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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5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 9단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80수만에 불계패해 1승 4패를 기록했다.
 이세돌 9단이 15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 9단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280수만에 불계패해 1승 4패를 기록했다.
ⓒ 구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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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 국민 대부분의 관심 밖이던 인공지능이 단 며칠만에 국민 상식이 되었다. 벤처기업 커뮤니티에서는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행사가 줄줄이 계획되고 있고, 정부는 발빠르게 인공지능과 관련된 지능정보 분야에 5년 동안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알파고 열풍에 편승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행정가와 기획자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들어올 때 다들 열심히 노를 젓는다.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이 미래에 어떤 대접을 받을지 알파고가 아니라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우리도 내성이 생겼지만, '이번만은…'이라며 일말의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 까진 어쩌진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로봇물고기'로 망신을 당한 후 절치부심하던 과학계는 알파고의 등장을 계기로 새롭게 기지개를 펴고 있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었던 수학자가 야당에서 비례대표 1번을 받았고, 줄기세포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사 역시 비례대표 당선권에 들었다. 20대 국회 회기가 끝이나면 이들 '알파고 의원'들의 성적표를 받아 들겠지만, 이세돌 9단이 혼신의 노력으로 알파고를 대하던 모습을 이들에게서 볼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대한민국 바둑에 빠지다

사무실의 사람들이 모두 TV 앞에 모였다. 월드컵 결승전도 아니고,  스포츠 국가대표 대항전도 아닌 바둑을 보기 위해 일손을 멈추고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 한쪽 구석에 바둑채널을 조그마하게 열어 두고 있었다. 먼 훗날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일이 2016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대형 TV를 골똘히 쳐다봤고, 심지어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들도 지금의 판세가 어떤지 묻고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틀면 알파고의 개발자인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40) CEO의 이야기가 나왔고, 영화 채널에서는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방송되고 있었다. 심야의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신문 지상에서는 인공지능이 결코 스카이넷처럼 인간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문가의 인터뷰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벌어지던 그 때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

이세돌, 대한민국을 구하다

인간을 대표해 인공지능인 알파고와 맞붙은 이세돌 9단은 결국 4대 1로 패했다. "이세돌이 패했지 인간이 패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세돌 9단의 멘트와는 상관없이 인류에게 주는 상실감은 컸다. 인공지능이 바꾸어 놓을 미래가 마냥 밝게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0년 안에 인공지능이 일자리 두 개 중 한 개를 빼앗을 것이란 암울한 뉴스가 SNS를 달구었고, 산업용 로봇과 기계가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았 듯이 알파고의 후예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잠식하여 중산층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인공지능의 일방적인 승리는 국민적인 자존심에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의 자랑인 이세돌의 완패는 대한민국을 구했다. 여전히 과거의 산업에 집착하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경종을 울렸고, 알파고 쇼크로 촉발된 ICT 산업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냈다.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향해가던 ICT 산업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십자군 전쟁이예루살렘을 구하진 못했지만 암흑기의 유럽을 르네상스 시대로 이끌어 오늘날까지 세계의 주역으로 자리메김 하게 했듯이 . 이세돌은 알파고에 패배함으로써 우리나라 ICT 산업을 구하는 촉매가 되었다.

인공지능, 인간을 대체하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충격은 논리적인 계산이 필요한 영역에서 더 이상 인간이 설자리는 없을 것이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차가 사라졌듯이, 지금까지 전문직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의학 진단, 법률 서비스, 교육, 보험설계, 주식투자, 환경제어 등 수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으로 자연스러운 교체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변화가 아니라 그 변화의 속도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고 컴퓨팅 파워의 한계비용은 제로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의 교체가 점진적이 아니라 급격하게 한순간에 일어날 것이란 걸 의미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에 저항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도 강력한 마부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자동차의 등장을 막지는 못했다. 자동차가 마부들에게 던진 충격보다 더 큰 변화를 알파고의 후예들이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까. 알파고는 시종일관 흔들림 없이 이길 수 있는 수를 뒀다. 이세돌, 그는 바둑엔 졌지만 대한민국을 구했다. 알파고는 갔고,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질문이 남았다. 아직 돌을 던지긴 이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ecotown.tistory.com)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알파고, #인공지능, #이세돌,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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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대한 - 준비 안 된 사람들>의 저자로 우리나라 농업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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