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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총선 춘천 선거구에 도전장을 낸 더불어민주당 황환식 예비후보
 4.13총선 춘천 선거구에 도전장을 낸 더불어민주당 황환식 예비후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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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환식 예비후보는 요즘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난다.

12월 중순경 20대 총선의 강원도 춘천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 지금까지 두 달째 강행군을 지속하고 있다. 기상 후, 5시경에는 새벽기도를 나갔다가 바로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아침나절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사거리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 앞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에는 빠짐없이 들른다.

인력사무소도 그 중에 하나다. 동절기를 맞은 인력사무소는 요즘 일거리가 없어 그다지 분위기가 좋은 곳은 아니다. 그래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간다. 인력사무소에서 일거리를 찾는 노동자들은 주로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못하니까 일자리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인력사무소는 사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낯을 보이기가 부끄러운 곳이다.

그래도 인력사무소만큼 시민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도 드물다. 황 후보는 하루 네 시간에서 네 시간 반 정도 수면을 취한다.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에 쫓기는 일이 너무 피곤하다. 그렇다고 선거운동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간 중간 일정이 비는 자투리 시간이나 저녁 늦은 시간에는 sns를 통해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춘천의 실추된 명예를 되살리겠다"

황환식 예비후보는 '뿌리 깊은 춘천 사람'이다. 춘천에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다녔다. 강원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일 때는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춘천을 떠나지 않았다. 춘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의 이름 앞에 '뿌리 깊은'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자신의 처지가 "고급 룸펜 같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7년을 1톤 트럭을 끌고 다니면서 생선을 팔았다. 그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 시장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열심히 일한 결과 그는 춘천에서 "도매시장 넘버 2"까지 가는 성공을 거뒀다.

생선 장사를 접은 후에는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그러다 2002년경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당시 시민단체 사무국장들 사이에 정치 참여 문제로 날선 토론이 오갔다. 토론 끝에 황 후보는 "상식 이하의 정치"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새천년민주당에서 강원지부 조직국장을 맡아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도당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그가 가장 많이 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시민들을 만나 그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었다. 그는 그 사이 "15년 동안 정당 정치 행위를 하면서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가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고 sns 같은 것을 통해 소통하기를 즐기는 습관은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황 후보는 이번 총선에 대비해 공약을 만들 때도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않았다. 그의 총선 공약은 대부분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약 중에는 지역 주민들과 2년여 동안 대화를 나눈 끝에 구체화된 것도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실행 가능"한 공약은 결코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황 후보의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가 앞서 두 번의 고배를 마시고도 이번 총선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게 된 데는 아직도 정치를 통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현역 국회의원인 김진태 의원이 추락시킨 춘천 시민들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있다. 황 후보가 보기에, 김 의원은 춘천 시민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정치 지도자가 바뀌어야 춘천이 발전한다는 생각이다.

황 후보는 3월에 있을 당내 경선에서 허영 후보와 "멋진 경합"을 치를 예정이다. 황 후보는 허 후보와 마찬가지로 경선에서 누가 낙점이 되든지 상대 후보를 도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달 26일, 황 후보를 만나 그가 이번 총선에 도전을 하는 이유와 각오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그의 선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나는 뿌리 깊은 춘천 사람이다"

- 자신을 소개하면서 '뿌리 깊은 춘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나는 처음에 '오직 춘천'이라는 말을 쓰려고 했다. '오직 춘천'이라고 하는 것은 정파, 이념 이런 걸 초월해서, 정말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말이다. 고향 발전이 토대가 돼서 국가 발전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하자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그런데 캠프 내에서 후보의 뜻이 아무리 좋아도 선거에는 상대가 있는 거니까 구도를 그렇게 잡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뿌리 깊은 춘천 사람'으로 갔다.

