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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에 함께 한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며 아이들을 힘껏 응원한다.
▲ 운동회의 꽃 '계주' 운동회에 함께 한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며 아이들을 힘껏 응원한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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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도 선수로 참가했다.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 학부모 장애물 달리기 엄마들도 선수로 참가했다.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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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오메.. 워째쓰까이...."

운동회의 꽃, 전교생 계주. 앞서 달리던 아이가 신발이 벗겨져 주춤하자, 응원하던 어르신들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학부모들은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며 아이를 격려한다. 머뭇거림도 잠시, 전력 질주로 결승선을 통과한 아이에게 어르신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진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묘량중앙초등학교 운동회. 이 학교 운동회는 백발의 어르신부터 갓난아이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마을축제다. 지난 4일 97세 최고령 할머니부터 유치원생 누나를 응원나온 8개월 아기까지 200여 명의 학부모와 주민들이 함께 하는 대동 잔치, '묘량가족한마당'이 열렸다.

일찍부터 나들이 옷으로 한껏 멋을 낸 어르신들이 속속 운동장에 도착했다. 궂은 날씨 걱정에 가슴 졸였던 선생님들은 새벽부터 모래를 퍼나르며 운동장 땅을 정리하고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마을 잔치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회도 팔을 걷어붙였다.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하고 며칠 전부터 간식과 식사, 경품 선물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이날을 준비해왔다.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운동회

마을 어르신들도 축제의 주인공이다. 응원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직접 나섰다.
▲ 축제를 즐기는 어르신들 마을 어르신들도 축제의 주인공이다. 응원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직접 나섰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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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았으면 마을회관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을텐데 이렇게 나와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는 이웅신 할아버지(87)는 "비록 다리가 아파서 잘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응원하고 박수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장롱 속 고이 모셔두었던 꽃무늬 재킷을 꺼내입고 왔다는 정순자 할머니(85)는 "옛날 생각이 난다"며 감격스러워한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는 이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꽉 찰 정도로 북적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학교가 살아나고 아이들도 많아지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니 이렇게 좋을 수 없다"고 했다.

6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이은경씨(45)는 "실제로 마을에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평생 일만 하고 백발이 다 되도록 마을을 한 번도 못 벗어난 분도 계시다"며 "어르신들께는 첫 나들이가 마지막 나들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르신의 마지막 나들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 과정에서부터 테이블 위치, 음식 메뉴 하나까지도 허투루 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이씨는 "이렇게 정성껏 준비하고 만드는 운동회 자체가 우리 아이들이 어르신을 존대하고 더불어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경기에 참가하다가도, 마을 어르신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편의를 챙기는 등 1인 다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녀회도 나섰다. 마을 어르신들을 직접 인솔하고 운동회에 온 신천리 이만우 부녀회장은 "학교가 살아나면서 마을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운동회가 마을축제로 치러져 행복하다"며 "이를 계기로 젊은이들이 더 많이 들어와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운동회 한켠에서 점심 식사 준비에 한창인 월암리 김연자 부녀회장도 "마을 잔치를 벌이는데 이 정도 봉사는 당연하다. 학교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살아나 다 같이 모여 노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묘량가족한마당의 하이라이트. 묘량중앙초등학교의 운동회는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와 지역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마을축제다.
▲ 대동 기차놀이 묘량가족한마당의 하이라이트. 묘량중앙초등학교의 운동회는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와 지역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마을축제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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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학부모들, 교사들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동 기차놀이가 시작됐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운동장을 돌던 기차가 마주치면 서로의 손바닥을 맞부딪치고 함성을 지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진 기차는 어르신들과 마을 주민들이 앉아 있는 객석으로 향한다.

운동회 내내 아낌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내준 어르신들의 한 명 한 명의 손을 일일이 잡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넨다. 운동장과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모두가 하나되는 순간, 학교와 지역이 담장을 넘어 손 맞잡았던 묘량중앙초등학교의 지난날이 오버랩된다.

폐교 위기 딛고 오늘까지, 학교를 지켜낸 주민들

승패를 떠나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운동회
▲ 줄다리기 승패를 떠나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운동회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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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맞추듯 의견을 맞추며 마을속에서 학교를 키워 나간다.
▲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발을 맞추듯 의견을 맞추며 마을속에서 학교를 키워 나간다.
ⓒ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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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만 해도 묘량중앙초등학교는 고작 12명의 학생만 남은 폐교 대상 학교였다. 이 날 운동회에 모인 학부모와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폐교 될까 조마조마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만큼 학교의 위기는 지역의 위기였다. 농촌복지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귀농한 마을의 젊은 일꾼들인 '여민동락공동체'가 먼저 나섰다. 학교와 교육청, 지역사회를 누비며 폐교를 막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했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진다'는 호소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도시에서 이 학교로 전학을 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폐교 위기를 넘기고 지금처럼 6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기사회생한 데는 학부모들의 노력과 참여가 결정적이었다. 초창기에는 학부모들이 아침 시간을 쪼개 통학 차량 봉사를 했지만, 지금은 번듯한 통학버스가 지원되어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진다. 다른 학교에서 만든 음식을 실어나르며 아이들 밥을 먹이던 것도 옛말이 됐다. 이제는 조리실을 갖추고 자체적으로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임옥경 학부모회 회장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힘이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마을 속에서 행복한 작은 학교 만들기라는 취지를 지속적으로 살려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 회장은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존귀하게 대하는 인간적이고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며 "시골 마을의 학교지만 교육의 질 면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묘량중앙초등학교는 폐교 위기를 벗어난 2011년, 전남교육청 평가 영광군 내 최우수 학교로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는 전라남도에서 추진하는 혁신학교 모델인 '무지개 학교' 3년차를 보내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외형만 확대된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적인 측면에서 거둔 성과라 더 의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작은 학교, '마을교육공동체'를 향한 도약

이 학교 윤건 교장은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의 열정과 참여의지가 높아 학교의 발전 방향을 함께 토론하고 협의한다"며 "학교-학부모-지역이 협력하고 단결하여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것이 우리 학교의 발전 동력이다"라고 말했다.

윤 교장은 "폐교 위기도 벗어났고 이제는 학교 교육의 질이 학부모와 지역주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시기"라며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학교로 발전시키고 싶다. 교육의 질이 전국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교육과정의 내실화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마을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 교육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배움을 전수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 내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교사가 마중물의 역할을 할 때 '마을교육공동체'는 피어난다. 학교 살리기에 이어 학교와 지역이 상생하는 교육공동체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묘량중앙초등학교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이에 대해 김채이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들어 선생님들도 많이 바뀌고 새로운 학부모님들도 오시고 해서 점차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행복한 작은 학교로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려면 사람이 바뀌더라도 취지와 가치를 이어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아이들을 마을에서 함께 키운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학교의 큰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마을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을 주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태그:#묘량중앙초등학교, #여민동락공동체, #무지개학교, #마을교육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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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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