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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북부지방에서 많이 먹는 태평초는 메밀묵에 돼지고기, 미나리, 지단채, 김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이면서 먹는 '돼지묵전골'이다. 태평추, 태평탕 등으로도 불린다. 특히 영주에서는 별식으로 매우 유명하다. 궁중음식인 탕평채가 영주에 전해지면서 서민들이 먹는 태평초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세조 시절 단종 복위운동(정축지변 丁丑之變, 1456년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 순흥부사 이보흠의 거사가 실패하면서 세조와 한명회에 의해 순흥부 양민 수천이 도륙당한 사건)으로 크게 애를 먹은 영주의 선비들은 태백산과 소백산 속에 숨어 지내면서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메밀을 많이 먹고 살았다. 지금도 영주와 봉화의 메밀 생산량은 전국 1등을 유지하고 있다.

돼지묵전골
▲ 태평초 돼지묵전골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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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중앙정부와 멀어졌던 영주의 선비들은 메밀국수와 메밀묵을 많이 먹었고, 조선 후기 영조임금이 녹두묵에 고기볶음, 미나리, 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인 탕평채(蕩平菜)를 즐긴 것을 모방하여 비슷한 재료를 조합하여 세상은 태평하지 않았지만 묵을 먹을 때만이라도 태평성대를 꿈꾸며 태평초를 만들어 먹게 된다.

태평초는 영주지역 사림의 재등용에 대한 감사와 영조임금의 치적과 태평세월을 기원하며 영주의 백성들이 만든 독창적인 요리인 것이다.

태평초는 메밀묵의 부드럽게 씹히는 감촉이 채소와 어우러져 칼칼하고 개운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탕평채는 청포묵 혹은 녹두묵에 쇠고기, 갖은 야채를 넣어 무쳐 먹는 것인데 반해, 태평초는 청포묵 대신 메밀묵을,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이용한 백성의 음식이다.

약간 맵고 칼칼하면서도 뒷맛이 개운한 태평초를 오랜만에 먹었다. 동행한 김 국장과 박 선생도 처음 맛보는 태평초에 놀라는 눈치다. 용궁막걸리를 반주로 한잔하며 맛있게 점심을 했다.
풍광이 좋은 곳이다
▲ 선몽동천 풍광이 좋은 곳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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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리는 다시 내성천 물길을 따라 올라 소나무 숲과 전망이 좋은 명승지인 '선몽대(仙夢臺)'로 갔다. 이곳은 퇴계 이황의 종손인 우암 이열도(李閱道)가 1563년 창건한 정자이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고 이름을 지었다는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약포 정탁, 서애,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선생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예천군
▲ 소나무가 좋은 선몽대 예천군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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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 뒤쪽에 있는 숲은 수해와 바람으로부터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보호림 또는 비보림(裨補林, 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숲)으로, 수령 100~200여 년 된 소나무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소나무가 너무 장관이라 그늘에 자리를 깔고 오랫동안 쉬어 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예전 사진과 함께 보니 정말 풀이 대단하다
▲ 선몽대 앞도 풀밭 예전 사진과 함께 보니 정말 풀이 대단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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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臺) 위에 올라가면 내성천 넓은 백사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늘고 긴 내가 자랑하고, 뒷산에는 병암으로 둘러싸인 힘찬 기암절벽이 주위를 황홀하게 한다. 그런데 이곳도 보기 좋았던 백사장은 많이 사라지고 눈앞은 온통 여뀌풀밭이다. '영주댐의 영향에 곳곳이 전쟁터처럼 처참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쓰리고 아프다.

최근에 다른 공사를 위해 만들었다가 철거한 흔적이 보이는 내를 가로지르는 임시 가설 로와 근래에 심은 기존의 큰 소나무와는 수종이 다른 것 같은 어린 소나무들, 2층 누각도 국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모양으로 부조화의 연속이다.  

1층의 대가 2층이 되어, 어색하다
▲ 선몽대 1층의 대가 2층이 되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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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주댐의 영향은 벌써 선몽대 주변과 회룡포 주변까지 내성천 전반에 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래밭이 서서히 풀밭이 되면서 시나브로 습지로 변하고 있었다.

