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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더민주는 10일 정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을 '전략 검토 지역'으로 발표했다. 당초 더민주 공천관리위원회는 현역의원에 대한 2차 컷오프(3선 이상 50%, 재선 이하 30%) 가부 투표 기준으로 경쟁력과 도덕성을 제시했다. 정 의원이 지역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던 점을 고려하면, 탈락 이유는 '도덕성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그동안 자신을 '당 대포'라고 칭해왔고, 그에 걸맞게 당내 분란이나 여야 대치 정국에서 큰 목소리를 내왔다. 문제는 포탄의 방향이었다. 그가 날카롭게 여당을 공격할 때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 방향이 내부를 향할 때는 갈등의 기폭제가 됐다. 결국 지난해 문재인 전 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지도부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때 내부를 향해 쏜 포탄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정청래는 왜 탈락했나?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5월 '공갈 사퇴' 발언 경위 등을 소명하기 위해 당 윤리심판원에 출석하는 모습.
▲ 소명 위해 당 윤리심판원 출석한 정청래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5월 '공갈 사퇴' 발언 경위 등을 소명하기 위해 당 윤리심판원에 출석하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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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 의원의 탈락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더민주는 2차 컷오프를 발표하기에 앞서 해당 의원의 컷오프 사실을 공표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선 지역을 발표하며 현역 의원을 제외하거나 전략 지역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간접 통보하는 방식이다. 컷오프 된 의원을 '존중의 차원'이라고 하지만, 명확한 탈락 이유가 제시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혼란만 주고 있다.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공천결과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 의원 탈락 이유를 묻는 질문에 "택시를 타고 왔는데 기사님은 (정 의원을) 어떤 사람보다도 좋게 이야기 한다, 양면성이 있다"라며 "공관위원도 한 가지 의견이 아니다, 요즘 (언론의) 정치면을 장식하는 말의 수준을 보면 사람들이 이중잣대를 가진 느낌도 든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탈락 사유는 밝히지 않은 것이다.

정 의원이 지속적으로 '공천 탈락' 후보에 거론 됐던 이유는 지난해 5월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전 최고위원(현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한 '막말 논란'이다. 그는 주 전 최고위원에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문제"라며 "자중자애하고 단결하는데 협조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4.29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정 의원의 말을 들은 주 최고위원은 그 자리에서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게 치욕적"이라면서 "저는 지금까지 공갈치지 않았다, 저는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도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왔다. 주 전 최고위원은 이후 최고위원회의에 복귀했지만, 지난해 연말 탈당한 안철수 의원을 쫓아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지난해 5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비난 발언에 최고위원직 사퇴를 밝힌 주승용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장하는 모습. 왼쪽 부터 문재인, 주승용, 이종걸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지난해 5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비난 발언에 최고위원직 사퇴를 밝힌 주승용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장하는 모습. 왼쪽 부터 문재인, 주승용, 이종걸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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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원은 이후 주 전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전남 여수에 찾아가 사과했다. 그러나 당 윤리심판원은 정 의원에게 당직정지 1년의 징계를 내렸고, 그는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재심에서 당직정지 6개월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고, 다시 사면 복권 받으면서 지난해 9월 최고위원회에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사퇴하면서 함께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 같은 '막말 논란' 자체만으로 정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리심판원의 징계를 모두 마쳤고, 당사자 사이에도 사과와 수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부당한 청탁 사건이나 부정부패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그의 거친 언행을 '도덕성' 문제로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의 '막말 논란'으로 인한 외부적 환경이 그의 탈락 이유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종편의 조리돌림과 '친노 운동권'이라는 공격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취임 후 지속적으로 당내 패권주의 청산과 운동권 정당 문화 극복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김 대표의 공언은 언론에서 그가 친노-486운동권 출신 인사를 공천 물갈이 표적으로 삼았다고 해석됐다. 여기에 정청래 의원은 거의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정 의원의 막말 논란을 반복적으로 방송하며 공천 탈락 유력인사로 보도했다.

여기에 국민의당은 정 의원을 비롯해 이해찬(세종시), 이목희(서울 금천), 김경협(경기 부천원미갑), 전해철(경기 안산상록갑) 의원을 '친노패권·무능86' 세력으로 지목하고 이들 지역구에 표적공천을 예고했다. 국민의당 대부분의 의원들이 더민주의 비주류 의원으로 있을 때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들이다. 국민의당 일각에서는 이들의 공천여부를 야권연대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외부적 압박은 정 의원 공천탈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정 의원이 공천을 받거나 경선에 참여하게 됐을 경우 보수 언론에서는 이를 빌미로 더민주의 공천 전반을 깎아 내릴 가능성이 컸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 논란이 같은 방식으로 유통되면서 선거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정 의원 사례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실상 정 의원을 '친노'나 패권세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본인 스스로도 "계파적 이해와 거리가 멀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 그의 정치행보를 보면 특정 계파라기보다는 주류를 지향하는 '아웃사이더'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그는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립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측의 핵심 인사이기도 했다.

또 대학시절 운동권 경력을 가져 486인사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다른 486세대 주류 인사들과는 가깝지 않다. 이들과 같은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도 아니다. 최근 문재인 전 대표와 당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정 의원을 '친문'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는 문 전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와 같이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는 부분에서는 문 대표를 사정없이 비판하기도 했다.

당 대포 철수시킨 후폭풍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정청래 의원의 공천배제를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 정 의원의 지지자와 당원들이 모여 공천배제 철회와 공천 재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 정청래 공천탈락에 뿔난 지지자들 "국민 후보로 추대하자"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정청래 의원의 공천배제를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 정 의원의 지지자와 당원들이 모여 공천배제 철회와 공천 재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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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원은 지난해 2.8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종합득표에서는 호남지역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주승용 전 최고위원에게 1위를 내줬지만 여론조사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당내 세력'보다는 '여론의 지지'를 중요시 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당내에서 소셜미디어를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인물로, 그의 트위터 팔로워는 20만 명이 넘는다. 

그는 소위 무당층이나 '다른 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를 해왔다. 지난 1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정 의원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내가 표현을 완화한다고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당은 한 진영, 하나의 정치노선을 지지하는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뜻을 받드는 게 정당인으로서의 임무다"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국민 100%를 대변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 솔직한 말은 그의 비타협적 자세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성격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열광적 지지를 얻지만, 그를 싫어하거나 그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내부를 결집하는 힘은 있지만 외부의 공격을 강화시키고 내부 분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더민주 지도부는 이러한 판단으로 정 의원을 탈락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대포를 쏠 때의 반동을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 의원이 이틀 전 "최전방 공격수를 하다 보니 때로는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했던 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더 낮게 더 겸손하게 더 낮아져서 총선승리 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라고 자세를 낮췄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나 대포를 철수시킨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정 의원 공천 탈락 소식이 전해지자 더민주 홈페이지는 항의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이 몰리면서 다운됐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정 의원 탈락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또 여의도 당사 앞에서는 정 의원 공천 탈락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도 이어지고 있다. 그가 여론을 중심에 둔 정치활동을 한 만큼 여론 악화는 불가피하다.

정 의원은 공천 탈락 소식이 전해진 10일 오후 늦게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지역 사무실에도 나오지 않고, 서울 모처에서 칩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탈당과 무소속 출마 요구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동안 당의 충성도가 높았던 정 의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어떤 경우든 더민주는 화력 좋았던 대포 하나를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정청래, #김종인, #박영선, #국민의당,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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