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옥새투쟁'에 돌입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오후 부산 영도구 사무실에 도착한 뒤 손짓을 하며 영도다리를 걷고 있다.
▲ 김무성 마이웨이? '옥새투쟁'에 돌입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오후 부산 영도구 사무실에 도착한 뒤 손짓을 하며 영도다리를 걷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것이 새누리당의 잠재력입니다."

유승민·이재오 의원 등의 지역구에 대한 무공천 방침을 밝히며 '옥새투쟁'을 선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이 아니다. 친박(친박근혜) 측 박종희 공천관리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그는 24일 새벽 여의도 한 감자탕집에서 웃음 띤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의 사진을 올리며 이 같은 글을 남겼다.

유 의원 등 일부 지역구 공천 문제를 두고 전날(23일) 열렸던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 격론과 고성이 오갔지만 결국 다들 술 한 잔을 나누면서 총선승리를 다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새누리당의 '유승민발(發) 공천갈등'이 조속히 가라앉을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반전이 벌어졌다. 서 최고위원과 술잔을 기울였던 김 대표가 이날 오후 '진박(眞朴)' 후보들이 단수추천된 지역구 5곳의 공천결과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들 지역을 '무공천' 지역으로 만들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Mr. 쓴소리'로 평가받는 이재오 의원을 살리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즉, 박 대통령과 친박에 대한 '항명'으로 볼 수도 있는 셈이다(관련기사 : "유승민 지역구 등 5곳 무공천" '옥새투쟁' 선언한 김무성)

4.13 총선을 20일 앞두고 집권여당 대표가 자당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장, 친박 측에선 "당대표가 선거를 목전에 두고 해당행위를 한 것"이라고 질타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도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라면서 "제게 쏟아지는 어떤 비난과 비판, 무거운 짐도 감수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대표가 이 같은 반발을 예상하고도 '옥새카드'를 꺼내 들어야 했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당내 주도권 회복] '30시간의 법칙' 굴욕 뒤집을 카드 필요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난 23일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국회 인근 식당에서 화기애애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사진은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부총장은 페이스북에서 "심야 최고회의에서 격론과 고성이 오갔습니다만 격의 없이 화해하고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였다"며 "김 대표와 원 원내대표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고 소주잔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난 23일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국회 인근 식당에서 화기애애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사진은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부총장은 페이스북에서 "심야 최고회의에서 격론과 고성이 오갔습니다만 격의 없이 화해하고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였다"며 "김 대표와 원 원내대표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고 소주잔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 박종희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첫째, 당내 주도권 회복이다. 김 대표는 이번 총선 공천 국면에서 '30시간의 법칙'이란 오명을 얻었다(관련 기사: 김무성, 이번에는 '30시간' 버틸까?). 지난 2월 말 벌어졌던 '살생부 논란'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가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현역의원 40여 명의 이름이 담긴 물갈이 명단을 받았다'고 했다"는 정두언 의원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비박(비박근혜) 측은 이를 기회로 상향식 공천 취지를 훼손하려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을 비롯한 친박 측은 이를 '찌라시(사설 정보지)'로 몰아붙이면서 '공작정치'로 규정했다. 김 대표는 버티지 못했다. 그는 2월 29일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의 결정사항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나는 소문을 얘기했을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박 측은 그의 '약한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정두언 의원은 "김 대표는 일을 저지르면 채 30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말을 바꾼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만큼 김 대표는 유독 박 대통령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잃고 난 후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유 의원의 러닝메이트였던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직을 승계한 뒤 친박으로 선회했다. 김을동 최고위원을 제외한 서청원·김태호·이인제·이정현 최고위원이 친박 측을 대변하는 가운데, 더욱 수적 열세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뒤늦게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했지만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은 끝없는 '철수' 상황을 빚어냈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주장은 철회됐다. 그나마 상향식 공천제 취지를 따르기 위해 일반국민 경선 참여비율을 당헌당규에 적시된 50%보다 더 높이고자 한 것도 '일부 지역에 한해서만' 하는 것으로 후퇴됐다. 이한구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 같은 '철수'의 화룡점정이었다. 상향식 공천제 취지에 반하는 전략공천과 현역 물갈이를 공공연히 주장했던 이였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상황에 상당한 열패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유철 원내대표를 향해 "(대표직) 못 해먹겠다"라고 소리쳤던 것도 현 상황에 대한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날 '옥새투쟁' 기자회견 직전에도 '대표직 사퇴설'이 나돌았다. 김 대표가 대표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을 비롯해 전당대회 당시 캠프 참여 인사들에게 "치욕스럽게 정치를 하느니 차라리 대표를 던지겠다"는 말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옥새투쟁'은 자신이 곧 당대표임을 재차 확인히는 '장치'로 활용된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대표로서의 권한을 드러내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친박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셈이다.

[대권주자] 친박 공세에 주춤거리며 지지율 하락, '미래권력' 존재감 회복용

둘째, 구겨졌던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위상 회복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명실상부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로 꼽혔다. 특히 그는 전당대회 당시 "할 말 하는 당대표" "수평적인 당청관계"를 천명하며 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미래권력'으로 대표됐다.

