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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유럽 여행 중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체코의 카를교를 걸은 적이 있다. 1357년 카를 4세에 의해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세워져 '카를교'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교각의 성상들을 들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 입구에 한 청년(?)이 남루한 옷을 입고 동냥을 하는 걸 봤다.

갈 때는 무심히 봐서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동냥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오면서 보니 시각장애인이 아닌 듯했다. 안내견이라 믿었던 검은색 개도 머리를 들었다 놨다 하며 지루해 한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아주 정상적인 사람의 그것이었다. 잠시 놀라는 듯한 눈짓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땅에 대고 엎드렸다.

조금 수상해 무심코 지나치는 척 하다 다시 돌아다봤다. 역시 시각장애인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이라면 내 눈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각장애인으로 착각하게끔 청년의 옆에는 흰 지팡이가 놓여 있었고, 개도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측은한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가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는 내 의심은 차츰 확신으로 변했다.

구걸을 위해 장애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건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람에 있는 걸 아는가. 눈으로 사물을 잘 보는데 마음과 정신이 보이지 않는 게다. 이런 사람은 한 결 같이 청맹과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남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는 셈이다.

청맹과니 지도자가 있다면... 끔찍하다

<왜 눈떠야 할까>(이만열 외 16인 지음 / 신앙과지성사 펴냄 / 2015. 9 / 334쪽 / 1만5000 원)
 <왜 눈떠야 할까>(이만열 외 16인 지음 / 신앙과지성사 펴냄 / 2015. 9 / 334쪽 / 1만5000 원)
ⓒ 신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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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대통령이 그러면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어떻게 될까. 혹 청와대나 법원이나 국회에 이런 이들이 많다면 그들의 나라는 어떻게 될까. 그게 교회라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 당시 그런 이들이 있었다. 예수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며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마태복음 15장 14절)

이런 끔찍한 상황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다고 본 이만열을 비롯한 16명의 기독교 지성들이 한국사회와 교회를 향하여 '이래서 눈 떠야 한다'며 코치를 하고 있다. <왜 눈 떠야 할까>는 그런 '일침 회초리'다. 저자들이 기독교인들이다 보니 유독 교회를 향한 충고가 많은 책이기도 하다.

시각자애인을 눈 뜨게 하는 일, 예수의 사역 중 중요한 부분이었다. 예수를 만나 눈을 뜬 맹인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을 분명히 증언한다.(요한복음 9장 25절) 고난을 통해 놀라운 '눈 뜸'의 체험을 했던 성경의 인물 욥은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 눈으로 주님을 뵙게 되었다"(욥기 42장 5절)며 즐거워한다.

이덕주 교수는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리 주변에 '본다 하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지도자들이 있어서 교회와 세상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세상에서 '불통 집단'이란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본문 10쪽)

그런데 이런 불통은 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한다. 한국갤럽의 최근 2월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수행 부정 평가자 중 그 이유 1위가 '경제 정책'(14%)에 불만을 표하고 있고, 이어 2위가 '소통 미흡'으로 11%에 이른다. 다른 말로 하면 청맹과니 지도자가 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고 이 나라에 있다는 뜻이다.

참 묘한 게 있다. 남들이 청맹과니로 보는 이가 하나같이 자신은 잘 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는 자신들은 부자고 잘 입고 잘 본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예수는 옷을 사 입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라고 충고한다. 실은 자신이 맹인인 걸 아는 이는 그리 문제될 게 없다. 맹인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가 청맹과니 짓을 하는 게 더 문제다.

다양한 분야 청맹과니 짓 분석과 대안

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그 분야에서 일어나는 청맹과니 짓을 다루며 '눈을 뜨라'고 전하고 있다. 환경, 사회, 교육, 여성, 복지, 국제관계, 건축, 음악, 미술, 영성, 성서, 역사, 신학, 인문학, 종교,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신앙을 축제로 이끄는 열여섯 마당'이란 소제목에 어울리게 불통의 신앙인이 아니라 소통의 신앙인이 되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주문한다. 장윤재는 환경을 넘어 창조세계 회복을 말하며 '기필코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창조세계'라는 첫 장에서 무분별한 토목사업으로 망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핵문제의 청맹과니 짓을 지적한다.

백소영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 이르는 사회'에서 백화점 왕, 철강 왕, 유통업 왕 등 부의 신화를 기독교와 연관시키는 것을 지적하고, 비정규직 법이 통과되기 전에 비정규직 직원을 해고한 기독기업을 규탄한다. 세상의 경제 원리인 '쓰고 버리는(고용유연성)'을 꼬집는다. 부와 권세 아래 저질러지는 현 정권의 청맹과니 짓을 기독교인이 앞장서서 한다는 것이다.

김신일은 '모두가 탄식하는 우리 교육의 미래'에서 국민교육제도를 비판하며 자율성이 억압된 획일화된 가치관 교육을 지적한다. 책으로 미루어 본다면, 현 정권의 한 가지만 가르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청맹과니 짓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양성 평등, 복지 세금이라 할 수 있는 성경의 십일조 원리, 미국 중심의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한 국제관계, 교회 건축과 음악, 진정한 신앙고백, 진정한 참 자유, 예술, 역사, 신학, 종교, 삶과 죽음의 문제 등을 다루며 '눈을 뜨라'고 충고한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이룬 나라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선교 100년 역사라는 짧은 기간에 대부흥을 이뤘다. 세계적인 대형교회가 한국에 모여 있고,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송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누수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마치 복음인 양 교회를 압도하고 있다. "반공과 숭미주의가 마치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양 여기는 이들로 인해 개신교회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김기석의 지적은 촌철살인이다. 교회 성장주의와 맞물려 한국교회는 번영의 복음을 선포하며 '죄-경영'과 '형벌-보상신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물질의 황금가면을 벗어 던지고 가려진 눈을 떠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도, 경제도, 심지어는 교회도 그러길 싫어한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이 풍요의 금송아지 등에서 내려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추한 건 왜 내려와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더 나아가 문제를 알려주는 '주체적 인간'을 미워한다.

"오늘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주체적인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질에 정향된 주류적 삶의 가치에 틈을 만들고, 그 화려한 가면을 벗겨 민낯을 드러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본문 208쪽)

16명의 기독교 인사들이 그 민낯을 드러내고자 한다. 제발 눈을 뜨라고 재촉하고 있다. 정말로 이런 '눈 뜸'의 역사가 우리 대통령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국무위원과 청와대 보좌진, 국회의원, 법 집행자들 가운데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게도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덧붙이는 글 |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왜 눈떠야 할까 - 신앙을 축제로 이끄는 열 여섯 마당

김신일.민영진.이만열 외 지음, 신앙과지성사(2015)


태그:#왜 눈 떠야 할까, #신앙과지성사, #기독교 지성, #눈뜬장님, #청맹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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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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