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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신사이바시(心斎橋) 지역은 서울로 생각하면 명동과 홍대 앞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다양한 먹거리와 맛집, 술집들이 밀집하여 오사카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오사카 도톤보리(道頓堀)의 글리코 제과 광고판 앞에서 북쪽으로 연결된 번화가, 신사이바시로 들어섰다. 낮인데도 도톤보리보다 더 많은 인파가 거리 안에 가득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걷는 길을 따라 걸으니 지도도 필요 없는 곳이다.

나는 신사이바시에 저녁이 오기 전에 신사이바시의 한 맛집을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지하철도 타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상가의 여러 가게들을 두리번거리면서 식당을 찾아갔다. 상가 중심 거리의 천장이 모두 지붕으로 덮여 있어서 날씨 걱정 없이 걷기에 좋은 곳이다.

신사이바시의 고층빌딩 위에 자리한 두부 전문 맛집이다.
▲ 우메노하나. 신사이바시의 고층빌딩 위에 자리한 두부 전문 맛집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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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서 신사이바시역 7번 출구까지 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건물 11층에 내가 찾는 맛집, 우메노하나(梅の花)가 있었다. 전통 맛집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고층빌딩 위에 있는 것이 생소했지만 식당 입구는 일본의 기와지붕을 올려 한껏 일본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평일의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가서 다행히 예약하지 않고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가격대가 약간 비싼 식당이지만 점심시간에 오면 비교적 저렴하게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매화꽃이라는 뜻의 우메노하나는 일본 내에서 유명한 두부요리 전문점으로 특히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나는 서민적인 음식 두부가 일본에서 어떻게 다양하게 조리되는지를 보기로 했다. 잘 훈련된 직원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했고 나는 오사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자리에 앉았다. 식당 좌석의 젓가락은 우리와 달리 가로로 놓여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자 바로 나온 녹차를 마시고 기다렸다. 녹차의 맛이 은은했다.

모든 두부음식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씩 담겨 나오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두부 음식이 조금씩 나오는 모습을 보면 두부 요리에도 역시 음식의 색과 모양을 중시하는 일본의 특색이 담겨 있다. 두부가 어떻게 이렇게 모양이 예쁜 음식이 되었는지 두부 요리를 하나씩 계속 받을 때마다 놀라게 된다. 깔끔한 두부 요리를 보고 있으니 내가 지금 일본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생크림과 우유를 넣은 순백색의 두부이다.
▲ 미네오카 두부. 생크림과 우유를 넣은 순백색의 두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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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오카(嶺岡) 두부는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두부가 이렇게 하얗게 빛나는 것은 두부에 우유와 함께 생크림을 넣었기 때문이다. 미네오카 두부를 입 속에 넣어보니 마치 찹쌀떡 같이 쫀득쫀득하다. 마치 아이스크림같이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내용물이 독특하게 탱탱한 것은 두부 안에 칡도 넣었기 때문이다. 두부 위에 앉은 유자 소스는 상큼하게 두부의 맛을 잡아준다. 두부 위에 꽃같이 생긴 유자의 맛은 마치 가게 이름, 매화꽃 같다.

그 다음으로 나온 유바(湯葉)는 지금까지 내가 전혀 먹어보지 못한 생소한 음식이다. 나는 유바를 처음 먹어보고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겉이 쭈글쭈글한 껌을 씹는 것도 아니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아닌 묘한 식감이 있었다. 나는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뭐지요? 이것도 두부예요?"
"네, 그럼요. 이것도 두부로 만들었어요. 우리 식당의 대표 메뉴에요. 이름은 유바라고 합니다."
"무슨 실타래나 엿같이 생겼는데 이게 두부라고요?"
"콩국물을 끓일 때 표면에 생기는 얇은 막을 걷어내서 만드는 두부예요."

나는 일본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다시 물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유바는 약한 불에 끓인 콩국물의 겉면이 조금씩 익어 가면서 얇은 종이가 구겨진 듯한 모습을 하게 되는데 이 구겨진 듯한 얇은 두부피를 하나씩 걷어내서 만든 두부요리다. 일본 밖에서는 이 유바를 만드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식당에서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펼치면 아주 얇고 긴 실타래 같은 유바가 마치 회같이 단정하게 담겨 나온 모습이 너무나 놀랍다.

불에 끓인 두부피의 얇은 막을 걷어서 만든 두부로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이다.
▲ 유바. 불에 끓인 두부피의 얇은 막을 걷어서 만든 두부로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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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없이 먹어보았더니 처음에는 담백함만 느껴지다가 시간이 지나자 독특한 두부 맛이 부드럽고 미세하게 느껴진다. 작은 그릇에 유바와 함께 담겨 나온 연한 간장 소스, 츠유(つゆ)와 함께 먹으니 오히려 두부의 제 맛이 난다. 그리고 이 간장 소스에 담긴 유자 때문에 이 특선 냉두부에서는 새콤한 맛이 난다.

