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단다. 지난 방학 동안은 공부방에 보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하기 싫어서 끊어버렸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인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태평하기만 하다. 속이 터지다 못해 썩어문드러지는 것은 나뿐이다.

주변 엄마들과 아이들 학원 문제, 공부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나만 속이 타들어간다. 다른 아이만큼 하려면 영어, 수학 정도는 학원에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배운다 해도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또 배우는데... 우리 아이 성적은 괜찮을까?

학원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박현숙 작가의 신작 <수상한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애초, 아이를 학원에 보낼 생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보낼 거라면 이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명품학원, 한 달 수강료가 이백만 원

<수상한 학원> 책표지.
 <수상한 학원> 책표지.
ⓒ 북멘토

관련사진보기

<수상한 학원>에 간 주인공 나여진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여진은 엄마의 성화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는 명품학원에 다니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학군이 가장 좋은 동네에 있는 명품학원.

학원 수강료가 한 달에 이백만 원. 엄마가 특별한 인연으로 명품학원 원장을 알게 돼, 한 달 동안 공짜로 여진이를 학원에 보내게 된 것이다. 단짝 친구 미지도 마찬가지.

'영어 숙제를 마쳤을 때는 이미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수학 숙제도 한 보따리인데."
결국 나는 침대 위에는 누워 보지도 못했다. 문제를 풀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서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문제를 다 풀고 나니 새벽 5시였다.
"허리 아파. 잠깐 누워 있다가 가야겠다."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 47쪽.

새벽 5시까지 숙제를 해도 다 못하는 정도라니. 동화 속 학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 속 학원도 마찬가지다. 아들의 학원을 알아보면서 아직 자유학기제 기간인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던 적이 있다.

그때, 학원 선생님은 "자유학기제 기간 동안 모두들 논다고 생각하는데, 대치동 학원들은 그 기간에 중학교 전 과정을 선행한다"며 아이를 방치하면 큰 일 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사실이다.

주인공 여진이와 미지는 이 수상한 학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기초반 평가 시험 보는 날. 여진이는 시험 문제가 어려워 괴롭다. 옆자리에 앉은 백승자가 자기 시험지를 살짝 보여줘, 여진은 승자의 답안지를 베껴 쓰게 되는데... 이후 승자와 여진은 영어 시험을 위해 수상한 논의를 시작한다. 물론 미지에겐 비밀이다.

승자는 공부 잘하는 쌍둥이 동생 승리에게 대리시험을 요청하고, 이 비밀을 아는 여진은 승리의 시험지를 커닝한다. 이들의 수상한 계획은 순조롭게 끝났다. 그러나 결과는 더 나빠졌다. 여진이가 수학, 영어를 백점 받으니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학원에 더 보내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 뒷바라지 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니까. 그 마음을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사실, 여진이의 꿈은 요리사다. 하지만 명품학원은 의사반, 법조인반, 유학반, 외교관반 뿐이다. 여진이는 엄마 뜻에 따라 의사반인 A반에 들어갔다. 엉겁결에 의사반에 간 여진이는 앞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엉겁결에 명품학원 A반이 된 것이다. 명품 학원에 오기 전, 나는 단 한 번도 명품학원이 있는 동네에 가 본 적도 없었다. 그 동네 초등학생들이 커피를 마시고 잠과 싸워 가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뉴스에서만 봤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엄마는 꿈을 꾸는 것 같다면서 좋아하지만 나는 아니다. 꿈이라면 확 깨어났으면 좋겠다."'- 140쪽

미지와 서먹해지고, 학원 수업에 주눅이 든 여진은 지하철역에서 요리학원 전단지를 받는다. '요리책을 무료로 준다'는 말에 솔깃해진 여진은 요리학원을 찾아가고 거기서 용돈을 털어 요리책을 산다. 다음 날, 시험을 봐야 하지만 여진은 요리책을 보며 상상하는 시간이 즐겁다.

학원에 앉아 로봇처럼 공부만 하는 아이들

승자의 도움을 받지 못한 여진은 당연히 영어 시험을 망쳤다. 승자는 백점이지만 여진은 56점. 당연히 꼴등이다. 자존심이 상한 여진은 학원을 뛰쳐나와 요리학원에 간다. 뒤따라온 승자가 재료비를 내, 여진은 요리학원 수업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여진은 학원에서 연락을 받고 화가 난 엄마와 마주한다. 여진은 용기내서 엄마에게 자신의 꿈을 말한다.

'이거는 엄마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오십육 점을 받은 거는 내가 배우지 않았던 문제라서 그런 거야. 핑계 댄다고 말하지 말고 들어 줘. 그 학원 아이들은 막 뛰어가는 아이들이야. 나는 절대 늦게 걸어가는 게 아닌데 그 아이들은 막 뛰어간다고. 엄마, 나는 이것저것 만져도 보고 구경도 하며 걸어가고 싶어. 그래서 그런 거야.' - 196쪽

다음 날, 학원에 간 여진은 엄마에게 물건 잘 정리해서 오라는 문자를 받고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수상한 학원>에서 만난 주인공들은 여진이 뿐 아니라 미지, 승자와 승리, 백설이까지 다양한 성격과 개성이 있다. 한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나이. 아이들 재능도 갖가지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학원에 앉아 로봇처럼 공부만 해야 한다. 이 자체가 수상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박현숙 작가는 <수상한 아파트>, <수상한 우리 반> 시리즈 이후 <수상한 학원>을 펴냈다. <수상한 학원>은 답답하기만 한 아이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특히, 발랄한 주인공의 유머와 재치 있는 행동은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다음에는 어떤 수상한 내용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 수상한 학원 l 북멘토 가치동화 20 l 박현숙 (지은이) | 장서영 (그림) | 도서출판 북멘토 | 2016-03-02



수상한 학원

박현숙 지음, 장서영 그림, 도서출판 북멘토(2016)


태그:#<수상한 학원>, #박현숙 작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