그러나 이 같은 이미지는 점점 희석됐다. 앞서 지적한 '철수'가 거듭됐기 때문이다. 특히 김 대표는 이번 4.13 총선 국면에서 '존재감 없는 당대표'로 전락했다. 이미 자신이 천명한 '상향식 공천제'에 따라 공천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친박 측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만 노출하면서 '무력한 당대표'로 자리매김했다. 

여론은 이에 반응했다. 24일 발표된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의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를 보면, 김 대표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p 하락한 14.7%를 기록했다. 이는 1위를 기록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1.6%)에 오차범위 밖인 6.9%p 뒤진 결과였다.(21~23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1명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p,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유승민 고사작전'에 무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유였다. '리얼미터'의 일간 조사 결과를 보면, 김 대표의 지지율은 조사 시작일인 21일 전주 주간집계와 동일한 16.6%로 출발했다. 그러나 친박의 '유승민 고사작전' 보도가 이어진 22일 15.8%로 하락했고, 유승민 공천 주장이 친박계에 의해 거부된 23일은 13.0%까지 추가하락했다.

이는 차기 여권 내 대권 경쟁자들에게 반사효과로 작용했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번 조사에서 크게 치고 올라왔다. 오 전 시장의 지지율은 같은 조사에서 전주 대비 1.1%p 상승한 13.1%를 기록하며 3위를 기록했다.

지난 17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14~15일 전국 성인남녀 1015명, 유무선 RDD 자동응답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 대표는 이 조사에서 19.3%를 기록, 여권 차기 대선주자 선두를 지켰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각을 제대로 세운 유승민 의원이 바짝 그의 뒤를 쫓았다. 유승민 의원은 이 조사에서 18.7%를 기록, 김 대표를 0.6%p 차로 추격했다. 지난 2월 같은 조사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의 격차가 4.4%p 였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결국, 현재 김 대표는 존재감을 다시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존재감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현재 권력에 맞서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이 같은 길을 걸은 바 있다. 또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유 의원이 현재 그 같은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출구전략] 총선 결과 책임 '상향식 공천' 망가뜨린 친박에 던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공천 보류 5개지역을 무공천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4일 오후 국회에서 최고위원들이 간담회를 마친 뒤 원유철 원내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공천 보류 5개지역을 무공천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4일 오후 국회에서 최고위원들이 간담회를 마친 뒤 원유철 원내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셋째, 면피용이자 출구전략이다. 새누리당의 이번 공천 결과는 친박과 친김무성계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친박 측이 압도적이다. 분석 결과, 전체 공천 후보자 250명 중 120~130명, 즉 절반가량이 친박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김무성계도 확실히 실리를 챙겼다. 공관위에서 비박 측 목소리를 대변한 황진하·홍문표 의원을 비롯해 김학용·김성태·강석호·김영우·권성동·박민식 의원 등이 공천을 확정 지었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친박 측과 "거래를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즉, 김 대표가 '살생부 논란'·'여론조사 유출사태'·'윤상현 욕설 녹취록' 등 상향식 공천제를 뒤흔든 각종 악재에도 침묵을 취한 까닭이 바로 공천결과로 증명됐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가 '유승민 구하기'에 나섰을 때도 같은 의혹이 제기됐다. 이미 공관위의 '칼춤'을 멈추기에 늦은 상황임을 알면서도 '면피용'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 컷오프 후 탈당·무소속 출마를 택한 친유승민계 조해진 의원은 전날(23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과 한 인터뷰에서 "그냥 면피용으로 한 마디 툭툭 던지고 액션하고 이런 정도 가지고는 이런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을 수 없다, 혼자서 고립되어 있을 때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를 던져야 한다"라면서 "지금까지 그런 정치적인 결단, 던지는 모습, 이걸 못 보여줬기 때문에 이런 크게 잘못돼 있는 흐름을 당대표, 최고위원이면서도 못 막아냈던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옥새투쟁'을 통해 이 같은 '면피용' 비판을 일부 해소했다. 그러나 이미 유 의원 등이 탈당을 택한 뒤 이뤄진 결단이란 점에서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총선 결과에 대한 출구 전략일 수도 있다. 앞서 김 대표는 총선 목표 의석수로 '180석'을 제시한 바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기 위한 의석수"란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공천 국면을 거치면서 이 같은 목표 의석수를 하향 조정하게 됐다.

특히 19대 총선 당시 얻었던 과반 의석수조차 얻지 못한다면 당장 당대표의 책임을 묻게 되는 상황이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엔 '불명예 퇴진' 가능성도 있다. 정두언 의원은 전날(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이미 그건(과반 의석 확보는) 무너진 것 같다"라며 "(19대 총선 당시) 서울에서 16석 얻었는데 지난번보다 더 얻기 힘들다고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옥새투쟁'을 통해 선거 결과의 책임을 공관위에 넘길 수 있게 됐다. 당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상향식 공천제 약속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결과란 이유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우리 새누리당이 국민의 믿음을 다시 얻어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우리 당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어차피 김 대표는 총선 직후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사퇴해야 한다"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김 대표의 입장에선, 친박 우위의 최고위원회의가 자신을 '궐위 상태'로 만들더라도 자신의 대권행보에 힘을 실어 줄 비박계를 최대한 살리는 게 더 이득인 셈이다.  


태그:#김무성, #박근혜, #옥새투쟁, #유승민, #공천
댓글3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