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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사고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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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볼 수 있는 나 홀로 쓰레기 수거 대형 차량, 알고 보니 흉기였다.

상차원(폐기물을 차에 올리는 사람, 보조원이라고도 부른다) 없이 운전자 혼자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던 5톤 차가 후진을 하다가 80대 노인(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6일 오전 7시 28분께, 안양의 한 청소용역업체 음식물 수거 차량이 후진하다가 음식물을 버리러 나온 노인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치었다. 사고 장소는 안양 석수동 L아파트. 노인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사고를 낸 운전자 배아무개씨(50대)는 안양 만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정오께 귀가했다.

배씨가 귀가하기 전, 만안경찰서 로비에서 그의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었다. 취재수첩을 꺼내 들었다가 누가 볼 새라 얼른 집어넣었다.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는데, 취재는커녕 말도 건네기 힘든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사고 위험 무시' 음식물 수거차량에 노인 치어 숨져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되지 않으면 이런 일 계속"

사고를 운전자 배씨의 동료인 최봉현 민주연합 노조 부지부장
 사고를 운전자 배씨의 동료인 최봉현 민주연합 노조 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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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처참하게 숨진 모습을 직접 보았답니다."

배씨의 동료 최봉현씨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서야 어째서 위로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 최씨는 사고를 낸 운전자 배씨가 속해 있는 노동조합(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부지부장이다. 그에게 사고가 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원인은 '돈 문제로 인한 안전 불감증'이었다.

그는 "꼭 있어야 할 상차원도 없이 혼자 일했고, 후방을 비춰주는 감시 카메라도 고장 난 상태였다"라면서 "(이런 이유로)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라고 짚었다. 이어 "사고 위험성이 있다며, 보조 운전자가 꼭 필요하다고 지난 몇 년간 주장해 왔는데 회사와 안양시 모두 예산 절감을 이유로 계속 무시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7~8년 전만 하더라도 운전자 혼자 다니는 차가 없었는데,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분리수거를 하면서 차는 늘어난 반면 인원은 늘지 않아 혼자 다니는 일이 발생했다"라고 설명했다. 사고 원인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후방 감시 카메라도 고장 난 상태여서 운전자가 뒤를 볼 수가 없어 사고가 났을 것"이라면서 "수차례 카메라를 새것으로 교체해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회사는 무시했다"라고 주장했다.

최 부지부장은 '작업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배씨는 25년 경력의 베테랑인데, 이런 그가 사고를 낸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하는 장시간 노동(오전 4시부터 오후 1시까지) 탓"이라며 "인원을 충분히 배치하고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라고 짚었다.

지난 26일 청소용역업체 사장 A씨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는 "현재 경찰서에 있고 경황이 없으니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즉답을 피했다. 청소용역업체 관리감독 책임기관인 안양시의 관계자 역시 "정확한 사고 경위를 확인하지 못해 답변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27일 <오마이뉴스>는 관련 사안에 대한 반론을 취재하기 위해 청소용역업체 사장 A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A씨는 받지 않았다.

'차 한 대당 상차원 두 명' 고용 업체는 단 한 곳뿐

사고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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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안양시 청소 용역 업체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상차원 없이 운전자 혼자 폐기물을 수집하는 차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도 많은 차량이 후방 카메라를 장착하지 않았다. 안양시 11개 청소 용역 업체 중 보유하고 있는 모든 차에 후방 카메라를 장착한 회사는 단 네 곳뿐이었다.

최 부지부장에 따르면 쓰레기 운반차에 상차원 두 명이 따라붙는 게 안전한 작업 방법이다. 그러려면 차 한 대당 상차원이 두 명 있어야 하는데, 안양시에 따르면 안양시 11개 청소용역 업체 중 차 한 대당 상차원을 두 명 고용한 업체는 단 한 곳뿐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청소용역업체엔 차 여섯 대에 상차원이 9명밖에 없었다.

안양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나 홀로 쓰레기 수집 차량'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아파트에서 후진하는 나 홀로 쓰레기 수거차량에 7살 어린이가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열악한 작업 환경과 안전불감으로 인해 환경미화원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7월 경북 울진에서 환경미화원이 청소차 쓰레기 투입구에 몸이 빨려 들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의정부에서는 환경미화원이 재활용품 수거 차량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함몰되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최 부지부장 말대로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적은 인원으로 무리하게 일을 시키면서 발생한 일이다. 후방 카메라를 교체하지 않은 것도 역시 돈을 아끼려다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를 낸 사실에 고통스러워 머리를 감싸 쥔 환경미화원 배씨에게서 사람보다 돈이 더 우선인 '헬조선'의 민낯이 보인다.


태그:#환경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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