이 유바의 맛은 유바 위에 놓인 겨자에서 최종적으로 결정이 난다. 두부와 간장, 겨자가 어울리는 맛은 그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하고 깔끔한 맛이다. 오사카 지역의 두부 요리를 대표하는 이 음식을 먹으면서 두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두부 요리라고 하면 건강식이어서 음식 맛이 심심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에서는 두부를 가지고 온갖 요리들을 다 만들면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맛을 내고 있었다.

새우, 닭고기와 두부가 들어간 딤섬은 이 가게의 명물이다.
▲ 두부 딤섬. 새우, 닭고기와 두부가 들어간 딤섬은 이 가게의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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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명물로는 두부로 만든 딤섬도 있다. 안에 두부를 넣고 찐 딤섬은 쫀득쫀득한 두부 찐만두의 맛이 난다. 딤섬 안의 새우, 닭고기, 양파와 함께 들어간 두부가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 위에 겨자를 얹어서 먹으니 참 별미이다. 이 매화꽃 식당의 두부요리 하나하나는 두부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여행 친구가 우메노하나는 두유가 들어간 돼지고기 샤브샤브도 훌륭하다고 추천을 해서  마지막 요리로 두유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두유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육수에 각종 계절채소와 샤브샤브 고기를 넣었다. 고기는 육수에 넣기가 무섭게 바로 바로 잘 익은 고기 색을 드러냈다. 북적북적해진 손님들 사이에서 나는 신사이바시의 전망을 내려다보며 식사를 했다.

두유가 들어간 국물이 담백하고 샤브샤브 고기의 질도 좋다.
▲ 두유 샤브샤브. 두유가 들어간 국물이 담백하고 샤브샤브 고기의 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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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샤브샤브와 맛에서 크게 차이 날 것은 없지만 두유에 녹은 고기를 씹는 느낌이나 샤브샤브를 찍어먹는 소스의 맛이 다르고 고기의 질이 아주 좋다. 일본의 시원한 맥주와 함께 샤브샤브를 먹었다. 일본의 음식에는 시원한 맥주가 오랜 친구처럼 잘 어울린다. 나는 소박한 두부 음식을 요란스럽지 않게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겼다.

밤 늦은 시간에도 신사이바시의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 신사이바시의 밤. 밤 늦은 시간에도 신사이바시의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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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당 근처의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해가 진 신사이바시의 밤거리로 다시 나가보았다. 밤이 늦었지만 천장이 덮인 상가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신사이바시는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거리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야구단 선수복을 고쳐 입는 등 개성이 드러나는 옷들을 입고 활보하는 자유인들이 많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마치 오사카 시내의 사람들을 구경하러 나온 것 같다. 신사이바시의 가게 중에는 한류 스타, K팝 스타의 가게도 보인다. 그리고 주변이 모두 과자와 빵집, 크레페, 케이크 등 디저트 음식의 유명한 맛집이어서 저녁의 식욕을 자극한다.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다.
▲ 신사이바시의 사람들.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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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타르트로 유명한 파블로(Pablo) 앞에서는 일본경제가 현재 불황이라는 말이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저녁시간에도 가게 앞에 사람들이 너무나 길게 줄을 서 있어서 신사이바시 거리 안에 들어서자마자 쉽게 눈에 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잘 하지 않는 나도 이 가게 앞에서 줄을 섰다. 다행히 줄을 선 사람들이 주로 노란 치즈 타르트 포장 제품을 사가기 때문에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치즈 타르트로 유명한 가게 앞에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선다.
▲ 파블로. 치즈 타르트로 유명한 가게 앞에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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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내부로 들어서자 통유리 너머로 주방 안이 훤히 보였다. 위생상태도 깔끔해 보이는 직원들이 모두 분주하게 치즈 타르트를 만들고 있는데 기다리면서 이 광경을 보니 더욱 맛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나는 포장된 타르트를 사서 바로 맛을 보았다. 망고와 코코넛이 올려진 치즈 타르트가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나는 거기에다가 치즈가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었다. 비만에 대한 걱정으로 음식의 양을 절제하는 노력은 여기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젊음의 거리답게 거리에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있다. 조용한 나라 일본답게 거리의 음악가들도 조용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교육시키는 일본. 이 뮤지션들도 밤거리의 행인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듯 잔잔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밤의 번화가에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겪으면 겪을수록 다름이 많이 느껴지는 곳이 일본이다.

닭꼬치와 어묵을 안주 삼아 술 한잔 나누는 아저씨들.
▲ 선술집 풍경. 닭꼬치와 어묵을 안주 삼아 술 한잔 나누는 아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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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자 거리의 조그만 선술집들에 사람들이 꽉 차기 시작했다.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크게 규제하지 않는 일본답게 술집 안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작은 술집들 안의 아저씨들은 어묵과 닭꼬치, 우동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본 풍경 중에서 한국과 가장 닮아 있는 풍경이다.

나는 오사카의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거리를 걷다 보니 조금 외로웠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오사카에서 맛집을 다닐 때마다 머리 속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이 생각났다.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52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 #일본여행, #오사카, #신사이바시,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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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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