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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구체제의 절대 왕정과 군주제가 붕괴하고, 근대적인 의회 국가가 성립되었다. 프랑스 혁명 자체가 세계에 준 영향도 어마어마했고, 혁명의 여파로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집권과 같은 극적인 일들이 연이어 터지기도 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 발표되고 자유와 평등에 관한 진보적인 주장이 전개된 것도 이때였다. 프랑스 혁명은 근대 이후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에도 영향을 주었고, 훗날의 러시아 혁명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혁명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인류의 진보에 있어서 정말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정말 이렇게 진보적인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프랑스 혁명은 파리에 사는 백인 계급의 혁명이었고, 여성, 노동자와 유색인종에겐 가차없는 혁명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은 도식적인 해석에 짜 맞춘 결과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존의 해석과 다른 나름의 해석을 전개했고, 이를 프랑스 혁명의 수정주의적 해석이라고 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수정주의적 해석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이, 무엇을 혁명시킨 것이고, 어떻게 진보적인 혁명으로 사람들에게 해석되고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다시 접근한다.

여성, 노동자, 유색인종을 위한 프랑스 혁명은 없다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육영수, 돌베개. 2013.07.08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육영수, 돌베개. 2013.07.08
ⓒ 육영수,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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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 대한 해석으로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정통주의적 해석이고 하나는 수정주의적 해석이다. 거칠게 설명하자면, 정통주의적 해석은 프랑스 혁명은 이후에 터진 7월 혁명, 2월 혁명, 파리 코뮌, 러시아 혁명의 '혁명의 도식'의 첫 단추라고 본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사에 있어서 커다란 진보였으며, 프랑스 혁명을 통해 구체제 군주제가 타파되고 대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역사적 사건으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사회 진보와 발전이 시작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반면, 수정주의적 해석은 이와 궤를 달리 한다. 수정주의적 해석의 입장에선 정통주의적 해석은 지나치게 도식화되고 우상화된 것이다. 이런 해석은 오히려 진실과 다르고, 사건의 이해를 어렵게 할 뿐이다. 프랑스 혁명은 혁명과 진보의 의미를 담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 혁명은 매우 혼란스럽게 진행되었고, 프랑스 혁명의 의미는 중앙과 지방, 남성과 여성, 백인과 유색인종에게 각각 다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 혁명으로 앙시앵 레짐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라고 본다. 혁명 이후 주류 프랑스인들의 여성, 노동, 유색인에 대한 입장은 구시대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수정주의적 입장에서 정통주의식의 도식적인 해석은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재조명한다. 프랑스 혁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급격한 진보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기 내내 사회적 진보의 기치가 무색하도록 차별적인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여성, 노동자,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혁명 이후에도 그대로였다.

여성들은 구체제에서 알랑대던 부인들과 혁명에 동조적이지 않은 아낙네들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상류 계급의 여성들은 민중의 피땀을 빨아먹은 사치스러운 귀부인으로 매도되었고, 가정적인 여성들은 가정을 걱정하느라 나랏일이 개판이 되어도 신경쓰지 말라고 종용하는 '반혁명 분자'들로 묘사되었다.

물론 여성 투표권은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을 다룬 영화들 역시 이런 움직임에 합류했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영화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면 로맨스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들은 평등을 위한 혁명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혁명의 '주체'로 등장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노동자와 복지에 관한 권리들은 잠시 자코뱅 집권 시기에만 등장했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구호로만 등장했고 실제 정책적인 실행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은 노동자뿐 아니라 유색인종에게도 관대하지 못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일어난 아이티 흑인 반란은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탄압되었다. 그저 교과서에서 프랑스 혁명의 순서와 의미만을 외웠던 사람이라면, 프랑스 혁명의 다층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를 정도다. 프랑스 혁명은 도식적인 구도로만 바라보기엔 아까울 정도로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다룬 영상매체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당통을 이상적인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로베스 피에르를 독신 사이코로 묘사한 영화 <프랑스 대혁명>과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들을 감히 정치에 개입한 건방진 존재나, 로맨스의 대상으로 다룬 성인 매체들, 무성영화인 강스의 <나폴레옹> 을 통해 대중의 시선에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비쳤는지를 조망한다.

저자는 문화적 사건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에 주목하여, 허구화되고 과장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 묘사에 대한 비판과 라 마르세예즈, 민중공연에 대한 논의도 다룬다. 부록에는 저자가 직접 방문한 프랑스 여행기가 적혀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사진 자료가 인상적이다.

인류에게 큰 충격을 준 역사적 사건에는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조망한다. 이 그림자를 살핌으로써 세상이 한 번의 혁명만으로 새롭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 프랑스혁명의 문화사

육영수 지음, 돌베개(2013)


태그:#프랑스 혁명, #혁명사, #프랑스, #혁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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