이어 김 국장이 내성천에 온 목적지인 NT소유의 '내성천 범람원'으로 갔다. 지난 2011년 연말 영주댐 건설 사업으로 훼손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온 지율스님 등 불교계의 '땅 한 평 사기 운동'과 함께 결실을 맺어 구입한 땅이다.

시민의 공동 모금으로 산 땅이다
▲ NT의 내성천 범람원 시민의 공동 모금으로 산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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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땅 한 평 사기 운동은 하천 개발사업, 자전거도로 건설 등으로 훼손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 모금활동에 동참, 땅을 매입해 시민소유로 전환한 것으로, 자연유산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개포면 신음리 463번지로, 이곳은 내성천 끝머리인 삼강주막, 회룡포와 인접해 있다. 현재는 오래된 사과밭으로 한 귀퉁이에는 새롭게 호두나무를 심기 위해 준비 중에 있었다. 이런 시민들과 NGO의 작은 노력들이 어쩌면 내성천을 보호하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과수원을 줄이고 호두나무를 심기 위해 준비 중
▲ NT의 내성천 범람원 과수원을 줄이고 호두나무를 심기 위해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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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길을 돌려 방문한 곳은 높은 곳에 자리하여 내성천이 잘 바라보이고, 내성천에서 올려보기에도 너무 멋진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도정서원(道正書院)'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과 그의 아들 정윤목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서원 옆에 있는 읍호정 정자는 내성천의 가파른 경사면을 깎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어 아슬아슬하지만 장관이었다.

예천군
▲ 도정서원 예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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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에서 바라보는 내성천의 모습도 온통 여뀌풀밭이다. 그리고 저 멀리 맞은 편 언덕 위에 골프장과 작은 리조트가 보인다. 서원과 내성천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런 곳에 골프장 허가를 내어준 당국이 한심하고 답답하기까지 하다. 

서원 앞의 내성천도 풀밭이고, 멀리 골프장까지 엉망이다
▲ 도정서원 서원 앞의 내성천도 풀밭이고, 멀리 골프장까지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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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장관이다
▲ 도정서원 언덕 위에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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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원까지 살펴본 우리들은 예천에서 숙박을 할까 하다가, 김 국장이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내일 아침부터 걸어볼 예정인 내성천의 중간쯤에 있는 '무섬마을'로 이동하여 숙소를 정했다. 해질 무렵까지 동내를 산책한 다음 마을 초입의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저녁 식사를 했다.

모래가 엄청나게 줄었다
▲ 무섬마을 모래가 엄청나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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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인 무섬은 회룡포와 비슷한 모양의 물돌이 마을로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마을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풍수 지리학상으로는 매화꽃이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이라 하여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힌다.

무섬마을 최초의 집이다. 섬계초당
▲ 만죽재 무섬마을 최초의 집이다. 섬계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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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반남박씨 박수가 섬계초당(만죽재)을 지어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 김대가 영조 때 들어왔다. 이 무렵부터 박씨와 김씨가 함께 세거하는 집성촌이 되었다.
초가에서 하룻밤을 묵다
▲ 무섬마을 초가에서 하룻밤을 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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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없는 회룡포와는 달리 가옥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영주의 대표적인 선비마을이다.

지난해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한국관광의 별 숙박 부문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민박을 하는 집들이 많이 늘었다.

외나무 다리
▲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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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의 모래도 유실이 심했다. 다행히 주민과 시의 노력으로 여뀌는 많이 자라지 않고 있었다. 제초작업을 수시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모래가 예전에 비해 1~2m 이상 줄어든 듯 보였다. 이제 김 국장은 서울로 돌아가고 나와 박 선생이 초가에서 오랫동안 정담을 나누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많은 장비에 고무장화까지 고생이 많다
▲ 초록사진작가 박용훈 정말 많은 장비에 고무장화까지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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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내성천, #무섬마을, #선몽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도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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