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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여러 가지 이름 그리고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님이 제게 지어주신 이름, 딸 그리고 언니, 누나. 직장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된 이름, 직급에 따라 계속 변하는 호칭 이OO님, 이 대리, 이 과장, 이차장. 남편과 만나 결혼하면서 가지게 된 이름, 아내와 며느리. 아이를 낳으면서 가지게 된 이름, 엄마(아이들이 부르는 엄마와 이웃이 부르는 쌍둥이 엄마) 그리고 부모. 아니 이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으니 학부모죠.

이런 이름들은 우리나라에서 성장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사회적 관계에 따라, 혹은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얻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 이외에 제 스스로 만든 이름이 있다면 블로그 닉네임, 이메일 이니셜 등이 있을 텐데요. 닉네임이나 이메일을 만들 때 본래의 이름을 크게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의 닉네임 '까칠한 워킹맘'도 일하면서 육아하는 관계 속에서의 제 정체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메일은 그저 이름의 이니셜 첫 글자일 뿐이니까요.

얼마 전 회사에서 직급을 부르는 이름이 바뀌어서 명함을 새로 신청했습니다. 한 통에는 대략 100장의 명함이 들어있는데요. 회사에서 준 명함은 한 통을 신청하고, 다 써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이 회사의 입사 초기, 외근이 좀 많던 반 년간은 몇 통의 명함을 다 쓴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 내근만 계속하다 보니 명함을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이름 얻기'에 도전하다
<미생> 중 한 장면.
 <미생> 중 한 장면.
ⓒ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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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이란, 조직이 내게 부여한 관계의 이름입니다. 조직을 떠나면 그 이름은 허공에 사라져요. 소속 회사, 팀과 직급 같은 이름은 무의미해집니다. 지난 연말 희망퇴직으로 좋아하는 선배님이 회사를 떠나신 이후 저는 조직에 소속돼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 이름은 무엇일까요? 조직에 부여해준 이름은 저에게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아마도 퇴직하는 시점까지겠죠.

저는 2016년에는 스스로 새로운 이름 얻기에 도전했습니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쌍둥이 육아를 통해 얻은 생각들을 글로 적고, 기사로 올리면서 시민기자 명함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몇 개의 기사가 메인에 배치되면 명함을 신청할 수 있더라고요.

시민기자 명함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 시민기자 명함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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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의 명함과 함께 작은 수첩과 배지가 도착했습니다. 제 이름이 찍힌 명함을 보며 한참을 만지작거렸어요.

만약 소속이나 직함이 없다면 어떨까요? 저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까요? 엄마라는 이름 혹은 전업주부라는 직함으로 명함을 낼 수 있을까요?

아마 저는 괜찮지만 엄마 혹은 전업주부라는 직함을 가진 명함을 상대방이 받는 순간 사람들은 애써 부를 호칭에 대해 고민할 것 같습니다. 보통은 "누구 누구 엄마라고 불러드릴까요?"라고 자녀의 이름을 묻거나 혹은 "이름 뒤에 엄마나 어머니를 붙여서 불러드리면 될까요?"라는 식으로 질문을 하더군요.

최근 한 신문에 실린 김현경(문화 인류학자)의 글을 읽었는데, 보통 이름 뒤에 직책이나 경칭을 쓰기는 하지만 직업을 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름 뒤에 쓰이는 몇 개의 직업은 그 직업이 전문성을 보이는 경우에 한해서라고 해요. 가령 변호사, 교수 등의 직업은 성씨(姓氏)와 직업을 붙여 김 변호사, 이 교수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죠.

그래서 요즘에는 많은 분야의 직업을 성씨 뒤에 붙여 자연스럽게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런 시도가 모든 직업으로 확대될 수는 없겠죠. 특히 엄마, 전업주부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단순노동의 부류에도 넣지 않는 잡(雜)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니까요.

직함이 있든 없든 사람의 본질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직업에 그리고 직함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또 왜 사회는 직업(혹은 직함)에 따라 귀천을 두고 사람을 나누는 걸까요. 아니, 이름을 부를 때 꼭 직업이나 직함이 필요할까요? 그냥 누구누구씨 혹은 누구누구님으로 부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을 부를 때 직함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둘로 나누는 분위기는 엄마라는 사람을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워킹맘이냐 전업맘이냐로 나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라는 아이와 분리된 장소에 가면 조직이 준 이름으로 불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이라는 차이가 자명하게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육아나 가사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차이 역시 분명히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이에게 이런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아이들에게는 그저 엄마일 뿐인 것을.

사회가 내게 정당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엄마라는 직업은 한마디로 위대합니다. 작은 생명을 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엄마라는 직업의 위대함은 여기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한 전제입니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명함을 굳이 신청한 이유는 제가 쓰는 글이 쌍둥이 남매의 성장을 기반으로 하고 그것을 돕는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가질 수 없을 이름입니다.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저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하는 시민기자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명함의 가치는 소속된 조직이 준 이름이 아니라 처음으로 제 스스로 찾은 이름입니다. '기자'라는 호칭은 좀 과하지만, 앞으로 저는 스스로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소속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아오던 저에게 적당히 알맞은 일이자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회가 엄마에게, 저에게 정당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저 스스로 이름을 만들고 불러달라고 청할 생각입니다.

이나연 시민기자
이나연 엄마

여러분도 한번 이름을 붙여 불러보세요. 괜찮지 않나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명함과이름, #까칠한워킹맘, #쌍둥이육아, #엄마, #70점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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