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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이 난리다. 지난 19일 JTBC가 어버이연합과 전경련의 수상한 거래에 대해 단독보도한 이후 이와 관련된 제보 및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 중에는 청와대 행정관이 어버이연합에게 직접 시위를 요청했다는, 아주 상세하고 충격적인 주장도 포함되어 있는데, 청와대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권도 이와 관련하여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비록 새누리당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고 있지만, 야3당은 지금 당장 국정조사까지 벌여야 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야권이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여소야대 정국이기 때문이다.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어버이연합 게이트' 그러나 국민으로서 정작 이 사태는 새삼스럽기만 하다. 각종 시위에 어버이연합이 등장할 때마다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의 배경으로 정부여당을 의심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이 매번 소위 알박기 시위를 할 수 있으며, 공권력이 그들의 폭력시위를 그대로 방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폭력성이 도를 넘은 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이와 관련하여 여러 언론들은 정부와 어버이연합 간의 수상한 관계에 대해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전경련의 돈이 유령회사를 통해 어버이연합에 흘러들어가고, 그 돈으로 탈북자들을 동원하여 시위를 했다는 이번 보도만큼 상세하지는 않았지만, 어버이연합이 늘 자신의 배경에 대해 과시하고, 일당을 주고 사람을 동원하여 시위를 했다는 증언은 그 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따라서 현재 이슈화 되고 있는 어버이연합 문제는 이번 총선이 여소야대로 끝났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총선 패배에 따라 여권 내부가 분열되고 있기에 나타난 결과이며, 청와대의 레임덕으로 인해 권력기관들이 예전과 같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총선 전이라면 과연 어느 언론이 어버이연합의 자금을 쉬이 쫓을 것이며, 또 쫓는다 한들 이번만큼 관련된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겠는가. 현재 정부여당은 한낱 어버이연합의 사무국장마저 관리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다.

어쩌면 전경련이 이 모든 의혹에도 끝까지 침묵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여권 내부의 혼선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심증만 있었던 사건들의 물증이 드러나면서 청와대는 현재 어느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 2만 원 때문에?

지시는 청와대에서 받고, 자금은 전경련으로 받은 뒤 시위에 참가하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물론 아직까지는 그 모든 것이 의혹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슴 안타까운 부분은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이었다.

2만 원. 이는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다. 혹자들은 몇 시간 별 일 없이 길거리에서 구호 좀 외치고 받기에는 그것이 너무 많은 돈이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실제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수고는 상상 이상이다.

어버이연합, 탈북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어버이연합, 탈북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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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먹거나 쉬지도 못한 채 언론의 카메라를 따라 계속해서 험한 표정을 짓고 때론 막말을 질러대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대개가 나이 많은 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피켓을 들고 목의 핏줄까지 세워가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젊은이들도 계속해서 할 수 없을 만큼의 노동 강도다.

게다가 문제는 자발성이다. 소위 진보단체들이 주최하는 시위에는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의견을 표출하는 만큼 발걸음이 가벼운데 반해, 어버이연합의 시위는 많은 이들이 일당을 받고 동원되는 것으로 추측되는 만큼 우울하고 어둡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지만 돈 때문에 억지로 참여해서 소수의 입장으로 다수를 상대로 끔찍한 막말을 질러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서글퍼졌다. 혹여나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돈 2만 원 때문에 나왔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어버이연합 측은 계속 언론을 통해 그 돈이 교통비 명목이라며 아무것도 아닌양 이야기 하지만,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최고인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게 2만 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것은 하루 세 끼에 반주까지 곁들일 수 있는 금액으로,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 다녀도 쉽게 만질 수 없는 돈이다. 그러니 노인에 대한 복지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이 사회에서 노인들이 그 2만 원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할 수밖에.

물론 어버이연합의 간부들 말처럼 그들이 마냥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기 때문에 나왔다면, 그것도 신념인 만큼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시위에 나온 거라면 너무도 잔인한 풍경이었다.

임기 초 대통령은 어르신들께 거듭 사과하며 노인연금에 대한 공약을 파기했는데, 그렇게 아껴진 비용이 정치적 색깔을 띠고 정부여당의 구미에 맞게 선별적으로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노인들이 지금보다 제대로 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굳이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버이연합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생계를 담보로 한 동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탈북자 동원 집회' 의혹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억대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사옥 앞에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탈북자 동원 집회' 의혹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억대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사옥 앞에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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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원에 기꺼이 거리로 나오는 어버이들의 모습이 서글펐다면, 반대로 그들을 돈 2만 원에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에 대해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어버이연합 동원에 전경련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경련이 어떤 조직인가.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들이 모두 모여 있는 가장 부유한 단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2만 원에 사람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들이 그만큼 사람이 소중한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전경련은 억울할 수도 있다. 만약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면 누가 전경련의 자금을 이용하자고 했는지, 누가 동원에 필요한 금액을 정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경련의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쨌든 전경련으로부터 돈이 나간 이상, 그들은 정치에 깊숙이 발을 담근 것이기 때문이다.

MB정부 때부터 강화된 정경유착을 생각해보자. MB는 계속되는 국가재정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법인세를 인하시켜 대기업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전경련의 요구라고 할 수 있는 노동개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펼쳤다.

그래, 그 어떤 대통령이 입법부를 상대로 거리에서 사인 캠페인을 열고, 대기업 일반 직원들에게 자신의 해고가 더욱 쉽게 하는 법에 찬성하도록 사인하라고 하는가.

이는 결국 그만큼 전경련이 우리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또 그만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던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전경련은 그만큼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져야 한다.

현재 어버이연합 사태는 계속 진행 중이다. 여권 내부가 정비를 하지 못하고, 미래 권력의 가능성이 요동치는 이상 이 사태는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디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가 불순한 의도로 국민을 동원할 수 없게 만들기를 바라며, 이번 사건의 진위도 명명백백 밝혀주길 바란다.


태그:#어버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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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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