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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는 여행객을 위한 정보 센터가 동네마다 있다. 켐시에 있는 정보 센터
 호주에는 여행객을 위한 정보 센터가 동네마다 있다. 켐시에 있는 정보 센터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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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풍광이 좋다. 베란다에 나서면 겹겹이 싸인 산이 펼쳐지고 멀리 바다가 보인다. 새벽에 산등성을 흐르는 안개는 멋진 풍경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도 항상 나를 반긴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들고 베란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곳에 정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 집을 비우고 어딘가로 떠난다. 우리 집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찾아가지 않으면 몸이 쑤신다. 이번에는 호주에서 이름 있는 도리고 국립공원(Dorrigo National Park)을 택했다. 시드니에서는 먼 곳이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떠난다. 이제는 익숙한 퍼시픽 하이웨이(Pacific Highway)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하니 포트 매콰리(Port Macquarie)라는 큰 도시를 지난다. 이곳에 한국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외국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요즈음은 지방 도시에서도 한국 사람을 자주 접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트럭과 크레인 그리고 이름 모를 중장비가 분주히 움직인다. 중장비를 운전하는 운전석에는 에어컨 시설이 있어 보인다. 더운 날씨라 그런지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베트남에서 지낼 때 보았던 수많은 사람이 흙먼지 속에서 일하던 모습과 비교된다.
   
나무를 자르고 땅을 고르며 다리도 짓고 있다. 도로가 완공되면 시간도 단축되고 운전 또한 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오랜 세월 삶을 지탱해온 동식물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공익광고가 생각난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여행은 즉흥적이다. 가는 길에 있는 켐시(Kempsey)라는 동네에 들려본다. 동네 입구 널찍한 잔디밭 한가운데에 관광객을 위한 정보 센터(Information Centre)가 있다. 직원이 친절하게 맞는다. 우리가 원하는 지도책과 관광 안내 책자를 주며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들은 친절하다. 자원봉사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더 친절한 분위기를 느낀다. 

켐시에는 맥리(Macleay River)라는 큰 강이 흐른다. 강 옆에 있는 공원에 들린다. 주차장에는 캐러밴을 비롯해 장거리 여행을 하는 자동차가 많다. 공원에서 식기를 씻는 젊은 남녀가 있다. 자동차로 호주 여행을 하는 유럽 젊은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잔디밭에서는 노부부가 식사하고 있다. 퇴직 생활을 즐기는 전형적인 호주 노부부의 모습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우리가 묵을 곳에서 가까운 벨링겐(Bellingen)이라는 동네에 들어선다. 호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골프장이 있다. 한 남자가 혼자 골프를 치고 있다. 상대가 필요한 운동이 아니므로 혼자서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문득 골프를 명상 프로그램에 접목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골프공을 치면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 수행(?)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동네 한복판에 들어서니 옛날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풍의 석조 건물이 줄지어 있다. 카페와 고급스러운 식당이 많다. 가게를 기웃거리는 여행객도 눈에 뜨인다. 잠깐 멈추고 싶은 곳이지만 나중에 들리기로 하고 예약한 민박집으로 향한다.

원시 시대와 현대를 함께 즐기는 부부

민박집 주인이 1년 동안 혼자 지었다는 명상 건물.
 민박집 주인이 1년 동안 혼자 지었다는 명상 건물.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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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있는 숲이 우거진 도로를 운전한다. 비포장도로를 조금 운전하니 민박집 입구가 보인다. 입구에서도 짧지 않은 거리를 들어가니 넓은 잔디밭에 집이 보인다. 정원에서 일하던 주인아줌마가 반갑게 맞는다. 외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이름을 불러주며 묵을 곳을 안내한다.

자그마한 방 하나가 있다. 부엌과 샤워 시설은 야외에 설치돼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만 깨끗하게 잘 정돈된 민박집이다. 손님을 위해 정성 들인 흔적이 넘쳐난다. 살아가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짐을 풀고 야외에 있는 검소한 라운지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며 주위를 즐긴다. 앞에는 도리고 국립공원의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주인이 사는 집이 있다. 부엌과 욕실이 야외에 있는 독특한 구조다.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는 특이하게 지은 건물이 있다. 건물 아래에는 수영장이 보인다. 

주인아줌마가 농사지은 채소를 가지고 온다. 남편은 지금 명상을 하고 있다며 언덕 위에 있는 특이한 건물을 가리킨다. 1년 동안 남편이 지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미술을 전공했다는 부인의 작품과 안목으로 주위가 잘 정돈되어 있다. 둘만의 터전을 만들어 그들만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조용한 산속에서 잠을 청한다. 지금 이대로가 참 좋다. 잠이 잘 올 수밖에 없다. 현대인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데….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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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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