'뿌리 깊은 춘천 사람'이라는 말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우리 평해 황가가 춘천에 터를 잡고 산 지 600년이 된다. 그래서 자긍심도 있다. 내가 또 종손이다. 여기서 초중고와 대학을 모두 다녔는데 그것도 남들이 안 갖고 있는 장점이다. 그만큼 나는 춘천 시민들과 동고동락을 해온 셈이다. 군대 갔다 오고, 참여 정부 때 해양수산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한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일이 춘천에서 이뤄졌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황환식 후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황환식 후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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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정당 정치판에 뛰어 든 건 2002년 1월 1일자로, 새천년민주당 강원도지부 조직국장으로 들어가면서부터다. 그 무렵 내가 정치판에 뛰어들 때의 계기는 절박함이었다. 그러니까 이대로 김대중 정부가 끝나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5년 갖고는 안 된다, 적어도 10년의 세월은 갖고 있어야 사회 구조나 시스템이 변화가 되고 업그레이드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걸 다시 이회창한테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당시 내 또래에 춘천 시내 시민단체 사무국장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날선 토론이 있었다. '저쪽이 되면 이민 간다느니' 별의별 소리들이 다 나왔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아,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치판에 뛰어들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조직국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정치판에 몸을 담게 됐다. 그리고 그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게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정치 문화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에겐 상식 이하의 정치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나름 명분을 정리했다. 정치권 내부에서 정치 개혁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열린우리당 강원도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았다."

"2012년 총선 때, 우리는 자만에 빠졌다"

- 춘천에 오래 살아 잘 알 것 같다. 춘천이 다른 지역보다 발전이 더딘 이유는 무엇인가?
"춘천에는 일종의 '종점문화'라는 것이 있다. 모든 도시는 사람과 문화가 소통하고 교류해야 한다. 그래야 도시가 발전한다. 그런데 춘천은 공교롭게도 경춘선 전철의 종점, 중앙선 고속도로의 종점이다. 우리 춘천은 이렇게 폐쇄적이다. 게다가 춘천은 지형상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물론 이 도시가 갖고 있는 문화적 장점, 지리적 장점도 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사람과 문화가 소통이 안 되고 흐름이 막힌 탓에 안타깝게도 발전이 더디다.

춘천이 발전이 더딘 데는 정치 지도자들도 한몫했다. 현재 춘천 인구가 28만이다. 그리고 원주가 33만, 청주가 83만이다. 옛날에는 이 도시들이 인구 규모 면에서 춘천과 비슷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원주와 청주가 막 추월해 나갔다. 나도 도시가 83만이 되는 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가 자립구조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 인구 규모를 갖춰야 한다. 춘천은 기본적으로 도시 발전을 위해 미래를 내다보는 행정과 정치를 했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그 점이 대단히 아쉽다. 그 결과 최근 선거구 획정에서 춘천은 불과 2천여 명이 모자라 의석수가 2개가 되어야 할 것이 1개에 그쳤다. 또 4년을 기다려야 하는 결과가 됐다."

- 앞서 두 번의 선거를 치렀다. 두 번 모두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는데...
"2004년도에 처음 총선에 도전했다. 그때 우리 당에서는 나를 비롯해 마흔 살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 정치를 바꿔 보자는 마음으로 경선에 참여했다. 우리는 당시 정정당당히 경선해서, 한 사람이 후보가 되면 깨끗이 승복하고 남은 한 사람을 확실히 밀어주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춘천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한 분이 중도탈락을 하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다. 선거 결과, 변지량 후보가 출구조사에서는 이겼지만, 당선을 하지는 못했다.

2012년 총선이 있기 전, 2010년에 6.2지방선거가 있었다. 내가 열린우리당 당협위원장을 할 때다. 그때 나는 정말 절치부심해서 당원들을 의회에 얼마나 많이 진출시킬까 고민했다. 지역에서 씨줄과 날줄이 촘촘한 조직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조직강화특별위윈회를 따로 만들었다. 지방 선거를 미리 준비했다. 그 결과 이광재 도지사가 당선되고, 의회에도 꽤 많이 진출했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2011년 4.27 보궐선거에서는 최문순 도지사가 당선됐다. 우리는 고무됐다. 그러면서 2012년에 어떤 현상이 벌어지냐면 '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문순 도지사가 당선될 때, 춘천에서만 6대 4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그 자체 경천동지할 일이 아닌가? 2012년 총선을 앞에 두고, 텃밭이 좋아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면서 2012년 총선에서 우리 당에서만 무려 7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우리에겐 자부심을 넘어서 자만심이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춘천 시민들 사이에 '쟤네 표 좀 줬더니 건방 떠네'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경선 과정이 깨끗하지 않았다. 투명하거나 공정하지도 않았다. 결국 경선 불복, 이의 신청이 뒤따랐다. 시간은 자꾸 가고, 원칙과 기준은 흔들렸다. 그 결과 우리는 공안검사 출신인 김진태 후보에게 졌다."

