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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즉 염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간 염치가 없는 사람들,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려는 사람을 숱하게 목격해왔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먼저 기업가가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노동자들의 복리후생 증진에 힘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기업의 공금을 횡령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철저히 배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부 검사들도 그러합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라는 이유로 많은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권력자를 위해 사용하며 자신의 영달을 추구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이들은 국민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하고 이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음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자신을 위해 혹은 지인들을 위해 사용하는 일을 종종 목격합니다.

이들이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과 권력을 본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입니다. 이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게 되더라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때론 잘못을 인정하는 척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잠시뿐, 여론의 질타가 잦아들 때쯤이면 다시 똑같은 망동을 반복합니다. 이들에겐 인간으로서의 특질이라 할 염치가 없습니다.

김종인 대표에게서 '몰염치'의 모습이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자 2번에 공천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과 인사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종인 더민주 비례대표 2번, 축하하는 홍창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자 2번에 공천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과 인사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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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지난 20일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스스로를 제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2번에 공천했습니다.

이후 '셀프공천'이라는 누리꾼들의 비판이 이어졌지만 그는 사과하거나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오히려 여왕님처럼 노기를 띤 모습으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2번에 배정된 게) 그게 무슨 문제냐?"

김종인 대표의 이러한 발언과 달리 '셀프공천'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그에게 부여된 권한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직위는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선전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오직 이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어떠합니까? 총선 승리, 나아가 정권교체를 위한 일이라며 주어진 권한을 자신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지금 여론의 반응을 보십시오. 여론은 이 같은 비례 대표 순번으로는 다음 총선에서 가능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번 한 수가 새누리당과 국민의 당에 큰 도움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본인을 비례대표 2번에 공천하고 문제될 것이 없다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그간 자신의 비례대표 출마에 대해 여러 차례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해왔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입장을 바꿔 출마를 단행했습니다. 그것도 정당 역사상 전무한 당선권 순번을 받은 채 말입니다. 정치가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비례대표에 무슨 큰 욕심이나 있느냐, 난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까, 그 정도만 아시면 돼요." (지난 2월 28일 발언)

셋째,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인사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비례대표 명단과 순번은 공천관리위가 (비대위에) 올린 것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공천관리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은 김 대표가 공천된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누군가에 의해 공천위원회의 권한이 전면 부정된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민주적 정당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입니다.

나머지도 문제 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자 1번에 공천된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에 공천된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자 1번에 공천된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실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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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비례대표 후보들은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에 나름대로의 면모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분이라 확신한다."(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한 발언)

문제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비례 대표 2번 낙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례대표 1번을 부여받은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고, 비례대표 A그룹에 속한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안보공약이 '종북좌파적'이라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입니다.

비례대표 6번인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2011년 해외투자사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옹호하는 신문 칼럼을 쓴 바 있고, B그룹의 심기준 강원도당 위원장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에 앞장 선 인물로, 올해 시민단체가 선정한 낙천 대상자입니다. 소수자를 배려하고, 당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비례 대표단 명단이 이래서야 될 일입니까? 통상 정당의 비례후보 상위 순번은 그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입니다.

지금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비례대표 최상위 후보가 되면 당의 승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거나 지금과 같은 비례대표단 명단으로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여론을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여론은 이번 비례대표 명단 발표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실수를 할 수는 있습니다. 때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오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신의 입맛에 따라 사용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염치없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다행히도 어제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는 비례대표 후보 순위를 확정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비례대표 순번과 명단에 대한 반발 때문입니다. 당에서도 이러한 반발이 일어나는 지금, 김종인 대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한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비례대표 명단으로는 총선에서 승리하지도 못할뿐더러, 권한을 사유화 한다는 비판을 듣기에 딱 좋습니다.


태그:#김종인 셀프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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