학병원에서 40만 원 정도를 내고 이것저것 검사도 받았지만 별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 시작하면 며칠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증세가 나타나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길에 내린 적도 있었고, 헬멧을 쓰고 모터사이클을 탈 때 고통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이듬해 구로동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삿짐 센터 트럭에서 내려놓다가 가습기를 땅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일산 집이 먼지가 적고 환기도 잘 되는 곳이라 새로 가습기를 구매하지 않았고, 어느새인가 기분 나쁜 통증과 기침도 없어졌다. 물론 옥시싹싹과 내 고통과의 확실한 인과관계를 확정짓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사한 이후로, 가습기를 쓰지 않은 이후로, 즉 옥시싹싹의 사용을 중단한 이후로 내 통증은 없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살짝 이야기한 것처럼 난 모터사이클을 좋아한다. 이 바퀴 두 개 달린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도 전국일주, 특히 제주도 모터사이클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모터사이클 제주도 여행'으로 검색하면 인천에서 출발하는 카페리 관련 정보가 나온다. 승객 요금은 플로어룸이 6만9500원, 바이크는 배기량에 따라 스쿠터는 3만9700원 정도였다.

마침 제주도 모 대학에서 강연요청이 왔고 예전부터 꿈꿔왔던 제주도 모터사이클 일주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 측과 이야기하다 보니 네 개의 일정이 나왔고 이리저리 맞추다보니 애초에 생각했던 2014년 4월 셋째 주는 일정이 촉박해 5월로 넘기기로 했다. 내가 원했던 대로 조율했더라면 2014년 4월 15일 인천에서 출발하는 세월호에 탑승할 뻔했다. 4월 16일 진도 앞바다 위에 있을 뻔했다.

2300원을 내고 옥시싹싹을 구입했다. 15만1900원을 내고 세월호 카페리에 탑승하려고 했다. 난 옥시와 청해진 해운이라는 기업을 믿었고, 식약청과 국토교통부라는 기관을 믿었다. 대한민국 정부를 믿었다. 난 그저 가습기가 부서지고 강연 일정이 어긋난 행운(당시에는 불운이었지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살짝 비켜 나갈 수 있었다.

최소한 '조용히 가만있으라'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것

지난 4월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 세월호참사정부합동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 시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해 열린 세월호참사 2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한 시민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 세월호참사정부합동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 시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해 열린 세월호참사 2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한 시민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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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내가 살던 시골에는 '미친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물로 떡진 머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쓰레기를 뒤지는 거지 차림의 젊은 여성, 다리 밑에 누군가 버린 침대 매트리스를 갖다 놓고 그 위에 먹고 자고 하던 중년 아저씨, 비가 오면 우어우어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뛰어다니던 젊은 청년….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에 돈 벌러 갔다가 성폭행을 당했고,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잃었고, 건달들에게 얻어맞아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미친 듯이 일해야만 살아남고 또 살아남은 이들에겐 꽤나 두둑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던 시절에, 몹쓸 일을 당한 사람들을 개인의 주의 부족과 불행으로 치부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으로 봤을 때 올바르고 정당한 문제해결이었고, 피해자들은 미치는 것으로 화답했을 것이다.

만약 가습기 살균제를 계속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2014년 4월 15일 세월호에 탑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난 살아남았을까, 내 가족은 미쳤을까. '드디어 세월호 타고 출발'이라고 배 위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페이스북 포스팅엔 어떤 댓글이 달렸을까.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뭘 더 어떻게 하느냐고,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고, 2년이나 지났는데 그만하라고. 어떤 이들이 말한다. 원시 자연 상태가 아닌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문명인의 교양이라는 것은 정보·지식을 많이 알고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다.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대해서 공감을 하거나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귀 기울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조용히 가만있으라'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것이 그 기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가방에 오픈마켓을 통해 번들로 여러 개 구매했던 옥시 손세정제 데톨을 담아서 동네 인근 공공 화장실 세면대에 두고 돌아왔다. 이제 내 남은 평생 저 회사 제품을 구매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침 그 가방에는 작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남훈 시민기자는 현 프로레슬러 챔피언이자 UFC 해설위원입니다.



태그:#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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