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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여성에게 엄마노릇은 이중부담과 심리적 고통이다
 맞벌이 여성에게 엄마노릇은 이중부담과 심리적 고통이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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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노릇'을 둘러싼 시선들

최근 보건복지부는 '아이 따로, 엄마 따로'인 산후조리원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모자동실을 운영하도록 법을 개정할 예정이라 밝혔다. 현행 모자보건법 산후조리업자 준수사항에 '모자동실 운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고, 앞으로 3년마다 실시할 조리원 평가지표에도 모자동실 항목을 넣기로 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증가하고 있는 조리원 감염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설명한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법 개정이 '산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이의 의사 및 이익에 반하는' 현재 산후조리원 문화를 개선하고 모아의 애착형성을 증진시켜줄 방안이라 평가한다. 사회적으로도 모자동실의 필요성을 긍정하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사자인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랭하다. '모자동실 여부는 산모 스스로 건강상태 등을 봐서 판단할 문제이다', '직장에서 육아휴직은 현실적으로 꿈도 못 꾼다. 짧은 출산휴가 기간 내내 초보엄마는 아이와 단 둘이 씨름해야 하는데, 고작 출산 직후 2주간도 못 봐주나', '법안을 만든 사람들이 모두 남자들인가 보다' 해당 이슈에 대해 인터넷 주부 커뮤니티에는 냉소적이고 분노 어린 반응이 가득하다.

아직 입법과정이 본격화되기도 전이지만, 이런 엇갈린 반응들은 '엄마노릇'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이질적인 시선들을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모유수유율 증가, 애착 증진 등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으니 모자동실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엄마란 자고로 아이를 최선을 다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좋다는 건 다 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뭔가 억울한 심정이 든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고, 내 아이를 위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여성 자신의 몸'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에서 영유아 보건과 효율적 건강관리를 위해 '24시간 대기조'와 '인간 도시락'으로 사용되는 게 답답할 뿐이다. 희생과 헌신이 엄마에게 '당연한 행복'만은 아니라는 걸 몰라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 사회로 인해 엄마노릇은 더욱 숨이 막히는 고통이 될 수 있다. 엄마 노릇은 왜 여성들에게 고통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요람에서 무덤까지 '엄마', 어디에서 비롯됐나?

샤론 헤이즈는 현대 미국의 지배적인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Ideology of Intensive Motherhood)'라 정의한 바 있다. 이는 "자녀 중심적이고,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며, 감정 소모적이고, 노동 집약적이며, 재정 부담을 감수하는" 엄마노릇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 한국 엄마노릇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①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자녀 중심적이고 감정 소모적인'인 엄마노릇은 근대 이후 가족-사회의 공사분리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가정과 일터가 분리된 근대 이후 "여성의 위치는 가정이며 가정에서 여성의 임무는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이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②이라는 사회통념이 이어져오고 있다. 가족은 냉혹하고 삭막한 공적세계와 분리된 친밀하고 따뜻한 사적 영역으로 여겨졌으며,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재생산의 책임자로 여겨졌다. 그 중에서도 어린 자녀를 돌보는 일은 특히 중요한 여성의 임무였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현재까지 '남성은 일, 여성은 가족'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당연한 변화로 여기면서, 엄마노릇을 비롯한 가족의 일과 책임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족 책임을 여성의 일로 돌리는 가부장적 의식은 현재까지도 완고히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특히 맞벌이 여성에게 심각한 이중부담과 심리적 고통을 부과하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 사회의 엄마노릇은 자녀를 위해 무거운 경제적인 부담까지도 기꺼이 짊어지는 '소비적 모성'의 특징을 지닌다. 자녀를 위한 소비와 지출은 '과학적 모성' 하에서 정당화되고 더욱 강화된다. 즉, 전문가들에 의해 생산된 현대 과학 지식과 정보가 기업을 거치며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로 재탄생되고, 엄마는 끊임없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 자녀의 발달단계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주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전문가의 지도에 따르고, 재정 부담을 감수'하고자 하는 노력이야 말로 '자녀 중심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좋은' 엄마노릇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조건들 아래에서 더욱 강화된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금수저-은수저-흙수저의 신분 사회에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서의 낙오는 아이의 먼 미래까지 흙수저의 삶으로 결정됨을 의미한다. 계급이동의 문은 굳게 닫혀가고, 패배자와 낙오자를 위한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나 존엄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제도마저 부재한 사회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엄마는 경쟁에서의 승리, 인생에서의 성공을 계획하는 '자녀 삶의 기획자'로서의 임무까지 부여받는다. 게다가 건강,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부족하고 보호를 위한 법·제도가 취약한 한국의 현실 속에서 엄마는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도 해야한다.