"김진태 의원과 나는 절대적으로 다르다"

-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야 할 것 같다.
"지난 4년 동안, 서울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춘천 출신들이 '야, 너희 동네는 왜 그러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재경 출향 인사뿐만 아니다. 김 의원은 춘천에서 51대 49로 이겨 당선됐다. 그런데 '49'는 잊어버리고 '51'만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춘천 시민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 결과를, 나는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든 만회, 회복할 생각이다.

지난 19대 총선은 공안검사 대 민변의 싸움이었다. 이번 총선은 공안검사와 총학생회장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김 의원과 나는 서로 살아온 삶과 철학이 다르다. 나는 지역의 토박이로 오랜 세월 시민과 동고동락한 경험이 있다. 이걸 강점으로 밀어붙일 생각이다. 속속들이 들어가면, 나는 춘천 사람들을 한 다리 건너 다 알 수 있을 정도니까. 친밀도 면에서 그하고 나하고는 절대적으로 다르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가 내게는 벌써 세 번째다. 세 번째인 만큼 간절하고, 또 그만큼 절박하다. 내가 이런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사람인데 욕심이 있지 않겠나? 참모들은 너무 솔직해도 안 된다며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솔직하고 싶다. 나도 욕심이 있다. 한 선배가 '어느 유도 선수가 죽기 살기로 하니까 만날 은메달만 따더라. 그런데 죽을 각오로 하니까 금메달을 따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너도 죽을 각오로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그런 각오로 한다."

"내 공약은 책상머리 공약이 아니다"

- 공약을 만드는 데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다섯 가지 약속을 제시할 생각이다. 공약을 '엄마', '어르신', '청년', '도시 경쟁력', '비전', 이렇게 다섯 가지 꼭지로 나눴다. 그 중 '엄마'를 위해서 다른 것 다 빼고 딱 두 가지를 제시했다. 그 하나가 '학부모 지원센터를 만들겠다'이다. 우리 아이가 유치원 갈 때, 초등학교 갔을 때, 이거 영어를 가르쳐야 할지 학원을 보내야 할지 매사 고민이다. 상담할 데도 없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겠다. 그리고 내 집 앞에 도서관을 만든다는 취지로 작은 도서관을 활성화할 생각이다. 5명 이상 독서클럽을 만들면 도서 구입비를 지원해주는 안도 있다.

아이들 교육은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한데 어우러져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학교와 가정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중학교 때 배운 게 있다. 강원중학교 다닐 때 독서모임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네가 공부를 잘하는 건 네가 똑똑하고 부모가 뒷바라지를 잘 한 것도 있지만, 지역 사회가 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뒷바라지를 한 것도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넌 반드시 네가 얻은 것을 지역에 환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게 내 좌우명처럼 돼 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 유권자 층에 맞는 정책을 맞춤형으로 제시해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또 공약이 실현 가능해진다. 김 의원은 자신이 내건 공약을 제대로 지킨 게 별로 없다. 나는 공약을 만드는 데 현장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과 공감대를 좁혀 가는 과정을 거쳤다. 내 공약은 책상머리 정책이 아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중앙 지도부에 부탁할 게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세 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그런데 춘천에서만, 왜 시장과 국회의원을 만들지 못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당에 문제가 있다. 당의 시스템이 예측 가능하지가 않다. 또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 후보가 경쟁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중앙 지도부는 예측가능하게 시스템을 미리 공표해줘야 한다. 총선에 대비해서 로드맵을 제시해주고, 후보가 경쟁력이 약하면 보완시켜 주어야 한다.

과거에는 당 대표 등에게 잘 보여야 공천을 받는 세상이었다. 불합리한 정치 문화였다. 이제는 여야가 공히 지역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어서 선택(공천)을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제도적으로 좀 보완을 해야 할 게 있다. 솔직히 말하면,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다. 시민들은 관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를 검증하고 후보별 변별력을 높이는 등 후보를 제대로 알리려면, 티비 토론이라든지 각종 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 그걸 통해서 후보 경쟁력을 키우고 맷집도 키워야 한다. 공적인 시스템에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걸 중앙당에 요청한다."


태그:#황환식, #총선, #춘천, #더민주당, #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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