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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지난 7일) 오후 전화 한통화가 왔다. 울 마을 '기차화통(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내가 붙인 별명) 형님' 전화다. 이 형님 전화는 둘 중에 하나다. 술 한 잔 하자거나, 일 좀 하자거나. 뭘까?

"동생 말이여, 내일 시간 있어?"
"뭔 일이신규?"
"내일 일 좀 같이 혀."

"내일 시간 있느냐"라는 말에 벌써 감 잡았다. 술 한잔 같이 하자는 이야기는 '당일치기'고, 일 좀 같이 하자는 건 '내일치기'라는 걸 이미 나는 습득했다.

지금은 우리 마을 분들이 모여서 모판을 내는 중이다. 해마다 모판내기는 마을 분들이 모여서 한다.
▲ 모판내기 중 지금은 우리 마을 분들이 모여서 모판을 내는 중이다. 해마다 모판내기는 마을 분들이 모여서 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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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오늘(8일) 일의 내용은 '모판 내기'다. 지난해에도 함께 일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침 6시 50분에 한 차례 전화가 또 온다. 전날 예약(?)해뒀으니 맘 놓고 형님이 전화하신다. "빨랑 와서 아침 밥 먹으라"라는 말은 "빨랑 와서 일 준비하자"라는 맛이렷다.

마을 분들이 하나둘 모인다. 윗집 스마일 엄니도, 윗집 오형님도, 아랫집 한옥아주머니도, 옆집 메가폰 형님 내외도, 이집 주인 대장금 엄니도, 갓 결혼한 20대 청년까지. 웬만한 마을 사람은 다 모였다.

이미 놓아진 모판들 앞으로 볍씨 파종 기계가 세팅된다. 손으로 돌리는 기계는 언제나 기차화통형님 차지다. 다른 분들은 나오는 모판 위에 부족한 볍씨를 더 뿌리고, 흙을 뿌리는 역할을 한다. 다 채워진 볍씨는 이미 대기한 경운기에 차곡차곡 쌓는다. 이맘때면, 해마다 하는 일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잘 찾아서 한다. 나는 작년과 같이 모판 옆에서 모판을 계속 공급하는 역할이다.

"내년부터는 이맘때 되면 형님하고 미리 싸울까벼."
"왜 그랴?"
"그러면 서먹서먹해서 나 안 부르것쟈?"
"그려, 저 동생이 일 안할라고 머리를 쓰는구만. 하하하하."

지금은 전반전 모판내기를 끝내고 참 먹는 중이다. 울마을 오형님과 메가폰 형님이시다. 서서 먹어도 꿀맛이다.
▲ 참 먹는 중 지금은 전반전 모판내기를 끝내고 참 먹는 중이다. 울마을 오형님과 메가폰 형님이시다. 서서 먹어도 꿀맛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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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형님과 기차화통 형님이 농담을 주고받자, 주변사람들은 "그런 방법도 있었네. 나도 써 묵어야것다"라면서 웃음보가 터졌다. 여럿이서 달라붙어 일을 하니 일이 '일사천리'다. 300개가 넘는 모판에 볍씨가 다 채워지고, 경운기에 하나 가득이다.

일단 모판 채우기는 끝났으니, 참 타임이다. 팔순이 되신 대장금 엄니가 이날을 위해 읍내에 가서 벌써 빵과 음료수를 준비해두셨다. 술을 좋아하는 이를 위해선 소주와 안주를 대령하신다. 평생에 수발을 든 솜씨라, 척하면 척이시다.

편하게 앉아서 먹는 것이 아닌 서서 먹는 참인데도, 꿀맛이다. 힘을 합해 일을 끝내고 함께 참을 먹는 맛이라니. 먹어 본 사람만 안다. 먹을 때는 사람들이 더 유쾌해지는 듯하다. 말 수도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진다.

사실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말하자면, 전반전이 끝난 거다. 사실 후반전이 진짜 일이다. 후반전 하러 모두 논으로 출동이다. 경운기에 실린 모판과 트랙터, 그리고 삽과 비닐, 철대, 못줄 등을 싣고서 말이다. 후반전은 기차화통 형님네 논에서다.