이러한 엄마노릇은 임신과 출산, 초기 육아기에서부터 나타난다. 산후조리원은,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로 인해 초기육아를 가까이 지켜본 일 없이 엄마가 된 현대 한국 여성들에게 엄마노릇의 첫 배움터가 된다. 상품화된 산후조리와 신생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후조리원은 이제 과학적 모성과 소비적 모성으로 새내기 엄마들을 처음으로 길잡이하는 교육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유수유, 베이비 마사지, 신생아가 있는 집안의 위생관리, 발달단계와 단계에 맞는 적절한 자극에 대한 모든 교육과 프로그램들. 이는 다양한 육아상품과 그 소비를 길잡이해주는 정보의 소비 및 재소비로 이어진다. "엄마들이 잘 사요. … 이 오일이 아이한테 어떻게 좋고, 왜 아무 젖병이나 쓰면 안 되고 이렇게 생긴 젖병을 써야 되고, 그러면 엄마들이 홀까닥 하는 거죠. … 남들이 다 쓴다고 하는데 나만 안 쓰면 불안하니까. … 첫째 낳고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상술인 것 같아요"라고 엄마들은 말한다.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엄마노릇이 펼쳐지는 상품과 서비스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진다. 만삭사진에서부터 시작해서 출산, 50일, 100일, 돌잔치로 이어지는 성장단계별 의례는 성장앨범이나 기억을 위한 수많은 이벤트들로 채워진다. 돌잔치는 이제 외식, 이벤트, 패션, 영상, 인쇄, 하다못해 이 모두를 대행하는 에이전시까지 다양한 산업의 합작품이 되었다. 이윤의 논리로 여유 한 치 없이 재단된 도시공간에서 엄마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쇼핑몰로, 백화점 문화센터로, 키즈 카페로 향한다. '돈으로 산 놀이 공간'에서 엄마와 아이는 쉽게 소비의 세계로 이끌린다.

조기교육 연령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이미 36개월 미만 영아의 41.9%, 유아의 86.8%가 보육기관, 유아교육기관 밖에서 사교육을 받는다.③ 특별활동과 사설학원, 학습지나 방문과외 프로그램, 다양한 교구와 전집, 체험활동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가 자라도 형태만 바뀐 채로 반복된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강화된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들과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자녀를 위한 무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의 압박' 아래에서, 과학적 모성과 결합한 소비적 모성의 실천을 요구받는 엄마가 과연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자녀의 안전·건강·학업성취·성공·행복을 홀로 책임지는 그리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 엄마 밑에서 과연 아이는 행복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다. 전방위적으로 여성을 포위하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와 강도 높은 모성 이데올로기,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이상적인 어머니 규범'으로부터 엄마를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육아의 책임은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의 책임이기도 해야 한다. 엄마노릇은 부모노릇으로 가족 내에서 확장되어야 한다. 육아에 대한 사회의 책임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보육복지의 확충마저 '전업주부의 종말'로 여기며 돌봄 지원을 받는 엄마들을 여성혐오의 새로운 표적으로 삼는 사회적 인식은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엄마와 아이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① Sharon Hays,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Motherhood, Yale University Press, 1996. 김보성·김향수·안미선, 『엄마의 탄생』, 오월의 봄, 2013, 26쪽에서 재인용.
② 이연정, 「여성의 시각에서 본 모성론」, 『모성의 담론과 현실: 어머니의 성·삶·정체성』, 나남, 2000. 김보성 외, 같은 책 25쪽에서 재인용. 
③ 김보성 외, 같은 책 194쪽에서 재인용.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보성님은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육아, #돌봄,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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