처음에 마을 트랙터가 논의 일정부분을 갈아엎는다. 갈아엎은 부분위로 못줄을 띄운다. 경운기에 실린 모판을 한 줄에 3개씩, 오와 열을 맞춰 바닥에 깐다. 모판 위에 철대를 꽂는다. 철대는 비닐하우스의 틀 역할이다. 비닐을 씌운다. 비닐이 고정되도록 잽싸게 양쪽 끝에 흙을 꼼꼼하게 덮는다. 바야흐로 '삽질 타임'이다. 이런 식으로 야트막한 비닐하우스가 세 동이 순식간에 생겨난다.

마을분들이 협동해서 모판을 논에 깔고 있다. 저렇게 깔아서 비닐을 덮어 씌워 비닐하우스를 만든 후 논에 물을 댄다.
▲ 협력 마을분들이 협동해서 모판을 논에 깔고 있다. 저렇게 깔아서 비닐을 덮어 씌워 비닐하우스를 만든 후 논에 물을 댄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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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나면, 일단 일하러 온 사람들은 일을 마친다. 하지만, 주인은 끝이 아니다. 시냇가에다가 호스를 대어 물을 끌어온다. 비닐하우스 주변으로 물이 충분히 차도록 물을 이끌어온다. 그래야 모판에 물이 잠겨, 모들이 무럭무럭 자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후반전이 끝나면, 일단 일은 끝난다. 하지만, 모든 일에 본 게임보다 뒤풀이가 더 재미있다는 건 아실 테지.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11시 40분에 모이셔들. 오늘은 닭볶음탕 집이유"

기차화통 형님의 통보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다. 옷도 갈아입고, 샤워도 하고, 크림도 바르고. 그렇게 외출 준비를 한다. 가까운 식당에 가지만, 외출은 외출이다. 시골사람들이라고 허름하게 다닌다는 건 오래 전 이야기다. 가정에서 식사 대접하는 분위기도 옛날이야기다. '외식'이라는 기분을 이때 한 번 내보고 싶은 게다.

식당에 도착했다. 전반전과 후반전을 끝낸 축구선수들이 게임을 승리하고는, 자축하는 분위기다. 모두 싱글벙글. 술이 나왔다. "위하여"를 외칠 시간이다.

놓인 모판 위에 철대를 꽂아 비닐하우스를 준비한다. 엎드려서 철대를 꽃고 있는 게 나다. 이장님과 한조가 되어 일하고 있다.
▲ 철대꽃기 놓인 모판 위에 철대를 꽂아 비닐하우스를 준비한다. 엎드려서 철대를 꽃고 있는 게 나다. 이장님과 한조가 되어 일하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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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못자리를 위하여!"

기차화통 형님의 건배사에 "'자기 집 못자리를 위하여'는 건배사는 생전 처음"이라며 모두가 웃고 난리다. 오 형님이 한마디 하신다.

"저 형님이 저래여. 자기 못자리밖에 몰러. 하하하!"

이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울 마을 이장님이다.

"한 해 농사를 위하여!"

이렇게 '건배사 파국 정국'은 마무리되고, 식사가 시작된다. 오늘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큰 일'을 해내고는 잔치를 하고 있다. 여기서 큰일이라 함은 규모가 아니라 의미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 품앗이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일이었다. 큰일에 동참 하게 해준 기차화통 형님이 고맙다.

울 마을 기차화통 형님이 웃으며 나셨다. 왜 안그렇겠는가. 자기 논에 모판도 내고, 마을사람들과 일도 같이 끝내고, 자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한턱 쏘았으니, 기분이 날아가신다. 지금은 마을 분들이 모두 식당에서 뒷풀이 잔치 중이다.
▲ 기차화통 형님 울 마을 기차화통 형님이 웃으며 나셨다. 왜 안그렇겠는가. 자기 논에 모판도 내고, 마을사람들과 일도 같이 끝내고, 자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한턱 쏘았으니, 기분이 날아가신다. 지금은 마을 분들이 모두 식당에서 뒷풀이 잔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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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를 같이 해보니까 알겠다. 이 일은 품앗이를 하지 않으면, 못 해내는 일이란 걸. 열댓 명이 붙어서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일해도 못해낼 일이었다. 여러 손이 필요한 일이다. 문명이 더 진보해 이마저도 기계로 다 처리된다면, 품앗이는 없어지겠지만, 아직까지는 품앗이로 해야 될 일이 남아있었다. 요즘 웬만한 농사는 '각자도생'이지만, '모판내기'는 품앗이로 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걸 농부들은 알고 있다.

그나저나 이장님의 건배사대로 올 한해 농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태그:#품앗이, #모판내기, #흰돌리, #더아모의집,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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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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